무선망기로 오해하고 후회하는 무선이 15
무선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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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 사주단자 적는데, 무선이랑 망기 나이차이 때문에 혼자 한숨 쉬고 있을듯. 수선자들은 뭐 나이가 별 상관이 없다지만.. 거기다 위무선 자기 생일 안 챙긴지 너무 오래 되어서 아예 기억이 안난단 말임. 염리가 있을 때나, 혹은 처음 망기와 사이가 좋을 땐 간간히 선물도 받고 했었는데. 어쨌거나 적긴 적어야 하니 하다 못해 기억력 좋은 택무군에게라도 물어봐야겠다 하고 품에 넣어뒀을 뿐임.
하루종일 고민하느라 시간 썼는데 망기 보러 가야 하니까. 보자고 했지 시간 말 안했는데, 대충 자고 새벽부터 고소로 달려감. 전엔 참을만 했는데 이제 혼인까지 하게 된 사이다 보니 보고 싶어서 미치겠는 거.
냉천부터 한담동굴까지 너무 제 집처럼 드나드는거 아닌가 싶은데 어차피 이제 고소 주인은 택무군이니까 다들 그냥 그러라고 두겠지. 무선이는 왜 고소 수사들이 여기 얼씬도 안하는지 잘 모름. 잠깐 앉아있다 보니까 이제 아침 이슬 마를 시간인데 망기가 온거. 둘 다 서로 벌써 올거라고 예상을 못했어서 살짝 보고 놀랐다가, 이번엔 무선이가 몸이 달아서 망기한테 먼저 가서 안아봄. 간밤 잘 잤느냐고 어색하게 물으면서 괜히 단정한 머리칼 만지작거리고. 망기도 살짝 눈 내리 깔고 고개 끄덕이다가 가슴팍에 뺨 기대봄.
좋기는 좋은데 좀 어색한 건 있어서 그러고 아무말 안하고 한참 앉아있을거임. 바로 옆에 앉아있는데도 좀 아쉬워서 헛기침하고 거의 망기 자기 무릎에 앉혀 놓는데, 망기가 무선이 쪽으로 몸 돌려서 기대는 거. 그러고 붙어 앉아서 한참만에 혼례 준비는, 백부께서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소가 조금 소란스러워요 하고 작게 말함. 혹시 망기 피곤한 일은 없냐고 하니까 고개 저의면서 백부께서 저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홍의에 개두만 쓰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는거지. 무선이는 혼례복 입은 망기 생각하다가 또 너무 가슴 떨려서 죽을지경 됨. 무선이 본인도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혹시 모자란 게 있을까봐 이릉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경험 많은 분들한테 목록 추려달라고 부탁하고, 실제로 물건 사고 준비하는 건 유음이 해줌. 귀찮은 거 시킨다고 등짝 때리긴 했는데 요즘 위무선이 약도 잘 먹고 말도 잘 들어서 이정도는 봐준다 하는 느낌이 있었음. 무선이도 이런 저런 얘기 하고 한참 그러다가, 고개 기댄 쪽에서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 나니까 무선이가 사주단자 꺼내버림.
망기가 빤히 쳐다보니까 노친네 오래 살아서 생시연월이 가물가물합니다. 하고 헛기침함.
잠깐 망설이던 망기가 따라오라고 해서 가보니, 고소 직계들만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라 정실로 가는 거. 하긴 이제 혼례할 사이인데 밀회하는 것처럼 계속 산중에서 만나는 것도 모양새가 그랬음. 정실에 들어가니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오르겠지. 아예 달라지지도, 그렇다고 똑같지도 않았음.
정실 문 닫기도 전에 망기가 빤히 올려다보는데,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망기 손이 옷깃 안쪽에 닿아서 당황함. 원래 망기가 이렇게 저돌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저돌적인지 아닌지 알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망기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침상으로 가서 눕히니까 살짝 귓가가 붉어지는 거지. 좋아한다거나 은애한다거나 그런 말 하지도 않았지만 망기가 제법 자기한테 마음을 둔 것같아서 뿌듯했음. 그래도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최소한만 벗기고 부드럽게 해대줄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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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인 자기도 모르게 잠 들었는데, 품에 안고 있던 망기가 사라져서 깨어남. 반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망기가 쓰던 책상 있고, 단정하게 정리된 서안 옆에 아까 자기가 품고 있던 사주단자가 펼쳐져 있는 걸 봄. 무선이 필체를 따라하긴 했지만 제 글씨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보니 위무선도 잊었던 사주단자를 망기가 적어놓는 거.
몽롱하고 달콤한 순간에서 조금 싸하게 소름이 돋기 시작하는 거지.
생각해보니 망기가 위영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리가 없음.
망기가 나가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음. 고개 들어보니까 망기가 한손엔 피진 들고 가만히 저를 쳐다봄. 눈 마주치니까 씩 웃는데, 흰자위가 새빨간거지. 귀신이란 귀신은 다 부려본 위무선인지라 지금 남망기가 원귀 상태에 가깝다는 건 바로 알았음.
정상인이라면 도망쳤겠지만, 무선인 그냥 대충 꿰어입은 중의 차림으로 망기 곁으로 가는 거.
찌르고 싶으면 찔러.
아까 그렇게 입 맞추고 조심스럽게 쥐어봤던 손을 감싸고 들어올리는데, 의외로 망기는 손가락에 힘을 풀고 피진을 떨어뜨렸음. 사나운 소리에 무선이가 움찔하는데, 그대로 손 들어올려서 자기 뺨 만지게 함. 원귀들은 생전과는 행실이 조금 다름. 죽을 때 가장 강렬했던 감정만 남는데, 그래서 무선이는 그게 분노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닐 거임. 눈 빤히 보면서 망기가 날 연모한다고 했어.. 그렇지? 하고 어제처럼 해사하게 웃어보임. 고개 끄덕이면서 오랫동안 연모했다고.. 그때 두번째 망기가 죽기전에 했던 그말 그대로 다시 해줌. 만족했다는 듯이 품에 파고 든 망기가 위영, 왜 일찍 말하지 않았어? 그럼 아마 네 곁에서 그렇게 너덜너덜하게라도 살아갔을텐데. 왜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더 버티고 기다리면, 동정해서라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날 기다리게 했어? 나빴어. 하면서 중얼중얼 숨도 쉬지 않고 계속 말하는 거.
무선이는 정말 몰랐음. 망기가 가장 한에 맺힌 게, 위무선이 남망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여겨서인지 몰랐음. 믿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망가뜨리고 괴롭게 만들었는데도 망기가 감정을 버리지 않았던거. 그때 망기에게 너무 미안하고 가여워서 꼭 안고 다독이겠지. 조금 조용해진 망기가 또 안아달라고 제 손으로 옷 벗는데, 옷 벗고 저번처럼 자기 팔이랑 손가락 만지작 거리면서 애처럼 천진하게 웃어보임. 망기는 그렇게 망기진 자기 몸을 굉장히 싫어했고 혐오했으니까, 지금처럼 깨끗해진 몸이 너무 좋아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거. 무선이가 입 맞추면 간지럽다고 웃으면서 발가락 꼼질거리고 예쁘다고 했더니 입 가리고 소리내서 웃기까지 함. 원한이 남아서 원귀인데 지금 망기는 자기가 원했던 걸 다 얻어서 기분 좋은 거.
아래를 섞은채로 무선이 목 껴안고 있던 망기가 입 맞추면서 자기는 계속 피진에 실려 있었다고 하는 거. 피진은 영검인지라, 주인을 두번이나 죽인 위무선을 너무 증오했고 첫주인이 그렇게 죽어간 걸 견딜 수가 없었음. 망기는 죽을 때 슬펐고 피진은 분노했음. 망기 환생 후 무선이를 거부하고 증오한 출처는 거기였던 거지. 원령이 몸을 찾아 섞여 들어가고 나서는 더 혼란스러웠을 거임. 지금 무선이는 너무 잘해주니까. 거기다 욕심을 내는 것도 아니었고 과거 망기가 그랬던 것처럼 전부를 다 해서 지켜주는데만 집중했음.
무선인 진짜 홀린건데.. 물론 망기가 홀리라고 놔둔거임. 혹시 등이라도 배길까 싶어서 일으켜 앉히고 아프지 않냐고 묻고, 뺨이랑 턱 손가락으로 살랑살랑 쓰다듬으면서 괜찮냐고 어르고 달램. 흥분해서 미간에 핏줄이 툭 튀어나올 정도인데도 망기가 무슨 옥으로 만들어진 양 조금이라도 상처날까봐 애지중지 하는 거. 긴장 다 풀리고 못 참을때까지 손가락으로 입으로 다 녹여주고, 넣을 때도 천천히 빠지듯이 밀어 넣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겠지. 원한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오래 떠돈건데 하필 냉천에서 두번째 죽었을 때 기억까지 들어가서 한은 남았는데 원은 풀려버림. 지금처럼 안겨서 사랑받고, 무선이가 은애한다고 말하고 혼례하고.. 망기는 더 바란게 없었음. 살풋 요요하게 웃다가 망기 눈에 눈물 고이는 거 보고 무선이가 아파서 그러는 거냐고 혼비백산함. 빼지 말라고 매달려 안기겠지.
나도 널 못 믿은 거야, 위영..
무선이 어깨에 뺨 기대면서 꽉 안아보겠지.
나또한 네가 나를 믿어줄거라고, 내 곁에 서줄거라고 믿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없었다면 좋았을 일들이지만 이미 벌어졌짐. 과거의 일들이 아득하지만, 얼마간 실컷 사랑받았으니까. 무선이도 눈물 그렁그렁해서 망기 뺨 손으로 감싸고 닦아줄 듯. 남잠이 지겨워질 정도로 평생 아끼고 지켜주겠다고 하는 거.
무선이도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건 있음. 지금 망기는 예전처럼 뼈에 원한이 새겨질 정도로 무선이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혼인 이야기 나왔을 때부터 좀 의아하긴 했으니까.
둘이 꼭 껴안고 누워서 서로 눈물 닦아주고 빤히 쳐다봄. 꿈 같아서. 무선이는 계속 망기 쓰다듬고 입 맞추고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함. 망기는, 본인도 원령이면서 지금 망기가 무선이 미워하고 죽이려고 든 거 다 미안하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몸은 괜찮은 거냐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독을 먹고도 그렇게 덥썩덥썩 겁도 없이.. 계편이 장난이냐면서 예전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훈계하는데 그저 옛날 망기 그대로인거지. 무선이는 다 괜찮다고 소탈하게 웃어보임.
댓글
아아아아아 ㅜㅜ 두사람 진짜 행복 했음 좋겠어 ㅜㅜㅜㅜㅜ
아아아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망기가 전생의 기억을 조금씩 찾아가는 건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첫번째 삶의 망기 혼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망기 무선이가 저 사랑했었다는 거 알고 그것만으로 원이 풀린 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행복해라 얘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망기 원혼된거였음? ㅠㅠ 나 울어 ㅠㅠ
아니 이게 이렇게 풀린다고(?) 첫번째 망기의 생이 원혼이 되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
뭐야 내가 이걸 쟁여두고 보려고 이 편을 안 봤었나..왜 처음 보는 거 같지? 어흐흐흑 망기야ㅠㅠㅠㅠㅠ 망기는 무선이 사랑만 있으면 됐어...망기가 나도 널 못 믿은 거야 라고 한 거 슬프다ㅠㅠ 이 둘이 서로 더 믿었더라면 비극이 없었을 텐데, 어떤 비극은 정말 한순간 조금의 비틀림으로도 생기기 마련이지ㅠㅠ 그리고 그당시 그들이 살던 때는 모두 비극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