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망기로 오해하고 후회하는 무선이
찌통굴림주의
무선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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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온씨가 선문세가 전부를 전복하려 나선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음. 놀라웠던 건 단지 조금 철없지만 능력있는 수사로 알려져 있던 위무선이 실제로는 사마외도를 수양한 천재 수선자였다는 점과, 남망기의 행보였음.
위무선은 기산 온씨가 온몽을 친 시점부터 진정을 들고 사마외도를 수양한 걸 밝히고 나섰음. 그는 운몽의 대사형이었고, 고소에서 수학했으며 남망기의 벗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후 부터는 이릉 노조로 알려지게 됨. 그가 수행한 곳이 이릉이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음. 위무선이 흉시를 다룬다는 것을 알고나서 가장 먼저 그에게 의탁한 게 청하 섭씨였음. 섭씨는 온씨에게 가장 먼저 당한 곳으로, 시신이 산 사람보다 많았고 살아남은 섭씨 모두가 그에게 의탁하며 죽은 자들을 쓰라고 준 것과 다르지 않았음. 그러나 부모형제를 잃고 고향이 불탄 심정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음. 흉시가 된 섭명결은 이상하게도 섭회상을 알아보는 듯했고 생전보다 더 잔혹하게 이 설욕전에 가담함.
이릉노조는 과거 순수한 청년이었던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고, 그 이유가 남망기의 행보탓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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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운몽은 최소한의 생존자조차 남지 않았음. 가주와 가솔들이 모두 살해 당했고 휘하 수사들까지 단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 했음. 강직하고 선했던 종주 부부가 말릉 소씨를 돕기로 했고, 그 덕분에 이미 피해를 크게 입었던 상황에서 온조의 지휘로 이미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공격 당해 멸문이었지.
강풍면, 우자연, 강염리는 같은 날 죽었음.
강염리는 현살술로 목의 절반이 갈라져 죽었고 강풍면과 우자연은 피진에 찔려 죽었음.
이게 위무선이 폭주한 이유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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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 온씨들과 백가의 몇 문파는 너무도 쉽게 사라졌음.
선과 악을 구분하는 대신 은원으로 세상을 구분한 위무선 과거의 위영이 아니었을 거. 그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선함이나 양심, 혹은 학습적인 선의는 아무 가치가 없었으니까. 막을 수 없었고 막을 이유조차 없었음. 검은 연기에 의해 허공에 목이 매달린 온약한은 몇번이나 공중에서 떨어져 뼈가 으스러지고 나서야 천천히 목이 졸려 죽을 수 있었음. 불야천에서의 마지막 밤은 온가의 직계가 모두 허공에 매달려 죽은 것으로, 이후는 그 살이 썩어 툭툭 떨어져 반쯤 썩은 머리만 공중에 둥둥 매달려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됐겠지.
위무선의 복수를 비난할 순 없었지.
살아남은 가문들은 위무선에게 의탁한 이들이 전부였고, 그의 복수에 찬성했고 나가서는 이러한 일들을 칭송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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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남은 남망기는 생포되었음.
운몽의 마지막 밤에 대해 함구한 그를 심문한 것은 의외로 이릉노조 본인이었겠지. 한때 가장 가까운 벗으로, 동문수학하며 동기로 천진한 시절을 보냈던 두 사람은 분노와 침묵으로 오랜 밤을 보냈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압박해도 남망기는 입을 열지 않았겠지. 남망기는 모두가 잊고 있던 운몽의 소종주 강징의 행방을 물었을 때야 모른다고 답했을 뿐, 네가 우부인과 강종주를 살해했냐는 말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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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의 이공자는 그에게 가해지는 모든 고통에 무표정으로 응수함. 그가 얼마나 좋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위무선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
차라리 그가 어떤 주술에 당해 조종 당했다거나 혹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면 했을 거. 그게 얼마나 가벼운 이유건, 사실이건, 어쩌면 그 진실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정도로. 망기가 그에게 어떤 대답이라도 내놓길 바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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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고 의외로 이릉노조는 남망기를 죽이지 않았고, 물을 것이 있다면 물으라는 모호한 말과 함께 그의 영맥을 봉인하고 망기금을 부쉈음.
피진은 이미 그의 손에 없었으니 물을 이유가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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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것은 물으라' 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고도 모호한 말이니까.
거기에 고소남씨의 마지막 생존자니 죽이거나, 얼굴을 훼손하지 말라고 한 게 전부였음.
살아남은 자들은 얼마든지 이 조건을 영리하게 해석할 수 있었음. 난장강 한 구석에서 창기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옷이 찢겨져 나갔고, 하얀 살결에 아무렇게나 상처가 남는 것도 개의치 않았음. 남망기는 늘 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았기에, 이러한 분노는 손쉽게 그릇된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음.
적절한 고통으로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남망기의 다리를 벌리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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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액은 이미 밟히고 버려졌음.
몇명인지 셀 수도 없었던 밤이 지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돌아왔을 때 망기가 마주한건 위무선의 차가운 시선이었음. 아마 그는 망기가 그대로 죽어 사라지길 바라는 걸지도 몰랐음. 살점이 뜯어져 나갈 지경인 온몸이 너덜거렸고, 어깨를 밟혀 뼛조각이 우득거리는 것 같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건 저 시선이었지.
죽어버리라는, 사라져 버리라는 저 시선.
그렇게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잠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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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개의 계절을 이미 보낸 것 같은데, 난장강은 그저 살이 에이도록 추웠음. 걸을 때마다 핏물과 희뿌옇고 지저분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망기는 얼마나 지났는지 날짜도 가늠할 수 없었음.
감옥처럼 마련된 공간에 기거하고 이릉을 벗어나는 건 허용되지 않았음. 밖을 돌아다니건, 그 공간에 머물건 결과는 같았겠지. 그가 온씨와 결탁했다고 믿는 이들은 그를 찾아와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을 가했고 이릉노조는 그의 숨이 붙어있는 걸 종종 확인하는 것 외엔 모두 묵인했음. 발목이 으스러져 걸을 수 없었을 때, 한때 고소의 이공자였던 그를 개처럼 끌고나와 발길질을 하기도 했고. 차라리 이런 폭력은 나아질 수 있었음.
가끔 늦은 저녁을 틈타 찾아오는 이들의 손길은 다소 끔찍했고,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허벅지 안쪽이나 옆구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지져 상흔을 만드는 걸 즐겼음. 시체처럼 반응하지 않는 그가 생리적인 고통으로 경련하는 걸 즐거워하기도 하는..
망기는 이들이 저에게 아무 원한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모두가 이런 행위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방관하는 이들에겐 그들만의 이유가 있었음.
가장 낮은 곳의 웃음거리가 된 망기는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 생을 끝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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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며 담벼락을 손으로 짚자, 핏물이 길게 흘러내렸음. 오랜 시간 후 오늘을 회상하는 위무선은 이날 남망기의 눈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을거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겠지. 항상 정갈하던 의복이 뜯어져 맨다리가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 남은 흔적들은 끈적하고 지저분했으며 행위의 결과를 무척 또렷히 증명했으니까.
이 때 위무선은
그를 비웃었음.
네가 그들을 죽일 때, 이렇게 될 걸 상상했어, 남이공자? 네 눈에 먼지만도 못하던 이들의 노리개가 될 걸 알았다면 네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상한 점은 망기가 그렇다고 대답했던거지. 후회하지 않는다고. 위무선이 그의 뺨을 때리고 목을 졸랐을 때 전혀 반항하지 않았고, 이내 차가운 바닥에 던져졌을 때도 단말마의 신음도 뱉지 않았음.
파랗게 멍이 든 목은 여전히 가늘었고 위무선은 냉정하게 멀어질 뿐이었음. 엉망이 된 옷가지를 보고, 걸음걸음 떨어진 혈흔에서 눈을 뗴지 못하면서도 타들어가는 듯한 분노에 억지로 고개를 돌렸음. 더이상은 남잠과 위영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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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지 않으려는 망기의 태도에서 위무선은 강징이 이미 명을 달리했다고 믿었지. 그가 살아 돌아오기 전까진.
어렵게 이릉에 돌아온 강징은 얼굴에 흉터가 남았고, 기력이 쇠하여 이전만큼의 기량은 보이지 못했지만 살아 있었음. 위무선, 하고 카랑카랑하게 외칠 정도로 분명히 그가 살아있었음.
위무선은 기뻤고,
동시에 차마 인정할 수 없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지. 강징은 그를 끌어안고 남망기는 어떻게 된거냐 물었음.
강징이 그가 오랫동안 망기에게 물었던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을 때, 위무선은 그대로 굳어 암것도 하지 못함. 몇번을 채근하고서야 넋나간 얼굴로 강징을 바라봤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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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한 모든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달려간 곳은 감옥이나 다름 없는 망기의 처소였음. 난장강의 어두운 곳에 위한 남망기의 처소는 더이상 사용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흉시들의 시체가 겹겹이 쌓인 곳이었겠지. 매캐하고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곳을 헤치고 들어갔을 때 마주한 남망기는 이미 사람의 기척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었음. 한때 하얗고 고아했던 고소의 의복은 낡고 떨어져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지.
위무선의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시선을 내리깐 망기는 그가 뭘 하러왔는지 이미 안다는 듯, 모든 걸 감내하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을 뿐이었음.
..남.. 남잠.
오랫동안 불려진 적 없던 아명에 망기는 오히려 환청을 듣는다고 여긴 것 같았음. 눈을 질끈 감고, 살짝 고개를 틀어버리는 짧은 동작에서 오래전의 다정한 이름이 있었단 걸 부정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음.
남잠.. 왜..
..종주?..
왜 말하지 않았어.. 남잠..
이런 순간에도 원망의 말을 뱉을 수 있는 본인을 진심으로 증오하면서, 문득 난장강이 춥다는 생각을 함. 급하게 겉옷을 벗어 망기를 감싸는 행동에 어디서부터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얗게 질릴 정도로 놀란 얼굴만 보일 뿐이었음. 창백하게 색을 잃은 입술이 달싹이다 끝내 아무말 하지 못했음.
동그랗게 뜬 눈에 눈물 고였을 때 위무선은 그 자리에서 차라리 죽길 바랬음. 염치가 없음에도 지나칠 정도로 야윈 몸이 걱정스러워 품에 끌어 당겨 안았고, 부서질 듯 마른 몸은 이내 품에서 정신을 잃었음.
후에, 지쳐서 혼절한 게 아니라 고통에 까무러친 걸 알고 위무선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 들 정도로 후회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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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
제 침상 위에 누운 망기는 무척 불편해 보였지만, 안절부절 못하다 결국 다시 눈물을 쏟아낸 무선을 보고 그다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음. 강징이 살아있었고, 도망친 운몽의 수사들 또한 각자의 방법을 찾아 어느 정도는 살아 남았다는 말을 듣고 오랫동한 색, 색하고 조용히 숨만 쉬던 망기가 어렵게 꺼내놓은 말은 고작 그것 뿐이었음. 다행이네.
그간 겪은 모든 일들에 대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음. 단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온정을 청하는 것 뿐이었음. 기산 온씨가 이 모든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온정과 온녕도 위무선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노예로 삼아 고초를 겪게 해야한다던 누군가의 말이 이제 와 가슴에 갈퀴처럼 박혀옴. 그런 대우를 받았던 건 남망기니까. 그것도 여기서, 자신의 묵인하에.
..강징이 그 날을 전부 기억해. 그리고 그가.. 소섭을 끌고 왔어.
위무선이 사마외도를 시작한 순간부터 기산 온씨도 그를 따라잡기 위해 온갖 사술을 연마했던거. 물론 종주인 온약한은 이미 사술에 어느 정도 통달했던 자로, 위무선 정도는 아니어도 어설픈 흉내는 낼 수 있었음. 온조는 어설프게 흉시를 부릴 수 있었고. 남망기가 찌른 건 강풍면과 우부인이 아니었겠지. 이미 시체가 된 후 부모의 손으로 강징을 죽게 만들기 위해 움직이던 흉시들이었지. 강징은 참혹한 표정의 망기에게 아무말 하지 못했음. 도망치라는 그의 말에 염리를 끌고 달아나려 했지만 소섭이 그 자리에 있었음. 오래전 이미 온가에 의탁하여 모든 일이 정리되고 난 후 고소의 명패를 가져가려고 했던.
염리는 당연히 동생을 지켰고, 남망기는 위무선에게 가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음. 이미 부상이 심했던 강징은 살아남기 위해 갈 수 있는 가장 먼곳으로 도망쳤고,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돌아왔을 때 들은 것은 이릉노조가 된 위무선, 그리고 그가 지목한 운몽의 죄인 남망기에 관한 이야기였음.
그는 내 은인이라고 외치는 강징의 목소리에 한번씩 위무선의 가슴이 뜯어져 나가는 듯 했지.
겨우 몸을 추스른 망기가 부탁한 건 깨끗한 옷 한벌이었음. 강징을 만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하며, 운몽의 가주가 되셨으니 향후로는 더욱 신중하길 바란다며 몸을 세워 인사했음.
그리고 위무선에게 강징도 눈앞에서 육친을 잃고 고통을 겪었으니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이 사실은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함. 너무 많은 일을 겪어야 했던 강만음이 그 이상 괴롭지 않길 바란다면서. 고개는 끄덕였지만, 위무선은 단지 심장을 꺼내 남망기에게 주고 싶었음. 찌르라고. 네 발 밑에 두고 밟아 으깨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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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걸 알면서도 위무선은 끝내 무너졌음.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는 망기의 식사를 돕다 그대로 무너져, 찢어지듯 오열하게 됨. 발치에 엎으려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그를 망기는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음.
붉어진 눈가에서, 정말 붉은 색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 되고서야 망기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위영, 하고 짧게 불렀을 뿐임.
그걸로도 과분했던 위무선은 억지로 눈물을 참고 차마 뻗지도 못한 손을 거두어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무는 게 전부였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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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기는 하루에도 몇번이고 몸을 씻었음.
정확히는, 약재가 들어간 따듯한 물 안에 고여 오랫동안 허공을 바라봄.
위무선은 여전히 가슴이 뚫린 듯한 통증과 이명이 들리는 듯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헤집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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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남망기를 놔두지 않았던 수사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누구하나 돌아오지 않았고, 남은 건 위무선 하나.
가늘게 떨리던 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한 순간이 그때였음.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숨소리가 거칠어진 망기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리고, 너무나 야윈 몸에 함부로 손을 올리지도 못하던 무선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쓸어 내림.
위무선이 급하게 그의 시선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는 망기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아주 가볍게 쓰다듬었음.
아무도 널.. 더이상..
더이상 뭐. 더이상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너에 대한 오해를 알았다고.. 망기금은 제 손에 부서졌고, 피진은 오래 전에 사라졌음. 아정하고 곧았던 남망기는 수없이 짓밟히고 무너져 부서지기 직전의 유리잔 같은 몸에 겨우 담겨있는 혼조각에 불과한데. 망기가 숨을 거의 쉬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엎으려 염치도 없는 용서를 빌고 싶었음.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거야..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목 끝에 걸린 목소리가 갈라졌음. 남잠. 남잠.. 미안해. 남잠.. 내가 널.. 널 믿었어야 했는데, 남잠.. 살짝 드러난 손목이 짓이겨져 있었음.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색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훼손당한 살가죽이, 그대로 위무선의 심장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듯한 고통이었음. 제 손으로 이렇게 만들었음. 한때 가장 가까웠고, 신뢰했고, 가끔 늦은 밤 목 안쪽으로 타고내려온 불온한 열기가 나직하게 부르게 했던 사람들 제 손으로 이렇게 만들었음.
정말이야?
위무선의 기억 속 남망기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겠지. 불안에 떨면서, 두려움에 홀려 어깨를 잘게 떨면서 고작 이 정도의 위안에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얼굴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음.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할거라고, 어떤 어려움도 없게 해줄거라고 몇번을 약속하고 약속하면서 위무선도 정신없이 울었음. 눈물이 말라버린 듯 건조한 얼굴로 몇번이고 묻고, 어깨를 움츠리며 위축된 표정을 하던 남망기는 비틀거리다 기절하듯 잠들었음. 조심스럽게 낡은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 불로 지진 것으로 보이는 상처에 진물이 흐르고, 그 바로 옆엔 새까맣게 살을 물들일 정도로 얽혀있는 멍자국이 보였음.
알고 있었으면서.. 모두의 화살받이가 된 남망기가 어떤 꼴이 될지 알고 있었으면서..
차마 허리 아래론 시선도 내릴 수 없었음.
가느다란 손가락을 감싸고 싶었지만.. 그것도 욕심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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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물에 그를 씻기고 옷을 벗기려 했을 때 망기가 깨어났음. 물속에서도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면서, 굳은 살이 배기고 투박한 무선의 손을 밀어냄. 그 손마저도 너무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망기를 조금 세게 쥘 수 조차 없었지. 그렇게 강하고 단단했던 남망기가 이렇게까지 무너짐.
만지지마.. 더러워..
차라리 그 말이 제게 하는 말이었다면.. 제 몸을 혐오하며 웅크리는 망기가 너무 괴로워 보여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나 초라하게 뱉어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음. 한참 만에 불편하면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비틀거리며 나온 위무선은 정말 그 자신이 죽기를 바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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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지 않으면, 여기 있을래?
과거 위무선은 망기의 표정을 전혀 읽지 못했음.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아니었을거임. 달라진 건 남망기 쪽이었지. 두려움에 가득찬 망기는 누군가의 목소리만 들려도 발작처럼 몸을 떨었음. 가장 자격없다고 생각하는 위무선 곁에서 이상하게 안심하니까, 남망기에게 잠시의 안정이라도 줄 수 있다면 차마 꿈도 꾸기 미안한 호사라고 여겼겠지.
두 배로 푹신하게 침구를 꾸려놓은 침상에 망기를 앉히고 물어보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음. 비틀거리는 걸 보고 별 생각없이 팔뚝을 잡았다가 아파하기에 문득 낡은 옷가지 아래 얼마나 상처가 많을지 순간 눈앞이 아득한 감각이 들었음.
힘없이 작아진 몸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그러면 안되는거니까. 더이상은 함부로 마음을 품을 자격조차 남아있지 않았음. 제 손으로,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사람에게 죄책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거니까. 심장이 타는 것 같아 잠깐 눈을 질끈 감음.
남잠. 나는 너에게 평생 빚을 진거야.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마디였겠지. 망기는 아무 말 없이 고요한 시선으로 바닥을 내려보다, 피곤하다며 자리에 누웠음. 이미 해시를 한참 지난 시간으로 망기의 몸은 평생 이어온 습관까지 잊어버린 모양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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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하듯 자리에서 일어난 망기에게 차마 손도 대지 못하고 남잠, 왜 그래. 남잠.. 하고 침으로 입혀준 부드러운 중의를 당기는 게 고작이었음. 옷깃이 벌어진 목덜미에도 온통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상처만 가득했음. 파들파들 떠는 몸을 보고 대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늦게 깨달았겠지. 온정은 산속에 숨어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전갈을 보냈음에도 이릉에 당도하기까지 반나절은 더 남았음.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읽다 아무렇게나 접어둔 서신들을 집어 올렸음. 자그만한 초를 켜고 그 앞에 앉으니, 방안은 따듯하고 작은 불빛으로 채워졌고 망기는 제 그림자에 덮혔음.
..안 자려고..?
생각해보니 급한 일인데 잊어버렸어. 덕분에 기억났네. 먼저 자. 밝아서 잠들기 힘들텐데.. 미안해.
망기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싶은지 혹은 영원히 모르고 싶은지 짚어낼 수도 없었음. 그가 겪어야 했던 많은 부분들이 위무선으로 인해 기인하였으므로. 차마 물을수도 들을수도 없었음.
사각 거리며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 이따금씩 젖은 붓이 찬찬히 글을 써내려가는 소리. 이런 작은 소음들이 그를 안심하게 만든 것 같았음. 뒤척이다 조용해지는 동시에 뺨 위로 간지럽고, 미지근하고, 양심없는 눈물이 떨어짐. 수백번의 밤 중 남망기가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밤은 몇번이나 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조차도 사치였음.
댓글
망기야 말을 하지 그랬어ㅜㅜ
어 맴찢……….. 아……..
아 필력이 그냥......찢었따.
아휴 맴찢 ㅠㅠ 다시 정주행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