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망기로 오해하고 후회하는 무선이 8
무선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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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가운데 가장 바빴던건 유음이었음. 나이만 많고 철은 전혀 들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이릉노조는 일야에 내단을 잃고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등짝을 내보이며, 그가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임.
위무선 사술을 연마했으니 남망기로 잠시 변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거임. 진짜 망기는 재워놓고 자기가 대신 맞아줌.
망기의 몸에 자그마한 흉터라도 생기면 견딜 수 없을 거였고, 남희신이 없다면 남망기의 처지가 어려워지는 것도 견딜 수 없었겠지. 둘 다 겪어본 일이라 위무선이 견딜 수 없는 종류니까. 그때 망기가 제 몸을 얼마나 경멸하고 끔찍해했는지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특히 지금 작은 흉터 하나 없는 망기의 몸에 예전처럼 덕지덕지 흉터가 붙게 된다면 아마 위무선은 정말 수선계 전부를 다 쓸어버릴 지도 몰랐음.
그나마 제 몸으로 전부 감당할 수 있었던 일이라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음. 유음은 무선이 다치거나 공격 받는 걸 수도 없이 봤지만, 기어이 제 몸의 한계까지 경험한 이 무상사존에 대해서 여러번 욕했고 치료했지만 이번은 정말 좋지 않았음. 계편을 맞고 약간의 회복도 되기 전에 스스로 내단까지 뜯어냈으니 이릉노조는 정말 단지 죽지 않은 것에 불과하게 됨.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뭔가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유음은 이 오래 살아남은 괴악한 자가 자기자신을 조금 용서했다고 느낀 거 같기도 했음. 혹은 오래된 집착을 조금 내려놓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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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죽었어야 맞지만 그러지 않은 위무선은 한달 정도 가사 상태에 빠진 듯 잠들어 있었음. 유음은 그간 세번 정도 남희신에게 위무선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받음. 수취인이 위무선이었으니 유음은 잠들어 있는 듯한 그의 옆에서 간결하게 서신을 읽어주고, 힘없이 늘어진 그에게 약을 먹이거나 환부의 붕대를 감거나 함. 스승이자 가족이었던 온정의 일생도 이랬을 것인가 그다지 별 무게 없는 고민을 하다가 내려놓곤 했음. 유음에게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전부를 함께한 위무선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좀 의지하던 구석이 있었으니 그를 잃지 않길 바랬음.
무선이도 모르지만, 전부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가족이 있긴함. 망가질 정도로 다쳤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계편흔은 위무선의 현재가 그렇듯 기묘하게 아물었음. 아물었다고 하긴 좀 그런게, 살이 비져나오고 흉터로 채워져야 아물었다고 하겠지만 더이상 뿜어낼 혈액이 없는 것처럼 붉은 색으로 상처가 멈춘 것과 같았음. 위무선은 유음의 의술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유음은 위무선이 죽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했음. 위무선이 겨우 깨어난 날 아침 유음은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늘어 놓았고, 위무선은 조용히 웃으며 그래도 네가 있구나. 하고 늙은이처럼 굴었겠지.
내단이 없어 더이상 검은 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애초에 뭐 이릉노조 가까이 올 정도로 뛰어난 수사가 많지도 않으니 염려하진 않았음. 물론 위무선에게 남은 삶의 의지 같은 것도 없었을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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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신은 누군가 설명하지 않아도 자초지종을 파악해냈을 거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기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위무선 말고 누가 또 있겠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이럴 능력이 있는 것도 이릉노조 뿐일거니까.
계편으로 맞았다는 그 상처가 가짜인 건 손을 대자마자 알았겠지. 무선이가 현혹술로 만들어낸 가짜 상처라 망기 몸엔 조그마한 생채기 하나도 없었음. 어차피 망기 몸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남망기가 함부로 몸을 드러내지 않으니 누구도 알 필요 없는 일이었음. 거기다 본인 내단이 사라진 걸 알고 정신을 잃었으나 깨어났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망기가 이미 연관된 수사들을 잡아두었으니 택무군은 이들에게 약물을 먹여 진실을 말하게 했음. 고소의 수사들은 더이상 퇴로가 없자, 오래전에 멸문한 기산 온씨에서 마지막 복수를 하려고 했다고 함. 이 수사들은 사실 고소에 복종하긴 했지만, 남망기가 여기 끼어들어온 이후 일종의 권력 게임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해서 이러한 일을 계획한거였음. 고소의 직계는 모두 죽고 남희신 하나 남았었는데 어느날 아이를 안고 들어와 그가 고소의 후계자가 되었으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망기의 안색이 몹시 나빠졌지만, 남희신은 망기가 무선이를 독살하려 했던것 까진 몰랐으니 심정이 복잡할만 하다고 여기고 묻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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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지 않아 망기가 백부, 이릉노조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음.
묻는 망기에게도 어려운 말이었고, 남희신에게도 어려운 질문이었겠지.
하나뿐인 동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죽게 했던 사람이었지만 저를 살렸으니 남희신에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렵지.
오랜 시간 죽지 못하며 벗으로 지냈던 것도 사실이고, 끝내 망기를 제게 돌려준 것도 사실인데. 지금의 망기는 과거의 망기가 알았던 어떤 고통이나 역경도 없이 잘 자랐으니까. 그럴 기회를 만든 것도 어떻게 보면 위무선이었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함.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걸 가장 잘 알았던 게 제 동생이었을텐데. 세상에서 위무선을 가장 잘 알았던 그는 위무선을 그렇게까지 사랑했으니, 그는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사내였을지도 모름. 망기의 손을 잡고 자기도 모르게 위공자에게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아주 오래전처럼 그를 불렀음.
망기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이제와서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거. 이렇게나 오랫동안 위무선은 남망기를 사랑했고 이렇게나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데.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억겁의 세월을 살았다는 걸 생각하면 남희신에게도 한숨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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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기에게 위무선은 늘 거부감 드는 사람이었음. 그를 거의 알지 못했지만, 어려서의 기억은 거의 없었고 이후엔 백부의 이름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좋지 않게 생각했었음. 남희신은 벗으로 둔 사람이 적었는데 그나마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이릉노조였던 탓에 그에게 안 좋은 소문이 있다면 거의 위무선 탓이었음.
이릉노조가 황음하고 무도하여 색을 밝힌다던가, 주취를 좋아하여 소란스럽다던가 하는 것들 모두 백부와는 정 반대였고 백부께 좋지 않은 이야기 들임.
그러나 기본적으로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망기 자체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보니 불호 정도의 감정이 조금 커진 때는 망기도 명확히 짚어내지 못함. 종종 이릉노조가 누군가에게 핍박을 받았거나 공격 받았다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심드렁하기보다 뭔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음. 물론 고소에서 교육 받은 공자로서 망기는 누군가의 불행을 응당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자신이 그다지 뿌듯하진 않았을거임. 이런 감정을 남들이 알길 원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위무선을 자꾸 만나 그 감정을 자각하는 것도 싫었음. 단지 제가 그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의 불행을 기꺼워하는 자기 자신이 싫었음.
위무선을 생각할 일이 거의 없었고 어떤 생각이 들더라도 감정을 거기 머무르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음. 망기가 명확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지 무선이 자체가 인간이 아니라 어떤 감정의 집약체로 느껴지는 건데 망기는 거기까진 모름. 어느날 갑자기 태어나서 살고 있었고, 위무선이 자길 데려다 남희신에게 안겨준게 최초의 기억이라는 점이 문제였음. 어떻게 보면 은인인데.. 망기도 남희신과 제 연결고리가 뭔지를 모름. 백부의 보살핌이나 가르침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망기도 정말 둘이 어떤 사이인지 누가 물어도 대답을 못함. 그때 위무선은 왜 당연히 남희신이 천애고아인 어린아이를 받아주고 애정을 키울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 처음부터 그냥 그 연고 없는 어린아이를 왜 눈에 둔건지 이해할 수 없었음.
이유는 몰랐어도 당연했던게 두 사람이었음. 남희신과 위무선. 망기가 묻지 않기를 택한 것 뿐임.
댓글
근데 망기야 너 구해준게 이릉노조야
아이고 ㅠ 이러다 망기 또 맘아플라 ㅠ
진짜 저에게 100억이 있었다면 20억은 센세를 드렸을 거에여 진짜
이런 명작갓작 공짜로 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