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샤오잔 이사 애첩 이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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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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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예정대로 그룹에 들어간 샤오잔은 업무를 익히며 정신없는 두 해를 보낸 후, 올해 초 승진 발령이 났음. 그가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이제 일찍 들어올 수 있는 거야?" 물었던 이보의 기대와 달리, 샤오잔은 새로운 위치에 다시 적응하느라 여전히 바빴음.



잠시 후에 있을 임원 회의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던 샤오잔은, 다소 급하게 이사실로 들어온 양비서가 이보의 학교에서 온 연락을 전했을 때 귀를 의심했음.


- 싸움을 했다고요? 이보가?
- 예. 지금 학교로 와 달라고 합니다.
- 맞았습니까? 혹시 다쳤대요?
- 아니요. 그건 아닌데.... 싸움을 먼저 시작한 게 이보 학생이라고....


놀라서 반쯤 몸을 일으켰던 샤오잔은 다시 평정을 찾고 자리에 앉았음. 다친 게 아니라면 먼저 때렸건 나중에 때렸건 크게 상관 없었음. 하지만 이보가 먼저 시작했을 리가?


- 싸운 학생이 누군데요?
- 그.... 지난 주에 보고드린 학생들입니다.


샤오잔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음. 


- 이유는요?
- 운동화 때문인 것 같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학교에 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운동화라.....

새 휴대폰을 사고 나서도 이전 것이 망가진 걸 못내 아쉬워하는 이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요즘 꽤 화제가 되고 있다는 운동화를 하나 주문했었음. 모처럼 쉬는 주말이었던 어제 같이 가서 찾아왔으니 아마 오늘 등교하면서 신고 갔을 터였음. 얼핏 한정판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못마땅한 사람이 있었나 보지?

학교에 도는 소문과, 이보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에 대한 파악은 이미 끝난 상태였음. 샤오잔은 그 일들을 주도하고 있는, 일주일 전 제 손에 들어온 네 명의 신상 파일을 서랍 안에서 꺼내들었음. 제일 위에 말릉산업 첫째에 관한 파일이 있었음. 


- 제가 다녀올까요? 아니면 회의를 조금 미룰까요?
- 양비서님은 저와 회의에 들어가야 하니까 다른 분 보내시죠.
- 다른 직원을요?


샤오잔이 이보의 일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고 있는 양비서가 다소 놀라 되물었음. 샤오잔이 이보 일을 맡기는 건 양비서 뿐이었음. 이보와 관련된 일을 처음부터 양비서가 처리 했었고 그 때문에 학교에도 그의 번호가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임. 하지만 그 밖의 사람에겐 이보에 대한 정보조차 철저히 막은 샤오잔이었음. 그는 십중팔구 샤오잔이 회의를 미루고 직접 가겠다고 할 줄 알았음.


- 내 얘긴 하지 말고 그냥 사회사업팀에서 후원하는 학생 중 한 명에게 생긴 문제라고 하세요.
- .....네... 저... 그럼 어디까지 재량권을 줄까요? 혹시 상대방이 다쳤다면 치료비를 요구할 텐데요. 
- 그건 확답하지 말라고 하고. 이쪽을 부른 거면 저쪽도 불렀을 테니까 상대방에서 보호자로 누가 나왔는지 자세히 알아본 다음에 각자 뭘 요구하는지, 모인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빠짐없이 기록해서 보고하라고 하십시오.


지시를 받은 양비서가 나가고 난 다음에도 샤오잔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음. 자력이 아니라 후원을 받아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따돌림과 괴롭힘이 뒤따를 것임을 모르지 않았음. 그들 사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안일하게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잘못이었지. 아니 그전에. 이보를 평범한 학교에 보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별 생각없이 고민도 하지 않고 자기 기준에서 학교를 선택한 것이 더 큰 잘못이었음.

그러나 오늘 자신이 나서는 게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었음. 겉으로 드러나는 몇 번의 사건들이야 제 이름이 방패막이 되어 주겠지만, 졸업할 때까지 일상에서 숨쉬듯 일어날 조롱과 무시는 막을 수 없었음. 뭔가 더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했음. 하지만 뜬금없이 이릉 그룹에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18살 고등학생을 입양하시라고 할 수도 없고...... 

혈연 관계 말고 이보를 제 그늘과 이릉의 보호 아래 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글쎄. 뭐가 있을까?

톡톡. 생각에 잠긴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음. 어쨌거나 오늘은 저쪽이 하고 싶은 말 모두 하게 놔 둘 작정이었음. 그래야 나중에 발뺌을 못 하지.



 






입술이 터지고 광대에 멍이 들어 보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소섭은 기분이 최고였음.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대기해야 했지만 걱정 따위 하나도 되지 않았음. 주먹을 먼저 날린 건 분명 왕이보였고 자신은 명백히 폭행당한 피해자였으니까. 무엇보다 소섭은 보건실로 이동하기 위해 상담실을 나올 때, 저희들과 격리되어 남아 있어야 하는 왕이보가 완전히 조용해져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음.

소섭은, 싸움을 중재한 선생님이 부모님께 연락할 테니 상담실과 보건실에서 각자 기다리라고 하는 순간 왕이보의 표정이 변하던 걸 놓치지 않았음. 그런 왕이보를 선생님이 따로 불러내었음.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얘기를 마치고 돌아온 왕이보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었음.

그럼 그렇지. 

부모님을 부른다는 말에 불안해하는 걸 보니 역시 제 예상이 맞았던 거라고 소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음. 이제 저 재수없는 자식의 실체도 까발려지겠지. 드디어 왕이보를 꺾어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소섭은 얼굴의 상처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음.



주말에 쇼핑을 나섰던 소섭의 눈에 운동화 한 켤례가 띈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음.

한정판 운동화를 모으고 친구들이나 SNS에 자랑하는 것이 취미인 소섭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운동화였음. 유명 브랜드에서 출시되어 본국의 현지 판매는 당연히 이미 끝났고 국내에는 극히 소량만 들어온다는 제품이었음. 그런데 판매 시기도, 판매 수량도 비공개라던 운동화가 뜻밖에도 친구와 같이 갔던 백화점의 명품관 매장 한가운데에 전시되어 있었음. 

단순히 비슷한 제품인 줄 알았지만 매장 안으로 달려들어가 확인한 결과, 모델명이 확실했음. 이게 웬 행운인가 싶어 소섭이 확인 즉시 구매 의사를 밝혔으나, 직원은 정중하게 이미 구매가 완료된 제품이라 곤란하다며 거절했음. 아직 찾아가지 않았으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소섭이 이전 계약을 파기하고 제게 팔면 몇 배의 웃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소용없었음. 이미 여러 번 같은 상황을 겪은 것이 분명한 직원은 끈질긴 요구에 끄덕도 하지 않았음. 

제가 고등학생이라서 직원이 버티는 건가 싶었던 소섭은, 어머니에게 백화점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연락을 넣었음. 그러나 몇십 분 후 직접 백화점까지 온 모친의 요구에도 마찬가지였음. 

브랜드 정책상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어떻게 구매 완료일 수 있냐고 소섭이 따지자, 매장에 입고된 제품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음.
VIP의 요청으로 브랜드 본국에서 구매를 대행한 팀에게 전달받은 제품이고, 구매자께 양해를 얻어 오늘 하루만 홍보용으로 전시한 것일 뿐 오후에 곧 양도될 거라는 설명도 따라붙었음. 

VIP라는 단어에 모친이 폭발해 ㅡ내가 바로 VIP야!!ㅡ 언성을 높였으나, 잠시 후 내려온 담당자가 하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 직원들은 침착한 표정 그대로 단정하게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사모님. 사과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따름이었음.

아까부터 저희들을 찍는 휴대폰 카메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소섭은 매장을 뒤엎어버릴 기세인 모친을 애써 말리고 자리를 떠났음. 아무런 소득없이 백화점을 나서는 뒤통수가 뜨끈거렸음.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기분이 더 거지 같았음. 매장을 엎어버리고 싶었던 마음은 아마 소섭이 더 컸을 거임. 

그랬으니 오늘 등교한 소섭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음. 점심을 일찍 먹고 나온 소섭은 화단 근처에 친구들과 모여 주말에 있었던 일에 관해 갖은 욕설을 해대는 중이었음. 그런데 그 소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하고 결국 운동화 구매에 실패한 것까지 알고 있는 B가 갑자기 소섭을 툭툭 쳤음.


- 저거 네가 사려고 했던 그 운동화 아니냐?


B가 가리킨 것은 식당에서 교실로 향하고 있는 왕이보였음. 설마 그럴 리가. 비슷한 거겠지. 코웃음을 쳤으나, 다음 순간 소섭의 표정이 변했음. 제 눈에도 왕이보가 신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그 한정판" 이었음. 


- 야!!!


진짜 못 들은 건지, 듣고도 무시를 하는 건지. 소섭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왕이보의 어깨를 뛰어가서 잡아챘음. 갑작스레 붙잡힌 왕이보가 눈썹을 찌푸리고는, 귓전에다 대고 야!!!! 다시 소리를 지른 소섭을 돌아보았음. 대꾸도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녀석에게 배알이 꼴렸지만 확인이 더 급했음. 짝퉁이 아닐까 했지만 아니었음. 가까이서 보니 더 확실했음. 몇 번이고 살펴봐도 색상과 디테일이 틀림없었음. 


- 너 이거 어디서 났어?
- 뭐?


어이없어 하며 반문한 왕이보가 잡힌 어깨를 탁, 뿌리치고는 자리를 뜨려 했음. 그러나 어느 새 다가온 다른 세 명이 둘러싸듯 주위를 버티고 섰음. 이보는 비키라는 말로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저를 막아선 이들을 옆으로 피해가려 했지만, 따라 움직인 이들에게 다시 가로막혔음. 야, 대답 안 하냐? 네가 뭔데 사람을 무시해? 한 마디씩 던지는 말들을 들으며 이보가 어쩔 수 없이 화를 눌러 참고 소섭을 향해 돌아섰음.


- 운동화. 어디서 산 거냐구. 
- 그게 왜 궁금해.
- 부러워서 물어보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나도 사고 싶었던 거라 묻는 거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 .......... **백화점.


어제 갔던 그 백화점이었음. 소섭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음. 


- 내가 갔을 때는 안 팔던데? 언제 샀어?
- 어제 오후에. 할 말 끝났으면 비켜. 
 

"그" 운동화가 맞았음. 그걸 깨닫는 순간, 소섭의 눈이 다시 아래를 향했음. 전 세계 통틀어 딱 500켤레만 한정 출시되었다는 제품이 오늘 아침까지 내린 비로 아직 젖어있는 보도블럭을 딛고 서 있었음.


- 그런데 이걸...... 이걸 신었어? 이걸 신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지금?
- 안 신으면?


뭔 헛소리냐는 표정에, 소섭은 하. 기가 찬 헛웃음을 뱉어냈음. 그러니까 이 자식은 자기가 가진 게 한정판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신은 거지? 구분도 할 줄 모르는 거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도 유분수지!

제가 무시하는 왕이보가 어떻게 저걸 갖고 있는지는 따져볼 생각도 못했음. 그저 자신이 구하지 못한 것을 왕이보가 갖고 있고, 왕이보는 그걸 가질 자격이 없는 하찮은 녀석이란 분노만 머릿속에 가득했음. 매장 직원이 "VIP가 구매했다"고 한 말은 머릿속에서 휘발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음.

둘의 대화를 듣던 B가 야, 우리 자세히 구경 좀 하자. 말을 했고 다른 둘이 왕이보의 다리를 붙들었음.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왕이보가 당황한 사이, B가 잽싸게 달려들어 한쪽을 벗겨내었음. 


- 뭐하는 거야!


왕이보가 소리를 치든 말든 B는 벗겨낸 운동화를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척 하다 반대편에 서 있는 소섭을 향해 높이 던졌음. 소섭은 지난 몇 달 동안 그토록 갖고 싶어 안달을 내었던 운동화를 받아 움켜쥐었음. 전세계 수집가들 역시 탐을 내어 몇 달만 지나도 부르는 게 값이었을 한정판 운동화는, 착용으로 인해 이미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서 어디 진창이라도 밟았었는지 진흙으로 밑창이 엉망이었음. 밑창을 받아 쥔 소섭의 손도 더러워졌음.

마치 제 것을 빼앗긴 양, 제 보물이 망쳐지기라도 한 양, 소섭은 왕이보를 노려보았음.


- 아무리 보는 안목이 없고 수준이 낮아도 그렇지. 이걸 이렇게 만들어 놔?
- 헛소리하지 말고 내놔.
- 네가 이걸 어떻게 샀는데? 그것부터 말해 봐. 이거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거 아니거든?


이보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다스렸음. 소란피우고 싶지 않았음. 샤오잔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안 좋은 얘기가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음. 항상 잘하고 싶었고, 최선의 모습만 보이고 싶었고, 그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음. 샤오잔이 저를 거둔 걸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음. 지금까지 참아온 것이, 소섭 패거리들이 저를 무시하고 계속 시비를 거는 빌미가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참은 건 그래서였음. 


- .......선물 받은 거야. 그러니까 내놓으라고.


선물? 소섭이 코웃음을 쳤음. 소섭은 이보의 반대편으로 돌아서면서 손에 들었던 운동화를 있는 힘껏 집어던져버렸음. 소섭에겐 이미 가치를 상실한 물건이니 어떻게 되든 더 이상은 상관없었음. 운동화가 화단 너머 아직 빗물이 채 다 빠지지 않은 운동장으로 날아가 떨어졌음.


- 그래. 그럼 가서 주워 가든가.


그래서 참았는데.... 세 번째는 불가능했음. 이보의 머릿속이 까맣게 점멸했음. 

어제는 벌써 수 개월 째 밤늦게 퇴근했다가 눈만 겨우 붙이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고 있는 샤오잔이 정말 오랜 만에 쉬는 날이었음. 그런데도 휴식을 취하는 대신 저를 데리고 외출을 했었음. 운동화를 사러 가서도 내내 발갛게 충혈된 눈으로 피곤해 하다 급기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쟌거임. 그런데 그런 쟌거가 피곤함을 무릅쓰고 같이 가서 사주었던 운동화가 저 비겁한 자식의 치졸함 때문에 흙탕물 안을 뒹굴고 있었음.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이보의 안에서 폭발해 버렸음.

눈 깜짝할 새 날아든 주먹을, 소섭은 전혀 피하지 못했음. 놀란 다른 아이들이 어버버하는 사이 소섭은 순식간에 코피가 터져 바닥을 나뒹굴었음. 볼썽사납게 쓰러진 채 수 차례 얻어터지면서도 전혀 대항을 못하던 소섭은, 정신차린 제 친구들이 왕이보를 제게서 떼어낸 후에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음. 완전히 흥분한 왕이보는 저를 붙잡은 셋을 뿌리치려 몸부림을 쳤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서너 대씩은 이보의 주먹에 얻어맞았음. 결국 셋이서 이보의 양쪽 팔을 각각 한 명씩 붙잡고 나머지 하나가 뒤에서 이보의 가슴을 결박하듯 단단히 끌어안은 다음에야 멈추게 할 수 있었음.  

그들 주변에는 이미 여러 학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쪽을 구경하고 있었음. 얻어맞은 아픔보다는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었음. 소섭의 분노는 당연히 눈 앞의 왕이보에게 쏟아졌음. 소섭은 세 명에게 단단히 붙들린 이보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어서는 배를 걷어차고 주먹을 날렸음. 마침 지나던 교사에게 제지당하지만 않았으면 반쯤 죽여놨을 거라고, 소섭은 씩씩거렸음. 그러나 곧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지.

상담실에 불려간 다섯 명은 싸움을 한 이유와 과정을 적어 내야 했음. 상담 교사에게 적어 낸 경위서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음. 다만 사용된 단어가 달랐음.


[왕이보가 새 신발을 신고 왔길래 보고 싶어서 "장난"을 좀 치려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왕이보가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왕이보를 말리기 위해 셋이서 붙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신발을 B가 허락없이 벗겨내었고, 돌려달라는 말을 무시하고 소섭이 신발을 운동장으로 집어던지는 바람에 화가 났습니다. 제가 먼저 때린 것은 사실입니다.]


왕이보가 먼저 공격을 했다는 건, 당사자인 다섯 명 뿐 아니라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의 말이 모두 일치했음. 결국 일의 발단이 어찌되었건 간에 왕이보는 폭행 가해자, 소섭은 피해자, 다른 세 명은 목격자 겸 싸움을 말리다가 함께 얻어맞은 피해자의 입장이 되었음.

단순 다툼이 아니라 폭행 사건이고 다친 사람이 있으니 부모님께 연락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보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음.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얼어붙은 이보를 선생님이 조용히 불러내었음. 이보의 보호자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 이보의 부모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이분께 연락해도 되느냐고 물었음. 이보가 대답을 못하자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했는지, 보호자로 오실 수 있는 다른 분이 계시냐고 다시 물었음.


- 제가...... 제가 사과할게요. 연락 안 하시면 안돼요?


불안해하는 이보를 보며 선생님은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래도 보호자에게 연락은 해야한다고 답했음. 여전히 아무 말 못하는 이보를 잠시 바라보다 선생님은 이보를 도로 상담실로 들여보냈음. 의기양양하게 저를 바라보는 소섭 따위 아무래도 좋았음. 

양비서님께 연락하면 당연히 쟌거가 알게 될 텐데.....

샤오잔이 화를 내지는 않을 터였음. 그건 이보도 알았음.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미소 뒤로 실망이 내비치게 될까봐 두려웠음. 안 그래도 바빠서 쉴 시간조차 제대로 없는 샤오잔에게 제 문제까지 얹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 못해 고통스러웠음. 연락을 받게 될 양비서님께도 미안했음. 샤오잔이 입사하면서 양비서도 그룹 비서실로 들어가 샤오잔을 보좌하고 있었고, 샤오잔의 개인적인 일을 주로 처리하던 과거와 비교해 바빠진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저만 참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쓸데없이 감정대로 행동해서 안 그래도 바쁜 두 사람이 제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게 된 거임. 게다가 어쩌면 ㅡ아니, 분명히ㅡ 제 치기어린 행동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될 지도 몰랐음. 아까 보건실로 옮겨가기 전 소섭은 말없는 왕이보의 맞은 편에서 들으란 듯 병원 진단서, 치료비, 정신적 피해 보상, 합의금 운운했었음.

이보 혼자 남아있던 조용한 공간에 휴대폰이 소리를 냈음. 화면의 '쟌거'라는 두 글자에 이보의 가슴이 덜컥 했음. 


'괜찮아?'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처음 들려온 말에 이보는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음.


- .....응
'나랑 양비서님은 회의가 있어서 못 가. 대신 다른 직원 보냈는데 너는 모르는 분이야.'
- .....응
'그 분도 네가 누군지 몰라. 일부러 말 안 했어. 그 직원이 뭐라고 하든, 너랑 싸운 쪽이랑 무슨 말을 나누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그럴 수 있지?'
- .....응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하고 대답만 하고 있는 이보를 샤오잔의 목소리가 가만히 위로했음.


'상대쪽에서 뭐라 하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 참아. 일찍 들어갈게.'
- .....응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이보는 한참 동안이나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었음. 쟌거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야지. 왠지 어린애처럼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오려고 해서 이보는 주먹으로 계속 눈가를 닦아내었음.



가해자라는 연락을 받았다면 변호사만 들이밀었을 자칭 대단하신 사모님들은, 제 자식들이 피해자라고 하자 변호사를 대동해 직접 행차하셨음.
처음에는 탐색하듯 예의를 차리며 서로를 소개하던 자리의 분위기가 돌변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 단정한 양복을 입은 젊은 회사원이 왕이보 학생 때문에 왔다면서 들어선 이후부터였음. 

어떤 관계시냐며 조심스럽게 묻는 담당 교사의 질문에, 그는 이보가 이릉 그룹의 후원을 받는 지원 대상 학생이라고 말했고 담당자 대신 나왔다면서 자기 소개를 했음. 왕이보 학생의 사건과 관련해 요구 사항이 있으시면 이릉 그룹 사회사업 팀에서 검토해서 연락드릴 거라는 이릉 직원의 말에, 그곳에 모인 모두가 이보의 집안 사정을 확신했음.

이보는 삽시간에 저를 보는 눈빛들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따갑게 느꼈음. 내내 의심하던 것을 직접 귀로 들은 소섭이 거의 승리감에 가까운 표정으로 이보를 내려다보았고, 다른 셋도 이보를 비웃었음. 사모님들은 본인들 기준, 보잘 것 없는 학생이 귀한 제 자식들의 몸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어 했음.

무슨 말을 듣건 한 귀로 듣고 흘리라던 샤오잔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 수 있었음.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던 건지, 이보는 그 이후 자리가 파할 때까지 쏟아지는 고성과 비난과 손가락질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음. 당장 무릎 꿇고 빌라는 호통과 정식으로 고소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협박과, 바로 퇴학시키라는 요구가 뒤섞였음. 뺨도 두어 대 맞았음. 선생님의 만류는 소용없었고 이릉 직원은 존재감이 없었음. 










샤오잔은 일찍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지켰음. 정말 오랜 만에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라서, 이보는 싸운 것 때문에 걱정되는 와중에도 기뻤음. 
퇴근한 샤오잔은 언제나처럼 저를 현관에서 맞이한 이보의 얼굴부터 살폈음. 안 다쳤다더니. 샤오잔은 학교에 보냈었던 직원의 보고를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쯧, 혀를 찼음. 예쁜 입술 한 쪽이 터져 멍이 들어 있었음. 어쩐지 뺨도 조금 부어 있는 것 같아서 몹시 언짢았음. 조심스런 손길이 다친 입술을 살며시 쓸었음. 


- 아직 아파?
- 아니.


여전히 다정한 샤오잔의 손길에 안심되고 좋아서 이보는 그 손에 뺨을 부볐음. 미안... 작게 나온 사과에 샤오잔이 뭐가? 물었음.


- 싸운 거.... 잘못했어. 내일 내가 사과하고....
- 안 해도 돼.


단호한 샤오잔의 말에 이보가 고개를 들었음.


- 그치만.....


샤오잔은 두 손으로 이보의 뺨을 감싸 저를 바라보게 만들었음. 반짝이는 눈동자가 온전히 저를 담고 올려다 보았음. 예쁘지. 우리 이보. 너무 예뻐서 누구라도 함부로 하는 건 내가 화가 나서 못 견딜 만큼. 


- 이보야. 형 애인할까?
- 어?
- 싫어? 


이보는 눈만 깜박깜박하면서 멍하니 샤오잔을 올려다 보았음. 애인이란 단어에 쿵. 떨어진 심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오잔은 다른 때랑 똑같이 웃으며 이보의 뺨을 톡톡 두드렸음.


- 다음 주에 딱 하루만 형 애인 해.


똑같은 캔을 사서 먹이더라도 길거리에서 얻어먹는 길고양이와 주인 품 속의 애묘는 취급이 다른 법이거든. 주인이 제 애묘를 위해 어디까지 해 줄 수 있는지 오늘 네게 험한 말을 퍼부었던 그 사모님들이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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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지만 세계관 내 최강 그룹의 최고 실세 이사 발령 ㅈㄴ 가능....
이건 무순이니까.....

이게 말이 돼? 엥? 저거 아닌데? 싶은 모든 설정과 전개는 무순적 허용임






샤오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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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39374] - 2020/11/12 17:59
내센세다ㅠㅠㅠㅠㅜ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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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c9954] - 2020/11/12 18:10
센세 존나 개쩔어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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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ea35b] - 2020/11/12 21:55
갸아아ㅏㅏㅏㅏ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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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11be] - 2020/11/12 22:28
센세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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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e78d] - 2020/11/13 10:40
센세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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