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링허적소문 류위닝 <영원한 가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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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15:07
조회수: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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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초여름, 나는 음침하고 울적한 궁정 생활을 견디다 못해 숙부께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며 외가가 있는 남부 도시 프로티노티아에서 여름을 보내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숙부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어서만큼은 한없는 온정을 보이셨고 특히나 형이 떠나고 나서는 더더욱 마음이 약해지셨기에, 내가 우울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간 군사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것을 격려하는 의미로 나를 프로티노티아로 가게 해주셨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즉시 궁정을 떠나 외종 육촌인 프로티노티아 공작의 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남부의 따스한 기후와 자유로운 기풍을 마음껏 누리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 전 날 승마를 하여 죽은 듯 잠이 들었던 나는 잠결에 성의 안뜰이 몹시 시끌벅적한 것을 느꼈다. 얼핏 창가를 보니 아직 햇볕이 뜨거워지기도 전의 이른 아침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시끄러운지 의문이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겨우 눈을 떠서 창문을 열었는데, 그때 청명하고 달콤한 여름 아침의 바람이 얼굴로 불어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평생 맡아본 중 가장 향긋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였다. 그리고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깜빡이며 내려다본 그곳에,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과감하게 백마를 달려 들어와 시계탑의 그늘 아래 세우고 돌바닥 위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그대로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좌측 날개의 정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 소년은 훗날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안티노티아의 백작, 자이샤오원이다.

사실 안티노티아의 백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내가 본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오만하고 나한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프로티노티아 공작을 방문하러 와서 나와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왕세자라고 하는데도 그닥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래서 뭐?’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 눈빛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그가 돌아가자마자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공작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나 도무지 알아내지 못하였다.

열흘 후 승마를 하다 그를 우연히 다시 마주쳐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그가 보였던 ‘그래서 뭐?’의 눈빛은 내가 고까워서가 아니라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것 때문에 매사가 의미 없게 느껴져서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살아 숨쉬는 것조차 다 의미 없게 여겨졌기에 어차피 여름이 지나면 수도로 돌아가버릴 나에게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할 때의 그의 태도는 깊은 사과의 뜻과 동시에 무엇도 감추지 않는 소탈한 진심을 담고 있었는데, 그 비굴하지 않되 오만하지도 않은 진정성이 나에게는 일종의 충격처럼 느꼈다.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해준 사람은 죽은 형 말고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기품이 온몸에 베어 있으면서도 체면과 겉치레에는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 사람인 듯하였다. 또한 나는 그가 한 말에도 아주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가 말해준 감정은 내가 형을 잃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내가 그 날 일기에 그것을 묘사하며 사용했던 표현과 거의 똑같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그 날 그 자리에서, 그와 깊은 교분을 맺었다. 마침내 내가 그렇게 소중한 친구를 얻게 된 것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진정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

그리고 그 여름 내내, 나는 그와 왕래하며 유년기 이후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내가 태어나서 본 중에 가장 똑똑하고, 진실하고, 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야 느끼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안티노티아의 백작 자이샤오원은 이름도 거창하고, 표정은 얼음 같고, 언변은 날카롭고 냉철했지만, 친해지고 보면 어린 아이 같은 구석도 많은 것이 귀여워서 자꾸만 건드리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관해서는 흡사 박사 같았지만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가끔 기상천외한 소리를 하고는 했는데, 내가 그것 때문에 폭소하면 그는 나뭇가지에 찔린 병아리가 부루퉁하게 몸을 부풀리듯이 못마땅해져서는 가버리려고 했다. 겉보기에는 흡사 빙벽 같이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더 놀림받는 걸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의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볼 때마다 더욱 달콤한 기분이 되어 도무지 그를 놀려 먹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웠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번번히 너무나 삐쳤으므로 점차 사력을 다해 참으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점점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말에 진지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덕분에 그 후부터 그는 더이상 내게 삐치지 않고 자신의 특이한 속내를 편히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인간 관계에서 노력을 통해 거둔 최고의 쾌거였다. 하여 나는 지금도 그의 서신에 답장할 때면 그를 놀려먹을 거리가 스무 가지는 생각나지만 그것들은 모두 마음 한 켠에 묻고 되도록 요점에만 머무르려고 애쓰고는 한다.

그와 함께한 열여섯의 그 여름은 흡사 달콤한 꿈과도 같았다. 내 생에 사랑했던 모든 이는 떠나가고 이제 남은 이는 숙부 밖에 없는데, 이렇게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얻은 것이 마치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의 곁에 있으면 고향처럼 따스하면서도 여행길처럼 설렜다. 평생 이렇게 그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서른도 되기 전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름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는 공립 군사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수도로 돌아가야 했다. 궁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 오자 나는 너무 아쉽다 못해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 되었는데, 그러다 돌아가기 전 날 밤에는 급기야 한밤중에 말을 타고 성에서 뛰쳐나가 밤 승마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샤오원도 내가 떠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말을 타고 여름 벌판을 질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덧 말발굽 소리만 들어도 그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버린 나는, 그 대지를 울리는 소리에 멀리서부터 온 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오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즉시 그를 향해 내달렸다.

나를 맞닥뜨린 샤오원은 내가 진짜 나인지 유령인지 가늠하려는 것처럼 말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달빛을 받은 채 백마를 타고 백의 차림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마치 밤의 정령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말에서 내렸고, 그러자 샤오원도 나를 따라 말에서 내리려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듯한 염원과 격정이 나의 가슴 속에 치솟아 오르며 용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가 말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를 확 받아 두 팔로 부둥켜안았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가만히 있던 샤오원이 이내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나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당겼다. 그리고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 그때 내 목에 와닿던 그의 숨결. 그의 따스한 육신. 이대로 그를 놓아버리기가 얼마나 애틋하고 힘이 들던지. 신이시여, 부디 이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게 해주세요! 마음 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빌었던지!

그리고 그때, 샤오원이 나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리키아에서 만나자고. 영지로 돌아가는 즉시 부친께 자신을 에리키아의 대학에 보내 달라고 청할 테니, 나도 왕숙께 허락을 얻어보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온 몸에 피가 도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마치 삶에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만 같았다. 나는 감격에 젖어 그를 끌어안은 채 그러겠노라고 답하였다. 어찌나 목이 메었던지 바람 소리만 겨우 나왔지만 샤오원은 그럼에도 나의 대답을 알아들은 것인지 작게 웃었다.

그 날 밤 우리는 달빛 아래서 서로를 품에 안았고, 재회의 달디단 기약과 꿈에 젖어 밤새도록 함께 울고 웃었다...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 날 붉은 동이 터올 무렵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이별하였다.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기차 칸에 아무도 들이지 않고 숨죽여 눈물이 허벅지까지 떨어질 정도로 울었는데, 도착하기 십 분 전까지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 바지의 그 부분만 젖어 있는 것을 애써 가리며 내려야 했다.

열여섯의 나는 그리하여 그 날부터 오버케언 제국에서 통용되는 대학 입학 시험에서 숨마 쿰라우데를 받기 위해 분투하게 되었다. 사실 왕세자는 고등 교육 과정을 꼭 대학에서 수료할 필요는 없었다. 궁정 교사를 통해 받는 교육만으로도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숙부께서는 그닥 탐탁치 않아 하시면서도 가장 좋은 성적을 받으면 보내주마고 약속하셨고, 그렇게 나는 태어난 이래 가장 큰 학구열을 불태우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달 전, 그토록 고대하던 나의 성적이 왕궁으로 날아들었다. 숨마 쿰라우데였다.

나는 당장 문을 열고 뛰쳐나가 동화 속 왕자처럼 복도의 시종장을 끌어안고 왈츠를 추었다. 아아, 그 사실을 샤오원에게 서신으로 알리고, 답장을 받던 그 모든 기억이 어제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나 꿈처럼 행복한 순간들이었던지!

샤오원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려 아직 그 원수 같은 군사 학교 과정을 다 마치지 못했으므로 아무리 서둘러도 아직 세 달은 있어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샤오원은 지성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었으므로 시험은 문제없는 데다, 그의 부친은 숙부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숨마 쿰라우데까지 나오지 않아도 샤오원을 에리키아 대학에 보내주기로 약속하였으므로 그가 조만간 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끼는 이의 얼굴도 못 보고 일 년이 넘게 죽은 듯 공부만 하며 보낸 나인데, (연말에 잠깐 보긴 했지만) 반 년 정도 더 못 기다리겠는가? 게다가 에리키아의 대학은 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자유로운 학풍을 자랑하는 곳으로, 비록 샤오원과 당장 재회할 수 없을 지라도 대학 생활은 분명 활기와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었다. 특히나 샤오원을 기다리며 보내는 하루하루라면 더욱 꿈과 같지 않겠는가?

장릉혁적소문 장링허자이샤오원 류우녕 개시추리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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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답고 달콤한 한여름밤의 꿈과 같아서 혹시나 꿈에서 깨어버릴까 걱정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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