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링허적소문 류위닝 <영원한 가을> 1

빌헬름 마이어 푀르스터의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일부 설정을 차용함

 

어쩌면 나는 왕세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출생부터 그러했다. 나, 장링허는 칼리스텐 국왕 부처의 아들로 태어나 채 한 살도 되기 전부터 왕세자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평생 왕세자였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 기구한 사연은 이러하다. 모후께서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어렸기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변의 이야기에 의하면 겨울 밤에 오페라를 보러 극장에 가셨다가 화재가 일어나는 바람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다 사망하셨다고 한다. 부왕께서는 그 후로 3년을 기쁨도 즐거움도 없이 보내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깨어나지 않으셨고, 그대로 붕어하셨다. 그때 부왕의 나이가 스물아홉이었다.

당시 고작 다섯 살이었던 나는 당연히,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왕이 되지 못하였고, 내 숙부께서 대신 왕위를 계승하셨다. 숙부께서는 현왕으로, 냉철하고 현실적이며 총명하시어 가히 위인전에 나오는 군주와도 같은 분이다. 그러나, 비록 희미한 기억 속의 부왕만큼 감상적이거나 부드럽지는 않으실 지라도 그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의 이면에는 지극한 따스함 또한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숙부께서 왕이 되시자 자연히 왕세자 지위는 숙부의 독자가 이어받게 되었는데, 바로 나보다 한 살 많은 사촌형이다. 사촌형은 어릴 적부터 나와 매우 가까워 나는 언제나 형을 사촌이 아니라 그냥 형으로 불렀다. 왕국 남부의 오렌이라는 도시에는 부왕과 숙부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의 조부로부터 상속받은 중세풍 성이 한 채씩 있었는데, 두 성은 마주보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각각 높은 오렌 성, 낮은 오렌 성이라 불렸다. 부왕의 성은 높은 산자락에, 숙부의 성은 낮은 산자락에 우뚝 서있는 모습이 진정 형과 아우, 딱 부왕과 숙부 같았다. 여름이면 나의 가족과 숙부의 가족은 함께 휴가를 가 각자의 성에 머무르고는 하였는데, 그때마다 나와 형은 자정에 몰래 빠져나와 마주보는 테라스에서 등불을 흔들자고 굳은 약속을 했으나 여지없이 잠에 들어버리거나 시종들의 삼엄한 감시에 걸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한 번은 기필코 형과 밤을 지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유모에게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겠노라고 약속을 해놓고 숙부 성의 궤짝에 숨어서 만찬이 끝나도록 나오지 않은 적이 있는데, 결국 시종장이 대성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죄책감이 들어 슬며시 나왔다가 부왕께 엄중한 꾸중을 듣고야 말았다. 하지만 내가 들은 꾸중은 형이 당한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으니, 숙부는 부왕보다 훨씬 무서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숙부는 형에게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나만 만나면 체통을 잃는다며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을 내셨다.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숙부의 목소리에 기가 잔뜩 죽어버린 나는, 형을 뒤로 한 채 이게 마치 내가 주도한 계획이 아닌 양 조용히 부왕의 성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형에게는 미안했지만 같이 있는다고 딱히 덜 혼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 부왕께서 갑자기 붕어하신 직후 왕숙은 고아가 된 나를 가여이 여기시어 아직 여름도 아닌데 형과 나를 특별히 오렌 성으로 데려가 주셨다. 그때의 나는 부왕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울지 않는다며 씩씩하다는 찬사를 한 달 넘게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고, 그 칭찬에 고양되어 더욱 씩씩하게 지내고 있었기에 슬픔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으며, 그저 이번에는 숙부의 성에서 원 없이 밤을 지새도 좋다는 말에 아주 기대가 클 따름이었다. 그 날만큼은 기필코 형과 밤을 새워 놀기로 굳은 다짐을 한 나는 형과 함께 신나게 낮은 성의 복도를 질주하며 난리를 피웠다.

얼마나 그렇게 놀았을까? 나는 문득 형을 따돌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달려가 구석에 몸을 숨겼는데, 그러다 무심코 벽에 난 창문을 내다보게 되었다. 그 창문은 높은 오렌 성을 정면으로 향해 있었기에 네모 틀 안으로 부왕의 성의 정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마치 홀린 것처럼,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모후와 부왕, 우리 한 가족의 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별안간 왈칵 눈물이 터졌다.

그동안 부왕의 성에서 숙부의 성을 바라볼 때면 늘 이곳에서 밤을 지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이제 완전히 이곳에 속하여 영영 저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붙들고 돌아와 달라고 빌고 싶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 돌아와 줘... 어떻게 나만 남겨두고 이렇게 가버린 거야. 어떻게 이렇게 지나가 버린 거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렇게 돌 벽에 머리를 박고 통곡하고 있는데 그때 나를 찾아 활기차게 뛰어오던 형이 나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 나는 등 뒤로 멈춰서는 형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울었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할 만큼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다.

형은 나의 울음 소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내 뒤로 천천히 다가와 내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서있었다. 당시 형은 고작 여섯 살이었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형이 흡사 중세 초상화 속 선조처럼 늠름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습지만 당시 다섯 살이었던 나에게 형의 그 한 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눈물을 그치자 형은 “오늘 같이 높은 성에서 잘까?”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 전까지 그렇게 낮은 성에서 자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다 막상 그럴 수 있을 때가 되자 높은 성이 그립다고 인정하는 것이 민망했고, 고작 다섯 살의 나이에도 내가 너무나 어린 애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날 밤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부왕의 성의 내 침실에서, 형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해가 뜰 무렵이 되어서야 서로의 침대에 가로로 걸친 채 잠이 들었다.

형과 함께 보낸 유년기는 정말로 즐거웠다. 갑작스럽게 왕세자가 되어 공부할 게 산더미였던 형과는 달리 나는 오직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게 놀아볼까 하는 궁리로 하루하루를 보냈으므로 근심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형이 나 대신 왕세자가 되어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형이라는 버팀목 아래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너무나 든든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나의 이 기구한 팔자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막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형은 자연히 열 살이 되었는데, 그러자 숙부께서 남자는 일찍부터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극구 군사 기숙학교 진학을 고집하셨다. 형이 학교로 떠나가던 날, 나는 어찌나 형을 보내기 싫던지 실연당해 병석에 누운 소설 주인공처럼 해서라도 형의 입학을 저지해보려 하였다. 그러나 과도한 건강 탓인지 아무리 슬퍼도 몸은 멀쩡했고, 결국 궁정 의사의 꾀병 진단에 의해 나의 몸져눕기 작전은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못해 형을 궁문에서 전송하고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던 그 아홉 살의 가을 아침,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슬픈데도 몸이 멀쩡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좋은 시절은 꼭 흘러가 버리고야 말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내 몸과 나 자신은 이렇게 멀쩡히 남아 있는 게 이상하다고. 그래도 그때는 울지는 않았다. 아직 멀게만 느껴졌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형이 방학을 하여 돌아올 것이기에.

그러나 그 해 우리 칼리스텐 왕국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고, 왕궁은 무사했지만 왕립 군사 학교는 순식간에 전염병에 휩쓸리고 말았다. 역병이 창궐한다는 소식을 들은 숙부는 뒤늦게 형을 가까운 별궁으로 대피시키려 하셨지만, 이미 감염이 되어버린 형은 건강이 급격히 쇠하여 더 이상 별궁으로 옮길 수조차 없게 되었다. 결국 닷새 후, 형은 고작 열 살의 나이로 절절 끓는 고열 속에서 죽고 말았다.

그때가 아마도 태어나서 제일 크게 울었던 때인 것 같다. 그렇게 좋은 형을 하늘은 어찌 데려갈 수 있단 말인가? 형이 없으면 살아도 의미가 없었다. 잠을 자도, 음식을 먹어도 다 의미가 없었다. 내가 뭘 하든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형은 어차피 죽었는데. 이제 봐줄 사람도 없는데. 나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장례식이 끝나고 내가 다시 왕세자가 되는 순간까지, 중간중간 쓰러져 잠들 때 빼고는 단 1분도 쉬지 않고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아들을 잃으신 숙부 앞에서 그렇게 귀가 찢어져라 울었으니 내가 숙부였다면 나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숙부는 그 대신 오히려 나를 허리가 꺾일 정도로 꽉 끌어안고는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거세게 두드리셨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이렇게 울면 먼저 떠나신 부왕과 모후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서 전보다 더 크게 울었지만, 그래도 그 말이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그 날 저녁이 되자 차차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모후와 부왕, 사촌형까지 떠나 버리자 우리 가족에는 오직 왕숙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구한 운명으로 인해, 나는 아홉 살의 나이에 또다시 칼리스텐 왕국의 왕세자가 되었다.

나의 칼리스텐 왕국은 오버케언 연맹제국의 일원으로, 연맹에서 군사력은 가장 약했지만 역사는 가장 길었다. 칼리스텐 왕국은 중세에는 칼리스티아 왕국이라 불렸는데, 중간에 언어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칼리스텐이라 이르게 된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국호를 변경한 적이 없었으므로 1300년째 같은 이름을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연유로 칼리스텐 왕실은 비록 대내적 기풍은 소박하지만 연맹에서는 제2맹주의 의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왕국은 다른 모든 연맹국과 마찬가지로 연맹 가입을 원치 않았었는데, 첫째로는 맹주인 오버케언이 역사도 짧고 후안무치하며 호전적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이 연맹제라는 것이 말이 연맹이지 사실상 군사적 속국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20년 전, 나의 조부께서는 압박 속에서 몇 년을 버티시다 결국 연맹 협약에 인장을 찍으셨고, 그 날 이후 우리 칼리스텐은 오버케언의 실질적 속국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일곱 살 무렵 역사의 이 대목을 배우고 나서 숙부께 “제국은 악마입니까?”라고 여쭈었다. 숙부께서는 내 말을 듣고 은근히 속이 시원하셨던지 눈썹을 무려 2밀리미터나 움직이셨다. 내가 다시 왕세자가 된 후부터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엄히 단속하셨지만.

연맹국의 왕자들은 왕세자라 할지라도 제국이 전쟁을 하면 원칙적으로 모두 동원되어 군을 지휘해야 했으므로, 이를 위해 늦어도 열다섯 살이 되면 왕립 군사 학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는 것이 의무였다. 제국은 본래 맹주부터가 태자의 자리를 중히 여기지 않고 그저 계승 서열 1위가 저절로 황태자라 불리는 구조였으므로 연맹국에서 자체적으로 왕세자를 섬기는 것까지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연맹국의 왕세자를 예우해주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나 또한 다른 공작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전쟁이 날 가능성도 희박하고 훈련도 다 형식적인 것이지만 나는 열네 살의 나이로 형이 그랬듯 왕립 군사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5년 전 형을 군사 학교로 떠나보낼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났었는데 막상 내가 갈 때가 되자 슬프기는커녕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사실 그때쯤의 나는 잎을 다 떨군 겨울 나무처럼 쓸쓸한 궁정에서 숙부와 단둘이 사는 것을 점점 견딜 수 없어졌고, 너무 외로워 죽을 지경이었기에 새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벗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없이 산지 어언 5년이 지난 시점이다 보니 그렇게라도 같은 또래의 사람들과 어울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왕립 군사 학교의 학생들은 모조리 숙부의 주물로 찍어 만든 장난감 병정들과도 같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이렇게 전국의 융통성 없는 소년들을 다 불러 모아 놓은 것인지 그 선발 기준이 실로 궁금할 지경이었다. 우리 왕국(과 인근의 바스 공국)에 이렇게나 재미없는 소년들이 많았다니!

기대했던 2년 간의 군사 학교 생활은 그렇게 30여 명의 숙부들과 함께하는 악몽 같은 시간이 되고 말았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은 웬만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다.

결국 열네 살의 친구 없는 왕세자로 군사 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열여섯 살의 친구 없는 왕세자로 군사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게다가 2년 동안 떠나 있다 돌아오니 숙부와의 사이까지 더욱 어색해져 이제는 온 제국에서 나보다 더 모두와 어색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내가 사랑했던 이는 모두 내 삶에서 떠나가고 이제 남은 이는 숙부뿐인데, 그 숙부마저 나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완전히 무심하지는 않다고 하였던가. 그렇게 내가 의기소침해져서 군사 학교에서 돌아온 지 두 달 째가 되던 여름, 운명은 나에게 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보내주었다.

장릉혁적소문 장링허자이샤오원 류우녕 개시추리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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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눈 앞에 펼쳐진듯한 어린 왕세자의 생활이 이 가을과 너무 어울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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