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렴옥막은 연자경도 단오도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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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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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자경

'중국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연자경의 별칭 중 하나로 류위닝 본인도 첫 방영 행사에서 언급한 바 있음

그런데 나는 연자경과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시작할 때의 표면적인 설정만 유사할 뿐이고, 주렴옥막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장점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작품이라고 생각함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고전 명작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 중 하나임. 그 성공의 원인은 바로 통속적인 재미에 있음.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매우 강렬하고 뚜렷한 줄거리를 갖고 있음. 그리고 이처럼 강렬하고 뚜렷한 줄거리 전개가 가능했던 가장 주된 이유에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의 독특한 성품이 있음. 에드몽 당테스의 성품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음. '가차 없음', 그리고 '주저 없음'.

에드몽 당테스는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 같은 에너지로 복수를 해 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 건 반드시 갚아줌. 그리고 에드몽 당테스에게 있어 복수는 뜨겁게 쟁취하는 거임. 세상에 복수보다 중요한 건 없고 복수하지 않는 삶은 죽은 것과 같기에, 복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 따라서 에드몽 당테스는 복수를 위해서는 만사를 제치고 뭐든 일단 실행에 옮기고 봄. 조금의 주저도 없음. 때로는 조증 삽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모할 정도로 과감함. 하지만 바로 그 무자비한 과단성 때문에 관객들은 에드몽 당테스의 활활 타는 에너지에 이끌려 줄거리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끝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됨. 이건 작품이 독자들에게 표해 마땅한 예의이기도 함. 결혼식장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끌려가는 에드몽 당테스를 보며 함께 마음 졸이고, 14년의 기나긴 옥살이를 보며 함께 분개하고, 탈옥 끝에 전해 들은 부친의 부고에 함께 슬퍼했던 독자들에게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이 정도는 해 줘야 되는 거임. 아니라면 그 긴 빌드업을 읽으며 감정 이입을 한 독자들이 뭐가 됨? 그리고 본래 에드몽 당테스가 그처럼 무자비하고 과감한 사람이었기에 마지막 순간 무고한 옛 연인 메르세데스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단 한 번 양보를 한 순간, 에드몽의 그 사랑이, 한때나마 메르세데스를 향했던 그 순정이 그토록 가치있고 애틋하게 느껴진 거임 

그런데 연자경은 가차없는 남주가 아님. 그렇게 피맺힌 원한을 품고 시한부의 몸으로 복수를 쟁취하려는 남자가 시작부터 사소한 정에 너무 심하게 휘둘림. 자기 상단 구성원을 의리 있게 아끼더라도 그 사람들은 스스로 동의한 이상 복수에 동원되는 게 소명이라고 생각해야 되는데, 아예 그런 일에 투입하는 것 자체를 망설이고 죄책감을 느낌. 이건 흡사 지휘관이 휘하 병사들을 아낀다고 전쟁에 아예 안 내보내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임.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지극히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사람들은 당연히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지. 이 부분은 랑야방의 매장소라는 훌륭한 참고 자료가 있음에도 이렇게 표현됐기에 더 아쉬움. 잘만 쓴다면 충분히 의리와 투철한 목표 의식을 균형있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거임 

그리고 연자경이 단오에게 끌리는 과정도, '복수에만 평생을 바치려 했으나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로 인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표현되는게 아니라, 그냥 원래 연애를 기다리고 있었던 남자처럼 표현됨. 연애를 안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사람 같음. 단오와 처음 만났을 때 연자경의 태도를 두고 모두가 엄청 무섭고 무자비하다는 듯 바람을 잡았지만 사실 연자경은 시작부터 처음 만난 노예를 떠받들어 모시지만 않았을 뿐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단오한테 잘해줬고, 그 뒤로도 너무 빨리 사랑에 빠져 버림 

연인으로서의 연자경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매력을 살리지 못함. 연자경은 연애를 시작하는 즉시 흔한 현대극 남친이랑 별 차이가 없어져 버림. 이럴 거면 애초에 두 사람 관계를 주종관계로 설정한 이유를 모르겠음. 연자경은 단오라는 노예의 주인임. 그 관계 구도에서만 오는 솔깃한 흥미가 있는 건데 주렴옥막은 그 부분을 전혀 살리지 못함. 연자경을 어떻게든 적당히 좋은 남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임. 주종 관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아무리 노예를 동등하게 대하고 잘해주더라도 최소한 노예제라는 무자비한 상하 관계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함. 그런데 연자경은 그게 아니라 아예 평등 사회의 보통 남친이랑 똑같이 행동함 

연적인 장진연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임. 연자경 같은 설정의 남주한테서 관객이 기대하는 게 초등학생처럼 유치하게 섭남이랑 티격대고 질투나 하면서 부엌에서 같이 국 끓이고 마당이나 쓸고 있는 거였겠음?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다 해도 연자경의 가장 큰 정체성인 복수만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 작품은 참작의 여지가 있었을 거임. 그런데 연자경의 복수는 너무나 싱겁고 카타르시스가 없음. 어떤 캐릭터가 몬테크리스토라는 수식어로 불리기 위해서는 다른 건 몰라도 복수만큼은 반드시 환상적으로 해내야 함. 그런데 연자경은 그렇지조차 않음. 말로는 자기는 한 가지만 보고 나아가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데, 실상은 한 가지만 보지도 않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도 않음. 그럼 이 캐릭터의 의의는 뭐야? 오히려 저 설정에 부합하는 건 백수비가 아닐까 싶음. 연자경을 볼수록 백수비가 그리워짐 

전반적으로 연자경은 작품과 캐릭터가 완전히 따로 놀아버린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음. 초반 설정은 작품에 최선으로 해놓고, 캐릭터 형성은 완전 딴판으로 해버림. 제작진도 연자경의 초반 설정 같은 남주가 작품을 흥미롭게 해준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기껏 그런 설정을 해놓고 다른 모~든 중드에 나오는 똑같은 남주의 면모를 그대로 부여하려 하다 보니 캐릭터가 완전히 붕괴 돼버린 듯함. 그런 설정을 해놓고는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씬도 넣고 싶고, 남주가 귀엽고 유치하게 질투하는 장면도 넣고 싶고, 남주가 사실은 선량하고 마음이 따뜻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도 넣고 싶고, 여주 장사를 내조하는 남친의 면모도 보여주고 싶었던가 봄. 그래야 모든 중드 남주가 가진 덕목을 갖춘 남주가 되고, 그래야 안전하니까. 그래서 도전 정신과 일관성은 날려 버린 거임

제작진은 애초에 연자경을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남친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버렸어야 함.  몬테크리스토가 성공한 이유는 알렉상드르 뒤마가 에드몽 당테스를 천주교 윤리 앞에 흠결 없는 남주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임. 주인공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를 하는 장면은 있지만 그건 에드몽 개인의 생각일 뿐 작품 전체가 그 합리화를 위해 흘러가지는 않음. 제대로 형성된 장편의 주인공은 흠결이 있으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될 수 있음. 아니, 오히려 진정 매력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흠결은 거의 필수라고도 볼 수 있음. 그런데 이 제작진은 연자경을 애초에 하나의 온전한 캐릭터로 보지 않고 여주 위주의 서사에서 오직 인기 있을 만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 남주로만 형성한 듯함. 그러니까 성의 있게 흠결과 매력이 공존하는 깊이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대신 이렇게 떼우게 된 것 같음. 정 그 짧은 분량 안에 깊이 있는 캐릭터 형성을 하기가 어려웠으면 차라리 고전 소설 남주처럼 직선적이고 뚜렷한 캐릭터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음. 현대 작품에 그런 남주가 드물다는 건 알지만 때로는 적은 분량에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기 위해 그런 고전 연극 남주 같은 강렬한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연자경도 차라리 저렇게 표현됐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싶음 

 

2. 단오 

나는 주렴옥막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엄청난 복수극의 선전포고를 하고 시작한 것치고는 연자경의 행보가 너무 싱겁길래, 혹시 단오가 나중에 흑화해서 진정한 에드몽 당테스가 되려나 하고 희망을 품었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도 아니었음 

단오는 시작 부분만 빼고는 복수심이라는 게 안 보이는 캐릭터임. 보다보면 이 작품이 애초에 복수라는 모티브가 등장했던 작품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단오는 내내 완전히 다른 얘기만 하고 있음. 큰 원한도 갚을 생각이 없고, 작은 원한도 갚을 생각이 없고, 심지어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한테 정과 미련이 남아서 질척거리고 적선하려고 함

 

주렴옥막은 시작할 때는 흡사 독이 든 것처럼 뚜렷하고 매혹적이었기에 앞으로 엄청나게 강렬한 복수극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했음. 그런데 보다보니 그 시작 부분은 연막이었고 진짜 주렴옥막은 오히려 시트콤이나 일상물에 가까운 작품인 것 같음. 그냥 제작진이 배우들 데려다 놓고 보고 장면 이것저것 시켜보면서 개연성은 신경도 안 쓰는 작품. 그런 일일 시트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거면 시작부터 그런 작품으로 했어야지 세상에서 그런 전개가 제일 안 어울릴 설정으로 그런 전개를 해버리면  어떻게 해?

 

류우녕 조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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