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위룡정백연 천사의 집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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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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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내가 수호하던 아이가 하나 있었어. 남자 꼬맹이였는데... 걔가 웬 얼음 동굴에 갇혀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내가 그만 천국의 금기를 어기고... 모습을 드러내서 걔를 구해버렸어. 그 바람에 이렇게 됐지.”

위룡은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내 말을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심각한 기색이 깃들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에 대해 지금처럼 잘 알거나 연민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그 세 원칙으로만 수호의 직무를 수행해 왔어. 특히나 아이를 수호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나는 엄정의 가면을 쓰고 그 아이를 참 야박하게 대했어. 어린 아이니까, 수호천사가 인생을 쉽게 봐주면 버릇이 나빠질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애는 이상하게 나의 존재를 느끼는 것 같은 언행을 자주 했었는데, 내가 그 애를 도와주면 걔가 진짜 내 존재를 알아챌 것 같았거든. 그래서 괜히 심술을 부리면서 수호천사의 재량으로 살짝 도와줄 수 있는 일들도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지.

수호천사들은 본 직무가 아님에도 저마다 천국의 눈을 피해 이따금씩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런 자비를 많이 베풀고는 했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한 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어. 예컨대 그 아이가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수급이 안 되어 받지 못하게 된 때에도 작은 요행조차 부려주지 않았고, 갖은 사소한 소원을 빌어도 들은 척도 안 했어.”

불과 2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나 자신을 떠올리니 유치하기도 하고, 그 기억이 아프기도 하여 나는 작게 웃었다.

“아무튼 그랬는데... 뭐, 자세히 기억은 안 나. 그 아이의 기억은 거의 잃어버렸거든. 그런데 걔가 어떤 영문인지 혼자 얼음 동굴에 들어갔다가 그만 천장이 무너져 빙벽 속에 갇히고 만 거야. 나는 그때만 해도 인간 아이의 몸이 얼마나 약한지 실감하지 못했기에 그게 그렇게 큰 위험 상황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어. 그저 또 부모님 말을 안 듣고 나대다가 저런 일을 당했구나 하며 혀를 끌끌 찼지. 그런데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점차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아이는 급기야 헛것을 보기 시작했어. 나는 당황해서 우왕좌왕 했지. 하지만 당연히 개입해서는 안 됐어. 그건 그저 사고였으니까... 악의 공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아이가, 촛불처럼 끊기려던 마지막 숨결 속에서... 나를 부르는 거야. “천사님, 도와주세요...”라고.”

다시금 그때의 놀라움과 당혹이 떠올라 나는 작게 웃었다. 나는 눈에 고인 눈물을 감추기 위해 급하게 얼굴을 돌렸다.

“단 한 번도 자기를 위해 작은 소원조차 들어주지 않은 수호천사의 존재를, 그 아이는 어찌 그다지도 믿고 있던지... 어쩜 그때까지도 내가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나의 선량함과 자비에 대해 그처럼 한없는 신뢰를 품고 있던지...

그 생각을 하니 순간 참을 수 없는 연민이 치솟았어. 그래서 나는 그만 천국의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을 해버렸지. 대놓고 본모습으로 현현해서 그 아이를 구해준 거야. 그래, 인간의 명운을 바꾸는 건 천사의 본신을 드러내 힘을 다해야만 가능하니 두 죄를 동시에 짓는 일인데, 그걸 해버린 거야. 그렇게 그 아이를 살렸지.

나는 즉시 천국으로 소환당했어. 천국은 한바탕 뒤집어졌지. 미카엘께서는 그 사태가 몇 백 년에 한 번 일어날 재앙이라며 나를 거세게 꾸짖으셨어. “천국은 인간의 기억을 지울 수 없고 성총을 입은 인간은 손에 성흔을 입게 되나니, 그 아이의 기억에서 그 일은 평생 지워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너의 첫 번째 과오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한 것은 네가 수호천사의 본분을 넘어 악이 아닌 불운으로부터 인간을 수호한 것이라. 이것이 너의 두 번째 과오이다. 그러나 가장 중한 것은 네가 그리 할 정도로 공정을 저버리고 그 아이를 편애한 것이니라. 이것이 너의 세 번째 과오이다.” 천공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던 그 음성이 아직도 귀에 선해.

미카엘께서는... 그 길로 내 양 날개를 뜯어내고, 내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얼굴과 정보에 대한 기억을 지우신 후, 나를 지상으로 내치셨지. 그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략적으로 기억이 나. 그것까지 지우면 내가 내 뼈저린 과오를 뉘우치지 못할 테니 그 기억은 남겨두신 거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니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다. 미카엘의 준엄한 훈계와 떨어져 나가던 날개, 천국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던 순간의 절규와, 진흙 속에 처박혀 인간으로서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절망...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자조했다.

“그래서 내가 실패한 천사라는 거야. 애초에 수호천사 자체가 승천 성자보다 미천하지만, 특히나 자네처럼 완벽한 성자에 비하면 나는 미물 수준이야. 그 어린 나이에 승천을 한 걸 보면 태어나서부터 정도만 걸으며 엄청난 선행과 희생을 했겠지?”

위룡은 방금 나의 무거운 이야기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위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외로 그의 음성은 따스하고 가벼웠다.

“네... 저는 어릴 때부터 승천이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최대한 빨리 승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행이란 선행은 다 했어요. 아주 신실한 신앙 생활을 했죠.”

참으로 의외였다. 내 평생 일부러 승천을 하기 위해 선행을 했다는 성자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설령 그랬다 한들 그걸 이렇게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도 실로 놀라웠다. 이 남자는 너무 신실하다 못해 아예 거짓말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승천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자네도 모태신앙인가?”

“네... 하지만 어릴 때는 그렇게까지 신실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천사도 그냥 요정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나는 새삼 이런 성자한테도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 귀여워하며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누가 안 그랬겠나.”

위룡은 눈을 내리깐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가 내 웃음을 놀림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하여 그를 가만히 보았다. 그런데 순간 그의 얼굴에서 읽힌 감정은 내가 조금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아니, 어린 나이에 천사를 요정으로 생각했다고 저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낀단 말인가? 나는 그를 위로하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런데 그때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됐나요? 이 세상으로 떨어진 후에도 많이 힘드셨나요?”

그 말을 하는 그의 두 눈에 고통이 스쳤다. 그는 정녕 나의 고통에 공감하여 그처럼 아픈 얼굴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고작 나 때문에? 그렇다면 방금 그 죄책감도 고통받는 나를 돕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대체 이 어린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순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내게 있어 천국은 준엄할 뿐 따뜻한 곳이 아니었는데, 오늘 이 지상에서, 땅에서 태어나 천국에 이른 한 어린 인간에게서, 천국의 따스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숱한 고난에 심장이 단단해졌다 여겼으나 문득 울컥하였다. 잠시 멈칫했던 나는 얼굴을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말했다.

“그랬지... 천국에서 내쳐진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그처럼 신의 은총을 저버리고 실패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팠어. 천사한테 20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그 짧은 찰나가 열병 속에서 보낸 하루처럼 얼마나 길고 아프던지.”

나는 엷게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아픔도 무뎌졌어.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아파 몸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점점 몸이 아픈 것이 느껴지더군. 그때 내 마음이 조금 치유된 것을 알았어. 그렇게 혹독한 마음의 고통 끝에 혹독한 몸의 고통을 겪어내고 나니, 마침내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 나는... 처음부터 수호천사가 되기에는 적합치 않았어. 흔히 인간의 면모라고 하는 감정과 불완전함이 나란 존재의 속성이었던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한결 편안해졌어.

그런데 그러고 나니 이젠 또 두려움이 생기더군. 이렇게 인간 같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 인간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천사로서의 나 자신을 완전히 잃게 될까봐. 그때는 천국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음에도 천사라는 정체성과 천국이라는 고향은 나의 근간이었기에, 그 미련을 놓아버릴 수가 없었거든. 그렇다고 지상을 내 집으로 삼기에는 이곳에서 내가 저지른 과오와 경험한 멸시가 너무나 아파서, 이곳은 나의 영원한 유배지일 따름이었어. 그러니 천사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텐데, 그러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뜻밖에 이렇게 최선의 결과를 맞게 되어 수호천사보다도 더 높은 자리로 부르심을 받고, 지상도 마음껏 오갈 수 있게 되었어. 이제 양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 그리워하거나 미련을 가질 일은 없겠지. 다 뒤로할 고통인 거야.”

위룡은 깊은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련이 남으시나요?”

정곡을 찔린 기분이 되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털어 버리듯 말했다.

“천국에서 다시 나를 불러 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 다만... 나는 두 세상을 아무리 오가도 그 어느 세상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하기에, 언제나 미련이 남고 외로울 것만 같은 기분이야. 나란 존재는 정말이지... 잘못 만들어진 천사야. 그깟 미련을 놓아버리지 못하니, 나는 앞으로도 출세하긴 글렀어.”

위룡은 따스하고 다정한 눈으로 말했다.

“그건 지금껏 어느 세상도 선배님의 선의를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세상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으니,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이 아프신 거죠. 그러나 앞으로는 두 세상이 모두 선배님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때가 올 테니, 그때가 되면 어느 곳에 있어도 더 이상 외롭지 않으실 겁니다.”

나는 나이를 아득히 초월한 그의 통찰에 굳어졌다. 고작 스무 살 넘은 인간 아이가 어찌 이처럼 나의 그 오랜 고뇌와 아픔을 다 이해하는 듯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눈물이 차올랐다... 위룡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아주 서글프고도 따뜻하게 웃었다.

위룡은 내게서 시선을 돌려 와인병을 열고는 나의 잔에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구한 대가로 그런 고난의 시간을 보내셨는데...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어느덧 그의 존재가 한결 편안해진 나는 그를 보며 소탈하게 웃고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없어.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 없네.”

“어째서요?”

위룡은 동작을 멈추고 나를 꿰뚫듯 바라보았다. 나는 과도하게 진지한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애를 그냥 고드름이 되게 내버려 두나?”

그러나 위룡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진중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자 나의 얼굴에서도 차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그는 진지한 대답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이 아이 앞에서는 뭐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나 감성적이고, 구제불능인 하급 천사였다. 이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어 던진 소탈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나로서도 나 자신에게 어째서 후회가 없는지, 그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다 몇 년 전 어느 날... 그 날은 천국의 모든 천사들이 함께하는 은총의 날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그곳에 이를 수 없었고, 날개도 없이 이 세상에서 홀로 눈물 지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렇게 홀로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천사의 가장 큰 덕목은 공정이라지만, 천국의 가장 큰 가치는 사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아이를 구하기 전의 나는 나름 괜찮은 천사였고, 공정했지만, 그럼에도 한 순간도 사랑이라는 걸 느껴본 적은 없었어. 하지만 그때 내가 그 아이를 구한 그 결정은, 내 생에 처음으로... 사랑으로 말미암아 무언가를 행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어. 그 경험이 없었다면 천사로서의 나의 삶은 어차피 아무 의미가 없었을 거야. 평생 그 무의미함을 깨닫지조차 못하고 살아갔겠지.

따라서 그 사랑을 깨달은 후의 나는, 다만 지상으로 내쳐져 외롭고 서글펐을 뿐...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는 않았던 거야.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때 내 와인 잔 밖으로 와인이 철철 넘쳐 흘렀다. 나는 놀라서 위룡을 보았다. 위룡은 나의 잔에 와인을 따르다 말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넘쳐 흐르는 와인이 어느덧 그의 소매 끝을 적셨다.

내가 급히 움직이자 위룡은 그제야 깨어나듯 와인 병을 내려놓았다. 나는 냅킨을 들어 그의 손을 잡고 부산스럽게 소매를 닦아주었다.

“어쩌다 이렇게...”

그의 손목을 반대쪽으로 뒤집던 나는 그 순간 보았다. 그의 손바닥 정중앙에 나 있는 갈색의 동그란 흉터를.

온 몸이 굳어졌다.

천사가 인간 앞에 현현하는 것은 몇 백 년에 한 번 있는 대사건이라 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손에 성흔을 갖고 있다. 20년 전. 20년 전의 어린 꼬마 아이.

나는 믿을 수 없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위룡의 눈빛에서 서서히 단정함의 장막이 걷히고, 그가 서글픈 애틋함과 열망과도 같은 떨림을 담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은 지질학자셨어요. 제가 어릴 때 두 분은 북극의 얼음층을 연구하시느라 저를 데리고 그곳에서 몇 년을 사셨죠. 저는 두 분과 함께 연구 기지에서 지냈고, 종종 온 가족이 함께 발굴 장소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제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두 분께서 저를 어느 얼음 동굴에 데려가 주셨는데... 그곳에서 저는 천사 모양의 고드름을 보고 완전히 매료돼 버렸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제게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가 있고, 언젠가는 그 천사가 제 앞에 나타날 거라 믿었거든요. 그래서 그처럼 천사의 형상을 한 얼음을 보자, 저는 밤이 되면 분명 그 얼음이 천사로 화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날 밤, 몰래 빠져나와 혼자 얼음 동굴 안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그만 그 순간 동굴의 얼음 천장이 무너져 갇혀 버리고 말았어요. 온 몸은 얼음장처럼 얼어붙고, 숨은 점점 가빠오고... 그 순간 저는 깨달았죠. 제가... 제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후였어요. 그래서... 저는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빌었죠. 나의 수호천사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위룡의 반짝이는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가 벅찬 듯 눈을 감으며 제 손으로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그리고 그때...... 보았어요. 나의 수호천사.”

어렴풋한 기억의 너머로, 아이가 보였다. 온 몸을 꽁꽁 싸매고 가족과 북극의 얼음 위를 걷던 아이. 연구원들 사이에서 춤추며 재롱을 부리던 아이. 매일 끈질기게도 천사님을 찾아대며 귀를 따갑게 하던 아이.

보였다. 어린 그의 얼굴이. 그 아이, 이 아이... 그래, 너였구나.

이윽고 다 자라 버린 그 아이가 눈을 떴다. 그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얼어 죽지 않고 동굴 밖에 쓰러진 채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그 뒤로 계속 천사를 찾아 헤맸어요. 하지만 천사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죠. 마치 내 곁을 떠나 버린 것만 같았어요. 그러나 그 날 천사와 천국의 존재를 알게 된 저는, 승천을 하면 수호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어요. 하여 이 세상의 모든 궂은 일과 선행을 도맡아 하며 하루 빨리 승천하기만을 바랐죠. 그 과정은 혹독하고 고통스러웠어요. 가시밭과 불길과도 같았죠. 그러나 참아낼 수 있었어요. 나의 수호천사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마침내 꿈을 이루어 천국에 가 닿았을 때 그곳에 내 천사는 없었어요. 전해 들으니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날개를 잃고, 신성을 잃고, 천국의 터전에서 내쳐졌다고 하더군요.”

위룡이 흐느꼈다.

눈물이 흘렀다.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했었단 말이야? 이 세상 아무도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미천한 수호천사를 위해 네 삶을 바쳤단 말이야? 그 어렸던 네가... 나를 잊지 않고...

“신의 총아로 천국의 품에 안긴 저는 마침내 대천사들을 영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떤 은총을 원하냐는 미카엘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어요. 저를 살게 한 수호천사를 구원하고 싶다고... 저를 살린 것이 그 분의 죄라면, 제가 천사 중 가장 미천한 수호천사의 일을 맡아 그 분이 고통받은 열 배의 시간을 봉사하여 그 죄를 씻고자 하니, 부디 제게 베푸실 은총을 제 수호천사에게 베풀어 달라고.”

위룡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나의 수호천사... 더 일찍 찾지 못해 미안해요. 당신에게 이르기 위해 하루를 백 년처럼 달려왔는데, 너무 늦고 말았어요.”

나는 울먹이며 그를 타박했다.

“자네 바보인가... 그건 내가 한 결정일세.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고작 나 같은 말단 천사 하나 구하겠다고 승천 성자가 수호천사 일을 도맡아 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 오랜 시간을?”

위룡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맑게 웃었다.

“고작 200년입니다.”

나는 화를 냈다.

“고작 200년? 200년이면 자네 나이 몇 배인가? 궂은 일로 보내는 200년은 결코 짧지 않아. 인간으로 나서 어찌 그것을 모르는가. 그 200년 동안 천국에 몇 번이나 올 수 있을 것 같나? 시작하자마자 뼈저리게 후회할 걸세.”

그 말을 들은 위룡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단 한 순간도.”

 

그 해의 크리스마스 이후, 유랑자였던 나는 두 개의 집을 갖게 되었다. 지상의 나는 한 아이를 구원했고, 그 아이를 천국에 이르게 하였다. 지상은 나의 집이다. 천국의 나는 한 천사의 구원을 받았고, 머지않아 그와 재회할 것이다. 천국은 나의 집이다.

 

위룡백연 군자맹 장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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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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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답고 가슴이 벅차오른다ㅠㅠ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줘 고마워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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