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잔 이사 애첩 이보 6

https://sngall.com/articles/793
2020/11/12 21:53
조회수: 2216

전편(https://sngall.com/articles/458)

 


형..... 애인? 너무 갑작스럽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 말문이 막혔음. 이보가 머뭇거리자 샤오잔이 설명을 덧붙였음.


- 다음 주에 자선 행사가 하나 있는데, 거기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

- .......형 진짜 애인은......?

 

대학 다니던 시절 꽤나 자주 바뀌던 샤오잔의 애인들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고른 질문에 샤오잔이 코끝을 찡그렸음.


- 형이 애인 만들 시간이 어딨어. 요즘은 우리 이보랑 저녁도 같이 못 먹었는데. 없어, 그런 거. 불쌍하지? 그러니까 다음 주에 하루만 해 줘.

- .........뭐 해야 되는데?

- 아무것도 안해도 돼. 그냥 형이랑 같이 가주기만 해. 가서 만나는 사람한테 인사하고 웃어주기만 하면 돼.

- .........

- 같이 가 줄 거지?


이보는 귀끝이 조금 물들어서는 고개를 떨군 채로 끄덕끄덕했음. 샤오잔이 귀엽다는 듯 이보의 머리칼을 흩뜨리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음. 이보는 샤오잔에게 들리지 않게 몇 번 심호흡을 해서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고는 얼른 뒤를 따라 갔음. 

이보는 샤오잔이 귀가하면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는 핑계로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음. 하루종일 떨어져 있었으니 어떻게든 좀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음. 요즘처럼 샤오잔의 퇴근이 늦고 피곤해 보이거나 일이 많은 것 같으면 눈치껏 자제했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샤오잔이 오늘은 어땠어? 뭐했어? 물으며 이보를 끌어당기곤 했었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샤오잔 덕분에 이보도 평상시처럼 샤오잔 방의 너른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동당거리며 그가 욕실에서 나오길 기다렸음. 한참 후 물소리가 멈추고 이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음. 욕실과 연결된 안쪽의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샤오잔의 얼굴은 여전히 볼 수 없었지만, 이보는 샤오잔에게 그날 왜 싸우게 되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음. 싸운 건 형이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점심 먹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소섭이 갑자기 달려와 붙잡았다는 이야기서부터 소섭이 뜬금없이 운동화를 벗겨내서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비로소 제 편과 같이 있게 된 이보가 아까 학교에서는 하지 못했던 세세한 이야기들을 토로했음. 운동화는 빨면 되긴 하지만 너무너무 화가 났었다는 말에, 그럼. 화나지. 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목소리가 있었음. 그 부드러운 음성에 이보는 알게 모르게 맺혀있던 억울함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았음. 모친과 변호사를 각각 양 옆에 대동하고 당당하게 저를 깔보던 아이들이 사실 조금쯤 부러웠었는지도 모르겠음.

샤오잔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안쪽에서 걸어나와, 그런데 걔는 왜 그런 건대? 하고 물어보았음.


- 몰라. 걘 나만 보면 그래.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어. 운동화가 뭐 어쨌다는 건지. 그걸 왜 신었냐고 그러더라구. 아니, 내가 자기 껄 훔치기라도 했나? 내 신발 내가 신는데 자기가 왜? 

- 그러게. 이상한 애네.


샤오잔은 소섭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아직 명품같은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보에게 딱히 설명할 필요성은 못 느꼈음. 저희들이 수집가도 아니고 한정판으로 재테크를 하려는 사람들도 아닌데, 그런 건 알아서 뭐하려고. 이보 말처럼 운동화가 운동화지.

이보는 곁에 와 앉는 샤오잔에게 투정처럼 말을 내어놓다가 문득 "사모님"들의 위협과 변호사들이 사무적으로 늘어놓던 저의 "죄목"들이 기억났음.


- .....어.... 형.... 근데.......

- 왜.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


아까 학교에 왔던 분이 이미 보고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차마 눈을 똑바로 보면서는 얘기할 용기가 안 났던 이보는, 샤오잔의 손에 들려있는 수건을 제가 가져와서 아직 젖어 있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조심조심 문지르기 시작했음. 이보의 손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맡기면서 샤오잔은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렸음. 


- 그.... 저기.... 나 경찰서 가야될 지도 몰라.

- 경찰서?


반문하는 것을 보니 형은 몰랐었나 보다. 빈말인 줄 알고 직원분이 얘기 안 한 걸까. 변호사들이 하던 말들로 봐서는 진심인 것 같았는데....


- 응.... 오늘 왔던 아주머니들이 고소한다 그랬어.... 폭행으로....


기어들어가는 이보 목소리를 들은 샤오잔이 잠시의 텀을 두고 입을 열었음.


- 그 말만 했어? 다른 건?

- 치료비랑.... 피해보상금 같은 거 청구할 거라고....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조용해졌음. 샤오잔은 좀 느려졌지만 여전히 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리고 있는 이보의 팔을 붙잡아 멈추게 하고는, 몸을 돌려서 이보의 얼굴을 마주보았음. 

 

- 형이 알아서 할게. 신경쓰지 마.

- .........

- 걱정 안 해도 돼.


달래는 말에도 죄지은 듯 아래로 떨어진 시선이 올라올 줄을 몰랐음. 샤오잔이 손을 들어 뺨을 쓸어주다 가만히 어깨를 감싸자 아직은 어린 몸이 순순히 기대어왔음. 그의 허리를 팔로 꼭 끌어안고 안겨 오는 아이가, 제 말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 같아 보여서 샤오잔은 등을 토닥였음. 학교에 누가누가 모였었는지는 이미 파악이 끝난 후였음. 제 편은 하나도 없이, 혼자 십여 명의 어른들에 둘러싸여서 온갖 위협을 받았을 장면이 눈에 선했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

어느 새 정수리가 그의 눈높이에 올 만큼 훌쩍 컸어도 샤오잔의 눈에는 아직도 처음 왔을 때의, 또래보다 작아서 나이보다 두어 살은 어려보이던 작고 안쓰러운 아이가 보였음. 


- 이보야.

- 응?

- 며칠만 학교 쉴까?

 

샤오잔의 품에서 그에게서 나는 향을 맡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이보가 몸을 일으켰음. 


- .....왜?

- 아마 학교에서 꽤 시달리게 될 거야. 이번 일 끝날 때까지 며칠만 쉬자.


사모님들과 변호사들이 가했던 위협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음. 차라리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지게 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거였음. 하지만 아무 일도 없을 걸 뻔히 알아서, 고소든 뭐든 샤오잔의 선에서 해결될 것을 이미 알아서 미안한 거였음. 안 그래도 바쁜 형이 제 일로 신경쓰게 만든 것이 몇 배나 더 속상했음. 학교에서 받는 벌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음. 

참을 걸.

계속 후회되는 세 글자였음.


- 싸웠으니까 벌은 받아야지. 내가 먼저 때린 게 맞는데, 뭐. 

- 그거 말고.

- 그럼?

- 친구들이 좀..... 달라질 걸.


아... 이보는 무슨 말인지 곧 알아들었음. 지금까지의 소섭 패거리 행동들을 미루어봤을 때 내일부터 조롱과 괴롭힘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 하지는 않을 터였음. 의심하던 것을 확인까지 받았으니 어쩌면 지금쯤 전교생에게 톡이며 문자가 돌았을 지도 모르지. 


- 괜찮아. 그냥 갈래. 어차피 친한 애들도 별로 없어.

 

친하고 안 친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지만, 본인이 가겠다니 샤오잔은 잠시 생각하다 그저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음. 이 참에 거를 아이들을 구분지어 놓는 것도 괜찮겠지. 다음 주까지 이보가 학교에서 겪을 일에 속이 좀 쓰리기는 해도.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먹고 샤오잔과 시간을 보내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진 채로 가만히 누워 잠을 청하려던 이보는 문득, 아까 샤오잔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음. '형 애인할까?' 샤오잔의 목소리가 새삼스레 귓전을 맴돌았음. 

형이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설명도 들었고, 다른 의미가 없는 말인 것도 아는데... 순간, 갑작스레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이보는 오래도록 침대에서 뒤척거려야 했음. 

  

 

 

 


전날 샤오이사 비서실에서 내려온 업무 지원 연락으로 외근을 나갔다 온 헌 사원은 다시 호출을 받았음. 어제 일 때문인 듯 했음. 이사실 직속 부서라 직접 내려오는 지시가 많기는 했지만, 보통은 부장이나 팀장을 거치지 이틀 연속 말단 사원을 부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 헌 사원은 다소 긴장했음. 안 그래도 아침부터 이사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퍼져 있는 참이었음.

회사의 후원을 받는 고등학생이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이었음. 위에선 학교로 가서 상황을 파악한 뒤 무슨 말이 오가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만 알아오면 된다고 했지만, 헌 사원은 후원 학생이 저지른 잘못과 피해 학생 측의 요구 사항, 그리고 그와 관련된 회사 규정에 근거해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범위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올렸었음. 외근하고 돌아와 퇴근까지 촉박했던 시간을 감안하면 나름 훌륭한 보고서였다고 자부하면서 헌 사원은 비서실로 갔음.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음. 어쩌면 업무 능력을 인정해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지.

모니터를 보고 있던 양비서가, 헌 사원이 들어서는 걸 보고 시선을 들었음. 비서팀의 모두가 고요하게 업무에 집중하는 것 같은데 묘하게 공간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음. 헌 사원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양비서가 모니터를 그의 쪽으로 돌려놓았음. 화면에는 어제 퇴근 전 자신이 올린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음.


- 헌 씨. 어제 학교에서 오간 대화는 이게 답니까?

- 네?

- 왕이보 학생과 상대방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 네. 거기 다 있습니다. 

- .......어제 제가 왕이보 학생이 다친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 네. 그 학생은 괜찮았습니다.

- 이보 학생이 맞은 것 같다던데요.


헌 사원은 잠시 어제 일을 떠올렸음. 그가 갔을 때 왕이보란 녀석의 입술 한 쪽이 터져있기는 했지만 심하지 않았고 치료를 요할 만큼은 아니었음. 또 중간에 보호자 중 한 명이 녀석이 휘청거릴 만큼 뺨을 있는 힘껏 내리치긴 했지만, 자기 자식이 맞았으니까 헌 사원은 그녀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음. 이렇게 비싸고 좋은 학교를, 후원을 받아서 다니고 있으면서 싸움질이나 하고 남을 폭행하다니. 솔직히 한심하기도 하고 꽤 빈정이 상해서, 맞아도 싸다고 잠깐 생각하기도 했었음.


- 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 그런 내용은 여기 들어있지 않은데요.

- ......... 

 

그런 것까지 적어야 하는지 몰랐음. 회사에서 후원 학생을 어느 범위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닌가? 맞은 학생 측이 왕이보에게 퍼붓던 욕설이나 협박같은 건 그들끼리의 문제 같은데.... 헌 사원은 잘 납득이 가지 않아 머뭇거렸음. 

 

- 누구에게 맞았습니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돌아보자, 오전 내내 비서실 뿐 아니라 층 전체를 살얼음판 걷는 분위기로 만든 장본인이 이사실 문가에 서 있었음. 예? 당황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반문하는 헌 사원을 샤오이사가 빤히 바라보았음. 그 냉한 눈빛에 절로 자세가 바짝 잡혔음. 

 

- 그게.... 소섭이란 학생의 어머니가 좀 흥분하셨던 거 같습니다.

- 어딜, 얼마나?

- 뺨을 두어 대....

- 정확히 두 대라는 겁니까, 아니면 더 된다는 겁니까?


어... 헌 사원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었음. 소섭의 모친이 두 대를 연달아 내리쳤었고.... 마지막에 나가면서 요씨 사모가 뒤통수를 또 쳤었지. 아, 중간에 B유통 사모에게 머리카락도 한 번 잡혔었구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건 모가장 로펌의 변호사인 네 번째 피해 학생의 모친 뿐이었음. 


- 뺘... 뺨이 두 대였고 머리를 한 대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 그런데 그걸 알리지 않았다고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서.... 라고 속엣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간신히 멈추었음. 다행히 그만한 눈치는 있었음.


- 다시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무슨 말이 오갔는지,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 ㄴ...네! 알겠습니다.

 

지원 범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음. 무슨 말이 오갔는지 보고하라는 것이, 상대방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녀서... 아니 왕이보 학생이 들은 욕설과 모욕들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들었음. 그룹 후계자의 비서실에서 일개 후원 학생의 일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거였는데....
뒤늦게야 깨달은 헌 사원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음.

허둥지둥 자기 자리로 돌아온 헌 사원은 어제 좁은 공간 안에서 난무하던 갖은 고성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려 애썼음. 누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더라..... 무슨 욕설을 했었지?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놓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헌 사원은 머리를 쥐어뜯었음.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흘끔흘끔 저를 주시하는 시선들을 알아차렸지만 이보는 신경을 쓰지 않고 교실로 향했음. 교실로 들어섰어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음. 제게 집중된 시선들 안에 대부분 호기심이 가득한 가운데 여러 감정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었지. 반감, 무시, 비웃음, 놀람. 이유는 모르겠지만 배신감? 그리고 소수지만, 걱정.

이보가 자리에 앉아 교과서와 필기도구를 꺼내는 동안 교실 안은 조용하기만 했음. 뭔가 묻고 싶어하는 기색들이 한가득인데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하고 모두가 서로 눈치만 보는 중이었음. 잠시 후 그 부자연스런 고요를 깨뜨리며 뒷문이 열리고 광대뼈와 입술 근처에 커다란 밴드를 붙인 소섭이 들어섰음. 소섭이 문에서부터 이보의 자리로 직행해 앞 자리 책상 위에 걸터앉았고, 먼저 와 있던 B도 그걸 보고 이쪽으로 다가왔음.

 

- 야. 나 어제 진단서 끊었다. 우리 넷 다 폭행으로 너 형사 고소할 거야. 각오는 하고 있지? 


민사 소송은 따로 들어갈 거라고, 보상금이나 준비해 두라고, 각오는 했냐고 곁에서 한 마디씩 보태는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이보는 1교시 교과서를 펼쳤음. 소섭이 발로 툭툭 이보의 책상을 걷어차다가 그래도 시선을 끌 수가 없자, 교과서를 낚아채어 교실 반대편으로 휙 던져버렸음. 이보에게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나왔음.


- 모른 척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냐?

-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무릎꿇고 빌어 봐. 혹시 알아? 진심으로 빌면 내가 마음이 풀려서 고소는 진행하지 않을 지. 합의금은 뭐... 모르겠다만.


솔직히 아주 잠깐. 이보는 그럴까도 했음.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면 샤오잔을 덜 번거롭게 할 것 같아서. 무릎 한 번 꿇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러나 샤오잔의 당부가 그 충동을 빠르게 꺾어버렸음. 이보가 흔들릴 것을 예상한 듯 오늘 아침에도 샤오잔은, 싸움을 한 것으로 학교에서 벌을 받더라도 소섭에게 사과는 하지 말라고 못박고 출근한 터였음.

이보가 겁먹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 것은, 소섭에게 뻔한 허세로만 보였음. 이미 자기 사정이나 실체가 낱낱이 까발려졌는데도 왕이보가 포기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세운다고 생각했지. 그래 봤자 얼마 안 갈 거라는 믿음으로 몇 마디 더 비웃음을 남긴 소섭은 자리로 돌아갔음. 

그게 시작이었음.

왕이보가 후원을 받아서 간신히 학교를 다닌다더라 하는 소문은 이미 모두에게 퍼진 상태였음. 뿐만 아니라 학교에 부모님이 왔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개인적 관계가 전혀 없는 회사 직원이 보호자 대신 온 것 때문에 왕이보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소문이 함께 돌고 있었음. 소섭과 친구들이 이릉의 직원을 직접 봤다고 하니 모든 말들은 기정 사실이 되어 퍼져나갔음.

샤오잔이 학교를 며칠 쉬자고 한 이유가 당장에 표면으로 드러났음. 

딱히 복잡하지도 않은 통학로, 계단, 복도, 식당에서 어깨나 팔을 부딪치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이 오늘따라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곤 꼭 뒤를 돌아보았음. 정색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묻기에도 애매한 상황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하는 게 너무 빤히 보여서 한편으론 우습기까지 했지만, 이보는 제게 가해지는 행동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음. 그런데 그게 아이들에게 일종의 확신을 주었음. 평소에도 이보가 그런 사소한 부딪침이나 접촉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똑같은데, 이제는 찔리는 것이 있고 당당하지 못하니 순응하는 거라고 해석되었음.


- 너 진짜 고아야?

- 응.

- .......고아원에 산다는 것도 진짜야?

- 아니.

- 그럼 어디 사는데? 누구랑?


별로 숨길 것이 없어 사실대로 대답하던 이보는 잠시 말문이 막혔음. 샤오잔을 다른 사람에게 뭐라 지칭해야 하나, 잠시 뇌에 정지가 걸렸음. 형? 어... 친형은 아닌데... 그럼 아는 형....? 아니. 샤오잔이 그냥 아는 형은 아니었음. 정확하게는, '그를 돌봐주고 있는 마음씨 좋은 후원자'가 맞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샤오잔과 제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것 같아서 왠지 가슴 아팠음.

이보가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들은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순식간에 논리를 비약시켰음.


- 맨날 타고 다녔던 차는 뭐냐? 너 오늘 아침에도 그 차 탔잖아.

- 차주도 아니면서 너네 차인 척 한 거야? 거짓말로?

- 그럼 사기친 거네! 야! 너 우리 다 속인 거잖아!


무슨 거짓말을 했고 무엇을 속였다는 건지. 속으로 한숨을 쉬다 그러려니 인정해버렸음.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은 맞으니까. 그래. 속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그런데 비난하는 아이들에게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음.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닌데,

'그래, 속여서 미안해.' 

인정하며 사과하는 건 이상했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아무 말 안했는데 너희들이 오해한 거잖아.'

이건 제가 들어도 구차한 변명이었음. 무엇보다 더 설명한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싶었음.
이보를 둘러싼 아이들은 뭐라뭐라 말들을 더 쏟아내다, 이보가 소섭 패거리에게 그랬듯 저를 향한 비난을 그냥 듣고 있기를 택하자 왈칵 짜증을 냈음. 


- 야! 너 사람 무시하냐?


누군가 흥분을 못 감추고 퍽. 이보의 어깨를 쳤음. 며칠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이보를 향한 폭력적인 행동에 주변을 둘러쌌던 아이들마저 언뜻 놀랐지만, 정작 이보는 슬쩍 눈살만 찌푸렸을 뿐임.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쉬웠음. 역시 자기 상황 때문에 대거리하지 못하는 거라고 단정지은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음.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유였음. 다만 아이들의 섣부른 판단처럼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참는 것이 아니라 안 그래도 소섭과의 문제가 진행 중인데 다른 상황을 더 얹고 싶지 않아서였지.

뒤에서 이보를 아니꼬워하면서도 대놓고 나서지는 못했던 학생들이 소섭만큼이나 노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았던 다른 아이들도 며칠 지나지 않아 금세 그 분위기에 휩쓸렸음.


- 소섭한테 사과는 했냐? 왜 사과 안 해? 사람을 때렸으면 사과를 해야지.

- 설마 뻔뻔하게 니가 사고 친 돈도 이릉에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준대?

- 너 계속 우리 학교 다닐 수는 있어? 이릉 같은 기업에서 너처럼 그룹 이미지 깎아먹는 학생을 계속 후원해 주진 않을 거 아냐.


조금 지나자 새로운 소문도 돌았음.


- 너 원조 교제 한다며?

- 소섭이 물어봤던 그 운동화, 원조 교제하는 부자한테 선물받은 거라고 니 입으로 그랬다던데.

- 그럼 너 가진 물건들도 원조 교제해서 산 거야?

- 아~ 아침에 타고 다니는 차도 그런 아저씨가 태워주는 거였구나?

 

다른 건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샤오잔을 언급하며 모욕하는 말에는 불쾌해져서 이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음. 그런데 이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야!!!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음.


- 듣자듣자하니까 진짜 비겁하게! 얼마 전까지 다들 이보랑 친해지지 못해서 안달을 했으면서!


씩씩대며 창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마른 소년에게 시선이 모였음. 소년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이보 주위의 다른 학생들을 똑바로 노려보았음.


- 야, 1번! 지난 달에 이보한테 니 생일 파티 와달라고 거의 애걸복걸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안경 너는 그 머리 이보 따라서 똑같이 자른 거잖아! 그리고 반장 너! 이보한테 말 한 번 걸고 싶어서 수학 시간 끝날 때마다 이보한테 가서 뻔히 아는 문제 물어본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상황이 좀 바꼈다고 비겁하게. 너네들은 창피하지도 않냐?

- 그건 왕이보가 이렇게 뻔뻔한 녀석인 거 몰랐을 때고. 남경의 너는 왜 죄없는 애들한테 시비냐? 잘못은 누가 했는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년이 막 교실로 들어서는 소섭을 흘겨보았음. 누구긴. 니가 했지! 라고 쏘아붙이는 말에 소섭이 비웃었음.


- 징계 위원회에서 왕이보한테 교내 봉사 처분 내린 거 모르냐?

- 그건 이보가 변명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서 그런 거고. 맨날 이보한테 너가 먼저 시비걸고 건드리고 그랬잖아. B랑 다같이!

- 누가 그래? 지금 남의 일에 끼어들어 시비거는 건 남경의 너잖아.


아무래도 저랑 상관없는 경의마저 싸움에 휘말리게 할 것 같아서, 이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섭과 경의 사이를 막아섰음. 지금껏 이런저런 조롱과 비난에도 딱히 별다른 반응없이 듣고만 있던 이보가 움직이자 주변에 둘러섰던 아이들이 움찔해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음. 경의가 그걸 보고는 대번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음. 뭐라 더 얘기를 하려는 경의를 이보가 그만해, 나직하게 말렸음.


- 왜 그만해. 할 말은 해야지. 너도 얘기해! 그날도 소섭이 네 운동화 뺏어서 던지고 막 그랬다면서. 애들 다 알아! 그거 봤다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비겁하게 아무도 얘기 안 하고.

 

제가 더 억울하다는 듯 발을 구르는 경의를 보고 이보는 당황했음.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고 말을 많이 해 본 적도 없는데. 그래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쁜 기분은 아니어서 이보는 경의가 조금, 아니 많이 고마웠음. 괜찮다고 하고 경의를 자리로 돌려보내려는데 소섭이 이죽거리며 끼어들었음. 


- 네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해? 고모랑 숙부한테 얹혀사는 니 남친 생각나서? 동병상련이냐?

- 야! 그러는 너야말로 좀 솔직해져 봐라. 그냥 이보가 너무 부럽고 닮고 싶다고 그래.

- 뭐?

- 지난 주 일요일에 나도 **백화점 갔었어. 너 이보가 축제 때 입었던 옷 똑같이 입고 있더라? 


이보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음. 저를 향하는 이보의 시선에 소섭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면서 경의가 쐐기를 박았음.


- 나 하마터면 왕이보라고 부를 뻔 했잖아. 근데 소섭 너더라구.

- 경의야.


다정한 목소리가 끼어들었음. 교실 문가에 서 있는 소년을 보고 경의의 얼굴이 반갑게 환해졌음. 여전히 버티고 서 있는 소섭과 다른 아이들을 향해 흥. 코웃음을 친 경의가 이보의 손목을 덥썩 붙잡아 끌었음.

 

얼떨결에 경의를 따라 나온 이보는 학교 매점 근처 벤치에 앉아서, 이거 맛있다면서 경의가 내미는 소시지를 받아들었음.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모양이었음.

 

- 마음대로 끌고 나와서 미안해. 

 

함께 나온 소년이 차분하게 사과를 전했음. 이보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경의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이며 끼어들었음.


- 그럼 이보만 거기 두고 나와? 말 같지도 않은 말들 계속 들으라고? 사추, 너는 못 들었지? 애들이 진짜 못되게...!

- 우리랑 같이 있고 싶은지 이보한테 안 물어봤잖아. 너도 다른 사람이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싫어하면서.

 

타이르는 말에 경의가 도로록 눈동자를 굴리다가 작게 미안, 하고 사과를 했음. 


- 내가 끼어들어서 기분 나빴어? 나는 그냥......

- 고마워.

- 응?

- 기분 안 나빠. 고마웠어. 


이보의 조용한 말에 경의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며, 거봐,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사추를 돌아보았음. 분명 동갑내기 같은 학년인데 경의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주는 사추가 왠지 쟌거와 닮아보였음.

 

 

 

 

 

+ 교실에서........

 

+ 소섭이 소섭한 이보 착장

 

 

여기서 끊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주 기념으로 그냥 빨리 올려놓고 사라짐

 

샤오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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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67391] - 2020/11/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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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27095] - 2020/11/12 22:00

아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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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71a55] - 2020/11/12 22:03

ㅅㅂ 짤ㅋㅋㅋㅋㅋㅋㅋ 센세는 사랑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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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8fda] - 2020/11/27 23:30

ㅋㅋㅋㅋㅋㅋ주접봐 짤줍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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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27095] - 2020/11/12 22:00

ㅁㅊ 내 센세 어나더를 주다니...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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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acc4a] - 2020/11/12 22:01

으아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너무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샤오잔의 애착 아기고양이 이보... 이 관계 너무 좋아... 그리고 착한 경의랑 사추 복받을거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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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c2cf3] - 2020/11/12 22:03

센세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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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9b5a] - 2020/11/12 22:22

미친 내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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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705c6] - 2020/11/12 22:34

비겁하고 치졸한 나쁘노무시키들 다 쟌거한테 피의 응징 당하기를 ㅂㄷㅂㄷ 이보가 좋은 친구를 얻게되는것 같아서 한시름 놓인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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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11be] - 2020/11/12 22:49

방금 이삿짐 싸온거 봤는데 이렇게 바로 어나더를 보게 되다니ㅜㅜ 존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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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cd57c] - 2020/11/13 03:32

센세ㅠ 이삿짐에 어나더까지 고마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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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e78d] - 2020/11/13 10:56

센세 너무 재밌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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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e78d] - 2020/11/13 10:56

센세 너무 재밌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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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bc7b] - 2020/11/13 13:35

시발 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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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a7bb3] - 2020/11/13 15:00

으아아아아 담 편에 사이다 주실거죠?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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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819d] - 2020/11/14 07:42

센세 존잼존잼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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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12ee0] - 2020/11/15 00:16

내센세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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