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년 후반 이용의 흔들림이 이해 된다 ㅅ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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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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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이 전생의 진상을 알게 된 후 원래대로 이천을 믿고 계획을 추진해도 되나 흔들렸을 때 나는 그 고민이 너무 이해됐음 

이용은 태어나면서부터 모후로부터 철저하게 타인을 믿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음. 그래서 타인을 온전히 인간적으로 믿고 그에 의지해서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는 언제나 불안감을 느낌. 이용은 스스로 상황의 통제권을 쥐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임.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에게 있어서만큼은 예외를 허용했는데, 이천이 그 중 하나임. 이용은 이천에게 있어서만큼은 가족의 정에 의한 무조건에 가까운 신뢰를 품었음. 물론 온전히 정에만 이끌리지는 않았지만, 평소 타인을 절대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용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주 파격적일 정도의 믿음을 보여준 거임. 전생에서 이용이 이천을 그렇게 신뢰한 이유에는 물론 동생이 자길 죽일 가능성이 동기의 부재와 자신의 정치적 입지로 인해 극히 낮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도 했겠지만, 제일 중요하게는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가족으로서의 정이 있었기 때문임. 그런데 그렇게 진심을 보였던 동생한테 배신당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당에, 어떻게 동생을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신뢰할 수 있겠어?

물론 나도 세가는 본질이 암투와 배신이기에 절대 믿을 수 없는 존재고, 이 상황에서 전생의 원흉 중 하나였던 배신자 소용경과 손잡고 숙왕을 옹립하는 건 막장 진흙탕 정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거부감이 들긴 함. 하지만 전생에 확고히 믿고 걸었던 길이 완전히 망한 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상황에서, 똑같은 말로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당하다고 생각함

여기서 이천은 배신자라고 못 믿는다면서 소용경은 똑같이 배신자인데 왜 믿고 동맹을 맺을 수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나는 그 이유가 믿음에 두 가지 양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한 사람을 인간적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과, 그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부분을 기대한 바 대로 수행해낼 것이라는 믿음, 그 두 가지임. 이용이 이천에게 품은 믿음은 오직 전자 뿐이었다면 소용경에게 품은 믿음은 둘 다였다고 생각함. 이용이 이천에게 품었던 믿음은 대부분이 가족간의 무조건적인 신뢰였음. 따라서 그 믿음이 깨어지고 난 후에는 당장 이천을 전처럼 온전히 믿기가 어려웠던 거임. '이천은 과연 나를 죽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동맹으로서 믿어볼 만한 존재인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바로 답할 수가 없었던 거임. 반면 소용경은 이용에게 있어서 연정에 의한 맹목적인 신뢰를 제외하더라도, 전생에 자신의 죽음을 묵과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적어도 그 능력과 사리 판단을 믿을 수 있고, 또 자신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어느 선은 지킬 것이라고 믿어볼 수 있는 상대였다고 생각함. 물론 이용은 소용경&숙왕 쪽과의 동맹을 고려하면서 배신당할 위험성을 한시라도 간과하지는 않았을 거임. 하지만 상대방이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피치 못하는 상황에서는 잠시나마 동맹을 맺어서 난국을 헤쳐나가기도 하는 게 정치고, 이용은 천상 정치인임. 또한 상대방의 악의를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동맹을 맺어보는 것은 자신이 통제권을 쥐고 두는 정치적 수이기에, 이용에게는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했던 동생을 다시 맹목적으로 사랑하며 믿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졌을 거임. 타인의 온정과 변덕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방어하고 공격하며 대국을 하는 길이니까

그리고 명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게, 이천은 이미 전생에 말년에 나라를 말아먹은 전적이 있음. 반면에 숙왕은 어떻게 될지 모름. 오히려 쉽게 휘두를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용과 소용경이 합심해서 제대로 조종한다면 국정이 전생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가능성도 있음. 솔직히 전생이든 이생이든 이 나라는 사실상 일정 부분 이용이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임. 단지 황위에는 반드시 황자를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느냐 하는 차이가 있는 건데, 전생에 적장자 이천을 황위에 앉혀서 이용에게 온전한 권리가 넘어오지 않은 것 때문에 나라가 그렇게 됐었다면 이번 생에서는 좀 더 자기한테 국정 운영권을 많이 넘겨줄 만한 차기 황제를 꿈꾸는 건 당연한 거임 

그렇다고 배문선과 멀리로 떠나서 살자니 그런 삶은 현실적으로 이용에게 맞지 않음. 이용은 야심만만한 황가의 정치가임. 그렇게 열심히 정치적 대국을 하던 공주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 던지고 떠나서 남편과 연애만 하며 산다? 그러면서 평생 만족한다? 이걸 황자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면 정말 황당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라는 걸 알 수 있음

나는 이래서 이때 사실 이용이 흑화해서 소용경과 세가의 편에 서서 숙왕을 옹립했어도 엄청 재밌었을 것 같다고 생각함. 드라마 전개상은 그 시점에서 그렇게 방향을 틀면 줄거리가 엄청 난잡해졌을 것 같아서 무리수라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저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썼었다면 무리 없이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됐을 것 같음. 무엇보다도 나는 천성은 절대로 바꿀 수 없고 이용 같은 사람은 결국 동류한테 끌리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결국에는 소용경과 정치적 동맹으로라도 함께한다는 게 아주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줄거리라고 생각함 

 

조금맥 천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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