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샤오왕 일박이보로 구미호 삼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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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23:48
조회수: 135

 

 눈을 뜬 샤오잔은 평소보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운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상체를 일으키자 눈앞이 빙글 돌아서 샤오잔은 움직이던 것을 그대로 멈추고 두 눈을 감은 채로, 어지럼증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앉아있어야 했다. 제법 진정이 되었을 때 샤오잔이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어젯밤 이보와 함께 누워 잠을 잤는데, 옆자리의 주인은 오래 전 자리를 떴는지 침대 옆은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잤다는 흔적인 주름도 없이 깔끔했다.

 샤오잔은 이보를 찾았다. 밖에 나가지 않고서야 좁은 자취집에 이보가 있을 만한 곳은 부엌이나 화장실뿐이었다. 화장실 문을 여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껴안고 웅크린 이보가 바로 보였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젖은 채였다. 놀란 샤오잔이 수건을 챙겨들고 얼른 다가갔으나, 샤오잔을 본 이보가 사색이 되며 소리를 질렀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이..보야?”

 이보는 내내 몸에 오른 열을 식히려고 찬물을 맞고 있었다. 열기에 다시 정신을 빼앗기면 다음번에는 제 정신을 차린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찬물에 입술이 새파래지고 턱이 덜덜 떨렸다. 둔갑술이 풀려 여우의 모습이었다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 이보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감기 걸려. 물기라도 닦아내자.”

 한 발 안으로 들이자 이보는 더 갈 곳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뒤로 몸을 물렸다. 잔뜩 경계한 모습에 샤오잔은 더 움직이지 못 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이보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샤오잔이 건네는 수건을 받지도 않고 고개를 젓던 이보는 웅크린 무릎에 얼굴을 숨겼다.

“일박이.. 일박이가 아니면 안 돼요. 그러니까.. 다가오지 마세요.”

 추위에 벌벌 떠는 어깨라도 감싸 안아주고 싶다. 샤오잔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일박이만 찾아대는 이보를 보며 입술을 꾸욱 깨물다가, 이내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화장실을 나갔다. 샤오잔이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듣기 위해 집을 나설 때까지도 이보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힘이 약해져있다고 해도 인간들보다는 신경이 예민한 이보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보가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창문 옆에서 팔랑이는 커튼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커튼을 몸에 감고 숨어버렸다. 하지만 채 숨기지 못한 꼬리가 커튼 밖으로 부드럽게 살랑인다. 다행이도 여학생들은 그것을 못 봤는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며 지나갔고, 그제야 이보가 커튼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확인해본다. 아무도 없다. 이때가 기회다. 이보가 허공에 코를 올려 킁킁- 냄새를 맡으며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다. 문패에는 ‘개인 작업실 - 왕일박’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보가 문에 코를 대고 냄새도 맡아보고 귀를 대서 소리도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화선지가 한 가득이었다. 코로 끼쳐오는 먹냄새는 일박이에게서 나던 그 냄새와 비슷해서 이보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학교로 오느라 긴장했던 것을 한 순간에 풀어버렸다. 고개를 휙휙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개인 작업실이 좁아서 얼마 둘러보지 않아도 의자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일박이를 금방 볼 수 있었다. 일박이는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아니, 사실 이보가 온 것을 알고 있을 거다. 일박이처럼 뛰어난 여우가 제 소리, 제 냄새를 모를 리 없다.

“..일박아.”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 하고 뒤에 멀찍이 서서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많이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부터 절 키워 살린 건 일박이었으니, 그런 일박이의 은혜에 반하는 행동을 한 저에게 화가 많이 났을 거다. 그래서 다시는 안 보려고 했다. 일박이에게 더 이상 신세도 지지 말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찾아 온 이보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던 손길이 멈춘다. 일박은 벼루 위에 붓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 이보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못내 냉랭하다. 이보가 잠시 어깨를 움츠렸다.

“그 꼴을 하고 지금 어딜 온 거야?”
“미, 미안.”

 여전히 귀와 꼬리가 드러난 채였다. 다른 사람들 시선에 들키지 않고 용케도 잘 찾아왔다.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면 아직 살만 한 가 보다. 일박이 피식 웃었다. 이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불안한 듯 제 허벅지를 덮은 티셔츠의 끝자락을 두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옷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걸 보며 일박이 턱을 괴었다.

“날 찾아 온 이유가 뭐야?”
“그게.. 저 그게..”
“샤오잔만으로 부족해서?”

 일박이의 말에 이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당황한 눈동자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그런 거 아냐!”
“그러면?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여길 찾아 온 이유가 뭔데?”
“그건.. 그게..”

 이보는 말을 못 잇고 고개를 숙였다. 옷자락을 구겨대는 손길이 더 급해진다. 그걸 본 일박이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이보의 앞에 다가갔다.

“죽을 뻔한 거지?”
“.............”
“홀려서, 죽일 뻔한 거지?”

 누가 들으면 수수께끼처럼 들리겠지만 이보는 일박이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밤이 이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한 순간이었다. 이보가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눈을 찡그렸다. 그런 이보를 보며 일박이 싱긋 웃으며 이보의 뺨을 쓰다듬었다. 작은 스킨십에도 이보는 몸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파들파들 떨었다. 옷자락을 구기던 손길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피가 통하지 않을 것처럼 꽉 쥐어졌다.

“..도..와줘, 일박아.”
“...........”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어. 잘못 하다간... 정말 죽을 거야.”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을 찡그린 이보가 일박과 시선을 맞추며 애원했다. 사실이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저번처럼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샤오잔은 정말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내가 왜?”
“일박아.”
“그깟 인간 하나 죽는 게 뭐 어떻다고.”

 일박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돌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차라리 네 핑계를 대고 애원하지 그랬니. 그랬다면 형제의 정을 생각해 내가 널 도와줬을 지도 모를 텐데. 일박이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동그란 구슬이 손끝에 닿는다. 매끈매끈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를 품은 이 구슬은 이보가 쓰러졌을 적, 그에게 주기 위해 어머니께 받아온 것이었다. 그때 이보가 샤오잔을 그렇게 감싸지만 않았더라도 이 구슬은 이보의 입속으로 들어갔었겠지. 구슬을 꺼낸 일박이 손가락 장난을 치듯 이리저리 굴려본다. 뒤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이보는 익숙한 냄새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얼른 일박이를 보았다.

“그...거 뭐야?”

 일박이 눈동자를 돌려 이보를 힐끗 쳐다보았다. 갈증을 느끼는 듯 이보의 목구멍으로 계속 마른침이 넘어갔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유혹하듯이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구슬이 이보의 시선을 잡았다. 구슬이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를 움직이던 이보는, 그 구슬이 일박이의 입속으로 들어가자 저도 모르게 앞으로 재빨리 걸어가 일박이의 양 뺨을 잡았다.

 다행히 구슬은 삼켜지지 않았고 일박이의 붉은 혀 위에 있었다. 멍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는 이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
“난 네가 필요해, 일박아.”

 두 눈을 감은 이보가 일박이의 뺨을 제 앞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일박이의 입속에 놓인 구슬을 가로챘다.



 일박이의 작업실을 찾은 샤오잔은 차마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굳은 사람처럼 멍청하게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정기가 무엇인지 정기를 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샤오잔도 정확히 알지 못 했다. 그저 영상매체물을 통해 접한 구미호는 인간을 꾀어 스킨십을 하거나 또는 간을 떼어먹었다. 간을 떼어줄 수는 없었고 그럼 남은 것은 스킨십이었는데, 네게 필요한 정기를 주겠다는 말과 함께 입을 맞추었을 때 이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이보는 입을 맞춰달라고 부탁했기에 정기가 꼬박꼬박 이보에게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보는 일박이를 찾았다. 일박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제가 하는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박이를 찾아온 것이다. 정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묻기 위해서.

 신경이 예민한 일박이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샤오잔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작품 발표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 일박이는 분명 작업실에 있을 테고, 그리고 신경이 아주 많이 예민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일박이를 부르려던 샤오잔은 여기저기 세워놓은 이젤 사이로 보이는 보드라운 황금색 꼬리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아닌데 꼬리는 연신 살랑이고 있었다.

“역시 난 네가 필요해, 일박아.”

 심장이 뛰었다.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은 이보는 훤히 드러난 무릎이 왠지 부끄러워 티셔츠를 잡아끌어 무릎을 덮었다. 그리고 그 무릎에 이마를 기댔다. 시간이 몇 신데.. 샤오잔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걱정이 되지만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코로 냄새를 맡아봐도, 샤오잔은 멀리 있는지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걱정되는데. 걱정돼서 죽을 지경이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샤오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보는 샤오잔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쪼그리고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불을 켜고 있지 않은 모양인지 어두운 실내에 눈을 살포시 찡그린 샤오잔이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다가, 현관에 쪼그리고 꾸벅꾸벅 조는 이보를 발견한다. 졸고 있는 와중에도 꼬리는 여전히 살랑거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스며들어와 이보의 몸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주황빛으로 물든 몸이 묘하게 색정적이었다. 동글동글한 뺨이 주황빛 불빛에 반짝였다. 그걸 보던 샤오잔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갑자기 방이 환해지자 놀란 듯 이보가 눈도 못 뜨고 고개부터 치켜들었다. 경계에 털이 바짝 섰다가, 샤오잔을 확인하고는 경계를 쉽게 풀어버렸다.

“오늘은 늦게 왔네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보가 현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샤오잔의 옷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운동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간 샤오잔은 제 옷을 붙잡고 저를 뒤따라오는 이보의 움직임을 느끼고는 그대로 멈추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뭐 했어?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니?”
“...네.”
“집에 있는 거 심심하잖아. 밖에는 안 나갔니?”
“....네.”

 대답이 늦었다. 잠시 머뭇거린 게 분명하다. 왠지 샤오잔은 화가 났다. 뒤를 돈 샤오잔이 이보의 어깨를 잡았다.

“정말 밖에 안 나갔어? 단 한 번도? 방에만 있는 거 지겹잖아. 밖에 안 나가고 싶어?”
“네?”

 마치 밖에 나갔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 그러는 거 같아 이보가 놀란 눈을 했다.





“하지 마요.. 읏..!”

 침대에 엎어진 이보가 일어나기 위해 팔로 침대를 짚었지만 등 뒤에 쏟아지는 무게에 그대로 다시 엎어지고 말았다. 윽, 소리를 내며 샤오잔에게 깔려버린 이보가 바둥거렸지만 샤오잔은 이보의 손을 꽉 내리눌러 움직임을 방해했다. 경계에 선 꼬리가 바싹 섰다. 이보가 거세게 반항할수록 샤오잔의 배에 닿은 꼬리도 거칠게 흔들거렸다.

“...흡!”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꼬리를 한 손에 꽉 움켜잡자 이보가 눈을 찡그리며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듯 반항하는 움직임이 조금 사그라졌다. 꼬리를 잡은 채로 옆으로 휙 밀어낸 샤오잔이 이보의 몸에 가깝게 붙은 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이보의 뒤통수에 코를 가져가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희미하게 단 내가 났다. 정신이 나른해질 정도는 아니었다. 샤오잔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진 이보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하지 마요.. 하지 마.. 안 돼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전히 애원한다. 샤오잔은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보텀 샤오왕 일박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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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02f8f] - 2020/11/12 23:48
눈물만 흘린다 감동.....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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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81874] - 2020/11/13 00:10
와...분위기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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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46589] - 2020/11/13 02:52
필력미쳤다 ㅠㅠㅠㅠ센세 기다릴게 기다릴게 ㅠㅠㅠㅠ존나 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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