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샤오왕 일박이보로 구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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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23:45
조회수: 349

샤오잔이 눈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앓는 동물의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인간이 놓은 날카로운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여우 한 마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악어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덫에 걸린 앞발이 많이 아팠는지 여우는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가도 피를 흘리는 앞발을 혀로 핥기도 하고, 누군가가 다가올까 경계에 가득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아직 작은 여우인데.. 샤오잔이 가까이 다가오자 여우가 털을 바짝 세우며 경계를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샤오잔은 꽤나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캉캉 짖어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우의 앞에 앉았다.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덫을 잡아 억지로 열어보지만 꽤나 단단해 잘 열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걸로 오해한 모양인지 여우가 앞발로 샤오잔의 손을 마구 긁으며 신경질을 냈다. 샤오잔은 나뭇가지를 문 채로 여우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덫을 붙잡고 한참을 낑낑거린 후에야 살짝 틈을 낼 수 있었던 샤오잔은 얼른 입에 물었던 나뭇가지를 열린 덫으로 집어넣고, 여우의 상처 입은 앞발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날카로운 덫의 이빨이 앞발에서 빠져나가자 피가 울컥하고 터져 나왔다. 당황한 샤오잔이 얼른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꺼내 여우의 앞발에 조심스럽게 묶어주었다. 처음에는 반항을 하던 여우는 샤오잔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 그가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착하네. 배고프지 않아? 이거 먹을래?”

 샤오잔은 제 옆에 가만히 있는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소세지 하나를 꺼내 여우의 앞에 내밀자, 여우가 커다란 귀를 쫑긋 거리며 경계를 하다가 샤오잔의 눈치를 살금 살피더니 이내 급하게 소세지를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그걸 본 샤오잔이 기쁘게 웃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소세지 두 개를 더 꺼내 여우의 앞에 내려놓았다.

“다음부터는 조심히 다니렴.”

 허겁지겁 소세지를 먹고 있는데 샤오잔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우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고는 아까 자신이 온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심란해 등산을 하러 왔다가 여우의 소리를 듣고 산책로를 벗어났기 때문에, 샤오잔은 다시 산책로를 찾아 하염없이 걸었다. 바닥에 떨어진 소세지 부스러기까지 먹은 여우는 샤오잔이 사라지는 걸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보는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가 진 손목을 혀로 핥으며 천천히 산책로를 밟아 아래로 내려갔다. 각자 자신들만이 가는 길이 있었지만 이보는 굳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산책로를 택했다. 산책로를 따라 갈 때면 많은 인간들은 자신들끼리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보는 그걸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매번 산책로를 이용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안 된다고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인간 냄새가 가득 밴 이보를 보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보는 인적이 드문 산책로는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올 때면 얼른 그 옆길로 새서 걸었다. 그러면 인간 냄새가 몸에 밸 일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보가 얼른 산책로 난간을 뛰어넘었다.

 산책로에 인간이 많더라도 그 길이 안전하긴 했다. 얼마 전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린 적이 있어서 이보는 더 산책로를 고집했다. 마른 나뭇잎을 밟으며 집으로 가던 이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짙은 피 냄새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피 냄새가 잔뜩 묻은 바람이 온 길로 급히 걸어가 본다.

인간들은 믿으면 안 돼.

 늘 듣던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인간의 영리함과 그 속에 숨겨진 사악함과 잔인함에 대해 늘 설명해주었다. 어머니의 양 옆에 일박이와 나란히 앉아 그 이야기를 매일 듣던 이보였기에 차마 지금 제 앞에 쓰러져 있는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약초가방을 어깨에 메고 가만히 앞을 바라보던 이보는 인간 남자가 배를 붙잡으며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을 때 그제야 느릿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많이 다쳤는지 그는 눈도 못 뜨고 신음소리만 흘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피 냄새가 짙게 난다했더니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가 대단히 컸다. 이보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낯이 익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이보가 얼른 무릎을 꿇고 앉아 남자의 얼굴에 대고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착하네. 배고프지 않아? 이거 먹을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인간. 이보는 얼른 제가 메고 있는 약초가방에서 약초 몇 개를 꺼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쓴 약초의 맛에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애써 참고 씹은 뒤 손바닥에 뱉어낸 이보가 얼른 그것을 샤오잔의 배에 난 상처 위에 올려둔다. 피는 금세 멎었지만 거칠게 내뱉는 호흡이 불안정해 위태로운 상태였다.

 아아, 어떡하지.. 이보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간들은 믿으면 안 돼. 그들이 얼마나 구역질나는 이면성을 가지고 있는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단다.

[다음부터는 조심히 다니렴.]

 하지만 입은 은혜를 갚지 않는다는 건 금수만도 못한 행동이다. 이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제 엉덩이에 난 황금빛 꼬리 중 하나를 잡아 강하게 뜯어냈다. 따끔, 하는 고통과 함께 가슴이 울컥거렸지만 이보는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걸 애써 참으며 떼어낸 꼬리를 세게 쥐었다. 더 이상 이보의 몸에서 정기를 받지 못해 떨어진 꼬리는 자그맣게 줄어들더니 이내 동그란 구슬이 되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히 다니세요.”

 이보가 구슬을 입에 물었다. 결국 정신을 잃어버린 샤오잔의 입을 잡아 벌린 뒤 입을 맞춰 구슬을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구슬을 삼켰는지 샤오잔의 목울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이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이제 상처가 다 나은 샤오잔의 몸을 들쳐 업고 산책로에 내려놓았다.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샤오잔을 보고 구조를 할 때까지 이보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가느다란 이보의 몸이 바닥에 엎어지는 걸 본 일박이가 사색이 되고는 얼른 앞으로 뛰어 들어 왔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이보의 한쪽 뺨이 금세 부어오르고 있었다. 일박이는 이보의 몸을 잡아 일으켜 제 뒤에 세웠다.

“이보는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심한 매질을 하시는 거예요?”
“가뜩이나 몸이 약한 그 어리석은 아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일박이 네가 직접 보려무나.”

 화가 나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의 눈동자가 노여움을 띤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제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보의 몸을 그대로 느끼며 일박이 의아한 눈을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일박이 급히 뒤를 돌아 제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보를 보았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이보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는 일박이와 어머니를 똑바로 보지 못 하고 연신 바닥만 향해있었다. 일박이는 손을 뻗어 이보의 어깨를 쥐었다. 이보가 몸을 떨고 있어서 일박이의 손이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일박이의 손이 떨고 있어서 이보의 손이 떨리는 것인지 구분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일박이 또한 떨었다. 그것은 이보처럼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였다.

“너.. 어째서 꼬리가..”
“일박아..”
“여덟 개야?”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약했던 이보가 시험을 치러 생원이 된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허덕이는 이보를 일박이 옆에서 돌본 것을 모르는 선호들은 없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태산낭랑은 시험을 보러 온 것도 모자라 생원에 합격까지 한 이보를 보고 정말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었더랬다. 그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천호가 되려면 말 그대로 천 년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태산낭랑을 감독으로 한 시험에 합격해 생원이 된다면 그 수행 기간을 500년 더 짧게는 300년으로까지 줄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호가 되려는 여우들은 모두 이 시험을 보고자 했다. 이보보다 더 일찍 시험에 합격해 생원이 되었던 일박이는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둔갑술을 배우고,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인간 사회로 내려와 그들과 함께 사는 본격적으로 인간으로써의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간이 놓은 덫에 이보가 다쳤단 소식을 전해 듣고, 잠시 어머니와 이보를 보기 위해 집을 찾았던 일박이는 꼬리 하나를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보를 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제 어미에게 맞은 뺨이 붉게 부어올랐지만 그것을 보고 동정은커녕 일박이는 제 어미 대신 이보의 뺨을 내려치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넌 끝까지 여우들의 수치밖에 되질 못 하는 구나.”
“........”
“그 멍청한 얼굴 다시는 보고 싶지 않구나. 이 산에서 내려가 내 눈앞에서 썩 사라지거라. 다른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건 말건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오히려 그게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여우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호치 따위는.”

 어머니의 말에 이보가 울상을 지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어머니가 시선도 주지 않자 눈물은 쉬지 않고 흘러내려 온 얼굴이 흠뻑 젖었다. 애원을 해도 보아주지 않자 이보가 무릎으로 기어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 손을 일박이 대신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가 데려갈게요.”
“일박아! 그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이를 데려가서 무얼 하겠다는 거니? 너는 그저 천호가 되기 위해 수행만 쌓으면 된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도 마.”
“얘가 태어났을 적부터 곁에 있어주었어요. 데려갈래요. 없는 게 더 신경 쓰이고 귀찮아요.”

 일박이가 이보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저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시험에 합격한 생원이니 인간으로써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일박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보를 잡아끌어 세운 뒤 산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인간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보는 서러움에 훌쩍이고 있었다.





“그래서? 안 갈 거야?”
“이제 산 근처엔 얼씬도 안 할 거야.”

 샤오잔의 단호한 말에 일박이 키득 웃었다. 얼마 전 산에 갔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 기절을 했다던 샤오잔은 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 했다. 다만 정말 신기한 것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다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일이 있고난 뒤로 신을 믿게 되었다는 샤오잔의 가슴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소모임에서 주말마다 가는 등산모임에 아주 빠져버린 샤오잔은 이번에는 다른 과와 조인트해서 가야 하니 제발 얼굴만이라도 비춰달라는 회장의 눈물 어린 부탁도 정중히 거절했더랬다. 이제 산이라면 징글맞았기 때문이다.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일박은 제 동생을 위해 단순하게 바꾼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또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간 모양인지 창문이 환하게 열려있는 걸 보고 일박이 눈을 찡그렸다. 이보는 요즘 바깥 세상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에 재미를 들려 아무런 일도 없으면서 무작정 밖에 나가고는 했다. 밖은 위험하니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일박 또한 학교생활 때문에 이보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집에 가둬놓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굳이 이보가 밖에 나가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과제의 주제를 정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훑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뛰어 왔는지 문을 열고 들어 온 이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이 눈에 들어가 따끔거리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운동화도 벗는 둥 마는 둥 안으로 들어 온 이보가 ‘일박아, 있잖아..!’ 라고 말하며 일박이에게 달려가려던 순간, 침대 위에 앉아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샤오잔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 나쁜 사람 아닌데.”

 일박이의 등 뒤에 숨어있는 이보를 보며 샤오잔이 어색하게 웃었고, 그 말에 일박이 정말 웃겨 죽겠다는 듯 까르르 거렸다. 이보는 일박이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일박이의 목옆으로 눈만 빼꼼 내밀어 제 앞에 있는 샤오잔을 힐긋거렸다.

 등치가 산처럼 커다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말랐더래도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 애가 등에 매달린 게 불편하지도 않은지 일박이는 뒤에 이보를 달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일을 했다. 샤오잔은 그런 이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힐금. 이보가 눈동자를 굴려 샤오잔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이보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급히 눈동자를 반대쪽으로 굴렸다. 그리고는 다시 샤오잔을 향해 힐금. 그 모습이 마치 눈치를 보는 애완견 같아 샤오잔이 피식 웃으며 이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봐. 나는 샤오잔이라고 하는데, 넌 이름이 뭐야?”
“...이보..”
“이보? 이름이 이보야?”

 그러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리고는 일박이의 허리를 더 세게 안는다. 이보가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던 샤오잔이 주머니에서 소세지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일박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이보가 소세지 냄새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킁킁. 가깝게 내밀어진 소세지 냄새를 맡는 걸 보니 진짜 애완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샤오잔이 소세지를 입에 가깝게 내밀어주니까 이보가 얼른 한 입 깨물고는 샤오잔의 눈치를 보며 오물거렸다. 오호라. 샤오잔이 반색하는 얼굴을 하더니 소세지를 살랑 흔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보가 소세지를 향해 고개를 빼내자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아예 침대 위에 앉아버리니 잠시 눈치를 보던 이보가 얼른 일박이의 등에서 떨어져 샤오잔의 옆에 와 앉아 그가 건네준 소세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왠지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샤오잔이 이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주머니에서 소세지 하나를 더 꺼냈다.

“야. 너 지금 내 동생, 개 다루듯 한다?”
“니 동생이야?”
“응. 내 쌍둥이 동생. 집에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어. 이보야. 형이 그랬잖아. 먹을 거 주는 사람 쫓아가지 말라고. 위험해.”

 소세지를 다 먹은 이보가 샤오잔의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할 일을 다 끝냈는지 연필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 일박이 그런 이보의 이마를 손으로 문질러주자, 이보가 나른했던 모양인지 하품을 길게 했다. 그걸 또 신기하게 바라보던 샤오잔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니 동생 어디 하나 모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 말에 일박이 샤오잔을 쏘아보며, 그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이보를 일으켜 제 뒤에 숨겨버렸다.





 담장 위로 뛰어오르는 몸이 날렵하고 가볍다. 곱게 휜 등선이 마치 고양이의 유연한 몸선 같았다. 멀리 서서 이보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샤오잔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달고 그리고 걸어갔다. 꽤나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샤오잔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더니 결국 뛰어가는 형상이 되었다.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이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아래를 내려 보았다. 샤오잔이 조금 가쁜 숨을 내뱉으며 이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와. 여기 되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갔어? 안 무섭니?”
“괜찮은데..”
“일박이 기다리는 거야?”

 이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박이 오늘 보강 있어서 조금 늦을 거야.”
“보강?”
“응. 보충 수업.”

 샤오잔이 이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보는 허리를 숙여 그 손을 잡고 아래로 가볍게 뛰었다. 높은 곳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리는 이보의 행동에 샤오잔이 깜짝 놀랐지만, 이보는 무게가 없는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바닥에 안착했다.

“너 운동 했었어?”
“아니요.”
“근데 운동 신경 되게 좋다.”

 샤오잔은 이보의 손을 잡고 일박의 자취집으로 걸어갔다. 일박이가 직접 손을 붙잡고 하루 종일 가르쳐준 덕분에 이보는 손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여기저기 어질러진 책 중 하나를 집어 펼쳤다. 그것은 샤오잔이 이보 보라고 잔뜩 빌려가지고 온 만화책들이었다.

“아직 다 안 읽었어?”
“아니요. 재미있어서 또 읽고 있었어요.”
“그래? 다음에 또 빌려다 줄게.”

 엎드려 누운 이보의 옆에 앉은 샤오잔도 만화책 하나를 집어 펼쳤다. 정말 재미있는지 만화책에 집중한 이보와 달리 샤오잔은 책장을 성의 없게 대충 넘기다가 슬쩍 이보를 바라보았다. 제법 진지한 눈으로 만화책의 대사를 읽는 이보가 귀여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중요한 장면을 보는지 살포시 눈이 찡그러져 있었다. 진짜 귀여워 죽겠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서 손을 뻗었던 행로가 머리가 아니라 만화책을 쥐고 있는 이보의 손으로 향했다. 덥썩. 손목이 잡히자 이보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샤오잔을 올려다보았다.

“너 손에 흉터..”
“..아...”
“아팠겠다.”

 손목에 나 있는 톱니 모양의 흉터에 샤오잔이 제가 아픈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흉터를 쓰다듬는 샤오잔의 손길에 당황한 이보가 얼른 샤오잔의 손에서 제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흉터가 있는 손목을 꽉 잡아 그것을 가렸다.

“뭐 때문에 다친 거야?”

 샤오잔의 물음에 이보가 입술을 깨물었다. 난처해 보이는 표정에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싶어 샤오잔은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예전에 일박이 이보에게 하던 것처럼, 샤오잔도 이보의 이마를 슥슥 문질러주었다. 그러는 와중에 앞머리가 눈을 찔렀는지 이보가 눈을 찡그렸다. 그걸 본 샤오잔이 이보의 앞머리를 이마 뒤로 휘익 넘겼다. 눈을 가리던 앞머리가 사라지자 커다란 이보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갈색 눈동자였지만 햇빛을 받으면 조금 더 옅어져 거의 황금빛을 띠는 신기한 눈동자에, 샤오잔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 속에 제 얼굴이 보인다. 천천히 깜빡이는 눈동자가 샤오잔을 삼켰다 뱉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눈동자에 비치는 제 얼굴을 바라보던 샤오잔의 고개가 살며시 아래로 내려갔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났다. 향수 냄새도 아니고 방향제 냄새도 아니고,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그런 단 내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코끝이 예민해지고 온 몸이 나른해졌다.

 천천히 내려간 얼굴. 서로의 코끝이 닿았다. 그러자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샤오잔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리고 그때.

“뭐해, 너희들?”

 보강이 끝난 일박이 안으로 들어와 둘에게 물었다. 일박의 등장에 샤오잔의 나른한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듯 화들짝 놀란 샤오잔이 얼른 얼굴을 급히 떼어내고는 헛기침을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보 앞머리가 너무 길어서 눈을 찌르길래.”
“그래?”

 샤오잔의 변명 같은 말에 일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했다. 샤오잔은 괜히 덥다고 난리를 치며 옆에 놓인 만화책을 집어 부채질을 했다. 이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샤오잔의 옆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일박이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어놓고 손을 씻던 일박이 따가움에 눈을 찡그리며 손바닥을 펼쳤다.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강하게 나 있었다. 피부를 뚫고 지나갈 것만 같은 상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박이의 눈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이보텀 샤오왕 일박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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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02f8f] - 2020/11/12 23:46

센세 이거 어나더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기다릴게ㅠㅠㅠㅠ존나좋다지금 눈물흘린다 매일같이기다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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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e819] - 2020/11/12 23:46

아니 센세 미국간줄 알았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나 지금 눈물날라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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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19f5] - 2020/11/13 00:11

뭐야 나 왜 이거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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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80d17] - 2020/11/13 01:47

센세ㅠ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넘 행복하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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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7b4d3] - 2020/11/13 05:26

센세라니 내가 꿈을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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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bc7b] - 2020/11/13 13:34

와 쩌기 북막한거 삭제되서 울었는디 왔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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