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샤오왕으로 모기가 된 왕이보와 헌혈해주는 샤오잔

https://sngall.com/articles/925
2020/11/12 23:17
조회수: 753

여름은 싫다. 더워서 싫었고, 많은 벌레들 때문에 더 싫었다. 더운 게 싫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있으면 벌레가 들어온다. 벌레 때문에 창문을 닫고 있으면 너무 더워서 사우나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에나. 이렇게 끔찍한 계절이 어디 또 있을까. 샤오잔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벌레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는지 귓가에 애앵애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기인가 보다. 감은 눈을 찌푸린 채로 팔을 허공에 들어 휙휙 흔들었다. 모기를 쫓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자신이 자는 사이 모기가 몸 어디 한 곳을 물어 버릴 거다. 아, 짜증.. 샤오잔은 옆으로 누운 뒤 얇은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덥지만 왠지 이불을 덮고 있으면 모기가 못 물 거 같은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다. 어차피 자다가 다 차버릴 테지만. 그러면 슬슬 잠에 들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또 애앵애앵 하는 모기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너무 졸려서 팔을 올려 모기를 쫓을 생각을 못 했다. 어차피 물릴 테니 그냥 자자. 그리고 점점 의식이 흐릿해졌다.

 따끔.

 정신이 반짝 들었다. 점점 흐릿해지던 정신이 다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것이다. 샤오잔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코끝이 따갑다. 하필 물어도 코.. 입술을 씨근거리며 눈을 떴는데, 눈앞에 뭔가가 왔다갔다 거렸다. 뭐지, 저건? 샤오잔은 너무 가까이에 있어 흐릿해진 물체를 선명하게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쪽쪽-. 애앵애앵-. 따끔-.

 제 코에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집중을 하느라 샤오잔이 깬 것을 모르는 듯 했다. 샤오잔은 손바닥으로 쳐버릴까 하다가 저게 뭔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손을 올려 제 코에 매달려 있는 머리통을 잡았다. 머리통.. 머리통.. 머리통?!

“으악, 너 뭐야!”

 그제야 두 눈을 크게 뜬 샤오잔은 제 엄지와 검지에 머리통이 잡힌 채로 발을 파닥이는 정체물명의 생물을 보았다. 인간인가? 인간인데 등에 매달린 이 날개는 뭐지? 요정? 아니, 요정인데 내 코는 왜 깨물었지? 샤오잔의 손가락에 잡혀서 허공에 떠버린 생명체는 발을 마구 파닥이며 발버둥을 치다가 안 되겠는지 샤오잔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애앵애앵!

 하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샤오잔은 자기 전부터 제 귀를 거슬리게 했던 모기 울음소리를 제 손에 잡힌 생명체가 똑같이 내자 놀란 눈을 했다. 그 생명체를 쥔 채로 거울 앞에 얼른 다가간 샤오잔이 아까 물렸던 제 코를 보았다. 모기가 물고 간 것 마냥 코가 벌겋다. 물린 걸 인지하니 괜스레 코끝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너.. 모기야?”

 샤오잔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제 손에 붙잡힌 녀석을 보았다. 샤오잔의 말에 그 녀석은 제법 자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오, 마이 갓.




 자신이 모기라던 녀석의 이름은 왕이보였다. 모기 주제에 이름도 있다니. 생년월일은 어쩌고 좋아하는 건 어쩌고 혈액형은 어쩌고.. 잠깐. 너 모기 주제에 혈액형도 있니? 샤오잔은 제 앞에서 부끄러운 듯 몸을 베베 꼬며 신상명세를 나열하고 있는 이보를 기가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 B형 남자의 피가 제일 좋아요!”

 그 말에 샤오잔은 슬쩍 이보 옆에 올려둔 저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환한 웃음을 띤 이보가 말한 선호식품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보는 코를 킁킁 거리며 제 옆에 놓인 샤오잔의 손등을 와락 안았다. 그래봤자 이보는 조그마해서 안은 게 아니라 샤오잔의 손등 위에 엎어진 것처럼 보였다. 피를 많이 먹었는지 통통한 뺨을 제 손등에 부비적거린다. 그걸 본 샤오잔이 어색하게 웃으며 이보를 억지로 떼어냈다.

 그리고는 제 검지 크기의 이보를 요리조리 훑어보았다. 등에 달린 앙증맞은 날개 빼고는 자신과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이게 어딜 보고 모기라는 거야.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 이보의 몸을 잡아 요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고 있는데, 이보가 어지러웠는지 눈을 살짝 찡그리더니 이내 입을 크게 벌려 샤오잔의 검지 끝을 콱, 하고 깨물었다.

“으아, 따가워!”

 저도 모르게 손을 마구 흔들어 이보를 떼어낸 샤오잔은 벌써부터 벌겋게 오르더니 이내 간지러워지는 상처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 끝과 책상 위에 엉덩방아를 찐 이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진짜 모기 맞네.




“안 돼.”
“한 번만.”

 불쌍한 눈으로 쳐다봐도 안 돼. 샤오잔은 제 옆을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이보를 손가락으로 튕겨 저 멀리로 보내버렸다. 그리고는 마저 찌개를 떴던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 맛을 본다. 으음, 좀 짜네. 얼른 컵에 물을 받아 한 컵 들이붓는데 이보가 다시 힘껏 날아와 샤오잔의 주위를 앵앵 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오늘의 메인인 부대찌개를 가운데 놓고 열심히 밥을 먹는 샤오잔의 옆에 앉은 이보의 볼은 퉁퉁 부어있었다. 심통이 난 게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팔짱을 끼고 무서운 눈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샤오잔은 이보를 힐금 바라보고는 콧방귀를 끼며 숟가락으로 부대찌개를 들이켰다.

“그렇게 있어도 안 돼.”
“왜요!”
“이게 어디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대들어?”
“이익..!”

 끝까지 안 된다는 샤오잔에게, 자리에서 벌떡 선 이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앙증맞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샤오잔이 젓가락으로 머리를 눌러 아래로 힘을 주자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분하다! 내가 1cm만 더 컸더라도!

 둘이 이렇게 되니 안 되니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보가 배가 고팠다. 그래서 샤오잔에게 달려들었고, 샤오잔은 정색을 하며 이보를 밀어내며 자기 피는 절대 빨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배가 고픈 걸 어쩌랴. 이보는 빈혈 때문에 눈앞이 어지러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피 빨고 싶으면 다른 집 가던지.”
“하지만 B형의 남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구요!”

 선호식품을 눈앞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기 주제에 피도 가려 먹다니. 저거 아직 덜 굶어봤구나. 이제는 아예 떼를 쓰듯 바닥에 엎드려 다리를 동동거리는 이보를 보며 샤오잔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 돼.



 샤오잔은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연필꽂이 옆에 숨어 샤오잔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이보가 주위를 휙휙 둘러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우개똥이 보였다. 얼른 그걸 주워가지고 온 이보가 있는 힘껏 샤오잔 쪽으로 지우개똥을 던져본다. 지우개똥이 날아가 샤오잔의 몸을 맞추진 않았지만 근처에 떨어졌으니 시선을 끌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눈길 하나 주질 않는 샤오잔을 보니 지금 완전 초집중 상태인가 보다.

 됐다! 이보는 환하게 웃으며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샤오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그마한 날개를 팔랑이며 조심스럽게 샤오잔의 목 뒤로 다가갔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코를 킁킁 거린 이보는 황홀한 피 냄새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샤오잔의 뒷목에 도착한 이보가 얼른 입을 앙하고 벌렸다. 양쪽의 뾰족한 송곳니가 반짝인다. 잘 먹겠습니다! 착한 이보는 밥 먹기 전에 예의바르게 인사도 한다. 인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할 참이었다.

“자꾸 이러면 모기향에 목욕시켜 줄 수도 있어.”
“으윽.. 아깝다.”

 어디서 자꾸 앵앵 거린다 했더니. 샤오잔은 심드렁한 얼굴로 이보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허공에 대롱대롱 떠버린 이보는 분하다며 다리를 마구 동동 구르고 주먹을 허공에 마구 흔들며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샤오잔은 이보를 아예 제 눈앞에 데려다 놓았다. 어차피 앵앵 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잡아낼 수 있지만 왠지 그래도 제 시야 안에 가둬놓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꼼짝없이 샤오잔의 시야에 갇혀버린 이보는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없자 짜증이 나는 듯 다시 한 번 바닥에 누워 다리를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배고파! 배고프단 말이에요! 배고프다구! 나 배고파서 죽을 거야! 빈혈도 있다구!”
“뭐? 빈혈? 모기 주제에 아주 가지가지 하는 구나.”

 한참을 떼를 쓰던 이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오잔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대 자로 뻗어버렸다. 하도 발악을 했더니 배가 더 고파지는 거 같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는데,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은 신경도 안 써준다. 유순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고집 있네. 이보는 자신이 샤오잔에게 헌혈해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야. 왕모기.”
“.........”
“야. 야? 이보야? 야. 너 정말 죽었어?”

 공부를 다 끝낸 샤오잔은 갑자기 조용해진 이보가 이상해서 들고 있던 샤프로 이보를 쿡쿡 찍어보다가 아예 반응이 없자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주, 죽은 거야? 경찰에 신고해야 되나? 으악, 내 집에서 시체가 나올 줄................................................. 그냥 모기일 뿐이잖아. 모기라지만 생긴 건 인간이랑 똑같아서 잠시 당황했던 샤오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이보의 배를 꾹꾹 눌러보았다. 조금 세게 누르니까 이보가 팔을 파닥이더니 이내 샤오잔의 검지를 꽈악 붙잡아 매달린다.

“배... 배고파 죽겠어요.”

 사실 지루해서 잠깐 졸은 거지만. 이보는 샤오잔 몰래 입가에 흘린 침을 스윽 닦아냈다. 그 와중에 샤오잔은 눈을 찡그리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모기라지만 생긴 건 인간이어서 일말의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보가 정말 모기처럼 생겼다면 그냥 손바닥으로 꾹 눌러 죽여 버릴 텐데, 진짜 인간처럼 생겼으니까. 뒤에 달린 날개만 아니면 인간 축소판이라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으아, 배고파. 배고파. 이보는 샤오잔의 검지를 혀로 핥으며 다리를 동동 거렸다. 배가 고파서 이 손가락을 콱 깨물어 피를 먹고 싶다. 그래도 될까? 이보는 생각보다 오래 제게 손가락을 내어주는 샤오잔을 흘깃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먹을까? 먹을까? 먹을까? 먹고 도망치자! 그럼 괜찮을 거야! 그래서 입을 앙- 하고 벌리려는데.

“아, 알았어.”
“...........??”
“밥 아니, 아니지. 피 줄 테니까 대신 나 몰래 어디 빨아먹고 그러면 안 돼.”

 샤오잔의 그 말에 이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
“.......”

 샤오잔은 턱을 괴고 이보의 앞에다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보의 볼에 바람이 가득 들어찬다.

“손가락은 껍질이 두꺼워서 힘들어요!”
“...너 밥 먹기 싫으냐?”

 샤오잔의 말에 이보가 이번엔 엎드린 채로 다리와 팔을 동동 거렸다. 지가 처한 상황도 모르게 이게 아주. 샤오잔은 마치 마트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구는 이보가 귀여워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그럼 어디를 내주면 돼?”
“허벅지 안쪽이요! 그쪽 살이 참 연하고 좋아요!”

 하필 달라고 해도 그런 델.. 샤오잔이 슬며시 고개를 내려 제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허벅지 안쪽이라니. 물리면 가려울 텐데. 거기 계속 긁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이런저런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다. 이제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이보가 기쁘다고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본 샤오잔이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바지를 벗었다.

 책상에서 뛰어내려 샤오잔의 허벅지로 내려 온 이보가 허리를 숙여 코를 킁킁거렸다. 으아, 달콤한 냄새! 황홀해서 정신을 놓아버릴 지경이다. 이보는 허벅지 가장 안쪽에 매달렸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부드럽고 하얀 허벅지를 앙- 하고 깨물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피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황홀경에 빠진 이보는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샤오잔은 다른 의미로 정신을 놓아버릴 지경에 처했다. 모, 모기가 제 피를 빠는 모습이 이렇게 야해보여도 되는 거야? 조그만 머리통이 쉴 새 없이 제 허벅지에 매달려 피를 빠는 걸 보고 있으니 왠지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다. 더 이상 이보를 볼 수가 없어서 샤오잔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모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다니. 정말 미쳤구나, 샤오잔...





“허벅지는 이제 힘들어.”

 샤오잔은 붉어진 허벅지에 약을 슥슥 문질렀다. 그래봤자 몇 분 뒤면 다시 간지러워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벌써 몇 번이나 깨물렸는지 허벅지 안쪽에는 물린 상처가 꽤나 많았다. 게다가 물린 상처가 늘어날수록 간지러움은 배가 됐고,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긁게 되니 사람들 시선이 영 좋지 않다. 게다가 피를 주기 위해 바지를 벗는 것도 싫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 그래서 더 이상 허벅지를 내어줄 수 없다는 샤오잔의 말에 이보가 생각을 하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눈을 몇 번 굴리더니, 이내 손바닥에 주먹을 딱 치며.

“팔 안쪽 살도 좋아요!”
“이 모기 자식아!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좋다고 웃어대는 이보의 머리를 샤오잔이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다. 그러자 이보는 머리 망가진다며 사나이 가오가 어쩌고저쩌고 모기 주제에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대며 투덜거렸다. 그걸 듣고 보며 샤오잔은 까르르 웃었다.

“야. 왕모기.”
“이보라는 이름 있거든요?”
“너 이제 안 가냐? 언제까지 울 집에서 살 거야?”

 샤오잔은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보를 바라보았다. 작은 꼬마 모기님. 이제야 눈높이가 맞네. 처음으로 이보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 샤오잔은 커다란 눈을 꿈뻑거리며 저를 바라보는 이보가 귀여워 두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그.. 그.. 그거야.. 뭐.. 그거.. 어, 음..”

 생각지도 못한 샤오잔의 질문에 이보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뒷짐을 진 채로 요리조리 왔다갔다거리며 생각을 해보지만 좋은 대답이 생각나질 않았다.

“어, 어, 언젠가.. 언젠가 나가겠죠 뭐.”
“나가면 갈 데라도 있고?”
“...........그.. 그건.. 어, 음..”
“B형 남자 찾는 거 쉽지 않을 텐데.”

 이보가 머리를 긁적인다. 조그만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거 같다. 샤오잔이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이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처럼 꾹꾹 누르는 게 아니라 정말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눈은 여전히 마주친 채로.

“그냥 우리 집에서 나랑 살자.”
“............???”
“내가 매일 밥 줄 테니까 여기서 살자.”

 귀여우니까 특별히 데리고 살아줄게. 펫 하나 생겼다고 치면 되지 뭐. 아직 대답도 못 하고 입술만 오물거리고 있는 이보를 보며 샤오잔이 정말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 동안 잘 먹여서 그런지 통통해진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귀엽다는 뜻이었는데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이보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엎어진다.

“왜 때려!”

 그리고는 다시 바닥에 엎드려서 팔과 다리를 동동 거리는데, 아, 저렇게 떼쓰는 것마저 귀여워 샤오잔은 아예 배를 잡고 까르르 웃었다.




 샤오잔의 집에 이보가 얹혀 산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샤오잔의 몸은 성할 날이 없었다. 여기 깨물리고 저기 깨물리느라 온 몸에 모기자국이 벌겋게 나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랐으며 벌레물린 데 바르는 약은 샤오잔의 지갑보다 더 소중하게 가방과 주머니에 들어있을 정도였다. 정작 당사자인 샤오잔은 상관없었으나 사람들이 하도 난리를 부리니, 어쩔 수 없이 샤오잔은 인터넷 지식인 검색을 해서 모기가 원래 먹는 먹이를 찾아보았다.

 Q : 암컷 모기가 피 먹는 건 아는데 그럼 수컷은 뭐 먹고 사나요?
 A : 모기는 원래 식물이나 과일의 즙을 먹고 살구요, 피는 암컷이 임신했을 때 모자란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거예요!

 ..............왕이보 이 자식.. 집에 가면 가만 안 둘 테다.







“아잔. 집에 있어?”

 해관은 화분 아래에 있는 열쇠를 집어 샤오잔의 집에 들어가며 심드렁하게 샤오잔을 불렀다.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현관에 샤오잔의 운동화가 없는 걸 보고 집이 비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해관은 집을 둘러보다가 샤오잔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까, 아니면 자기 집에 가 있다가 샤오잔이 집에 도착하면 다시 찾아올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집에 가기 귀찮으니 여기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자기 집열쇠 놓는 위치를 해관이 알고 있다는 것을 샤오잔이 알면 짜증을 낼 게 분명하지만 지금은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는 게 더 귀찮은 해관이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려던 해관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애앵애앵- 하는 모기 울음 소리게 눈을 찡그렸다. 주위를 휙휙 둘러본다. 그런다고 조그만 모기가 눈에 들어 올리는 없었지만. 그러면서 요즘 들어 샤오잔의 몸에 부쩍 늘어나는 모기 물린 상처가 떠올랐다. 샤오잔은 집에서 모기를 키우나. 해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져 모기약을 찾아냈다. 여름이면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모기약을 두던 샤오잔이 어쩐 일로 서랍 깊숙이 이것을 처박아 놓았는지 모르겠다. 해관은 새 모기약을 뜯은 뒤 집 안 곳곳에 모기약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시원한 솔향이라고 적혀있지만 역한 화학 냄새에 해관이 코를 손으로 막으며 집안이 난사한 모기약으로 하얗게 될 때까지 그렇게 뿌려댔다.

 화분은 집에 있었으므로 샤오잔이 양 손 가득 사온 건 각종 과일들이었다. 워낙 별난 이보다보니 입맛이 독특할 거 같아 과일을 여러 종류로 사왔다. 고 조그만 머리통으로 과일에 매달려 쪽쪽- 거릴 이보를 생각하니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샤오잔은 크리스마스 날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보야 나 왔어~ 라고 그를 부르려는 순간.

 코를 습격하는 모기약의 냄새에 샤오잔이 양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놓쳤다. 탁, 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과일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샤오잔은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해관을 발견하고는 얼른 그리로 급히 걸어갔다.

“아잔, 이제야 왔어?”
“너... 너야?”
“뭐가?”
“모기약 뿌린 거.. 너야?”
“어~ 응. 나야. 왜 모기약을 구석에 처박아 놨어? 모기가 하도 앵앵거리길래 모기약 좀 뿌렸어. 아잔, 나 잘했지?”
“이.. 이... 이.. 이 살인자!”

 뭐? 샤오잔의 말에 해관이 벙찐 얼굴을 했다. 샤오잔은 시뻘게진 얼굴로 해관을 손가락질 하면서 살인자! 피도 눈물도 없는 천하의 못된 새끼! 있는 욕 없는 욕 다 뱉더니 얼른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으앙, 이보야. 너 지금 어디 있니?

 샤오잔이 잔뜩 울상을 지으며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보를 연신 불러도 대답이 없다. 흑, 이보야. 샤오잔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을 찡그리며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그렇게 애타게 찾던 이보가 금방이라도 떼를 쓸 것처럼 바닥에 누워있었다.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책상을 보던 샤오잔이 천근같은 발걸음을 떼 이보가 있는 곳으로 느릿하게 다가갔다.

“이, 이보야?”

 샤오잔이 슬쩍 이보의 몸을 툭 밀어보았다. 이보의 몸이 쉽게 밀려나간다. 그걸 본 샤오잔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더니 이내 또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연필꽂이 뒤에 숨어 있다가 고개만 빼꼼 내밀어 저를 살펴보던 이보였다. 그건 간식이 먹고 싶단 뜻이었다. 그런데 공부에 방해될까봐 말도 못 하고 연필꽂이에 몸을 숨겨 얼굴만 내놓고 저의 눈치를 살피는 거다. 이렇게 착했는데. 가끔 허벅지 안쪽 살 피가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제가 공부를 하다 코피가 터지면 제일 먼저 좋아하던 이보였는데. 이렇게 귀엽고 착했는데. 아세요? 이보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모기였어요. 그런데 왜.

“으앙, 이보야.”

 샤오잔은 죽어버린 이보의 앞에 고개를 숙여 엉엉-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보와 즐겁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휙휙 지나가자 눈물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둑에 물이 터진 것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거! 잔거! 잔거!”
“으아앙...................... 어?”
“무슨 꿈을 꾸길래 그렇게 난리를 쳐?”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샤오잔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보는 찬금이었다. 찬금이? 샤오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체를 느릿하게 일으켜 세웠다. 주위를 급히 둘러본다. 침대와 그 위에 옷들이 더럽게 널려져 있는 이 곳은.. 제 드라마 촬영장 숙소였다. 놀란 눈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샤오잔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찬금이 손을 올려 샤오잔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악몽 꿨구나?”
“아.. 응.”
“얼른 정신 차리고 나와. 야식 만들어놨어.”

 그러면서 방을 나가는 찬금이의 뒷모습을 보며 샤오잔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꿈이었다. 이보가 죽은 건 다 꿈이었다. 으아, 하지만 너무 현실처럼 생생해. 샤오잔은 손등으로 남은 눈물을 슥슥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보에게 말해준다면 이보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왠지 창피하니 말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에 도착한 샤오잔은 창문을 향해 모기약을 발사하는 해관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 너... 너 이 살인자!”

 그러고는 빛의 속도로 달려가 해관의 손에 들린 모기약을 뺏는 샤오잔이었다.







“샤오선생,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자다 깼는지 이보의 머리가 부스스했다. 목소리도 조금 잠긴 거 같았고. 괜히 잠에서 깨운 거 같아 미안했지만 샤오잔은 지금 당장 이보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끔찍한 꿈을 꿨는데 그게 너무 현실처럼 생생해서 마치 정말 이보가 (모기약 때문에) 죽어버린 느낌이라 이보를 실제로 보고 만져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왕선생이 보고 싶어서.”

 딱히 설명하기가 애매해 낯부끄러운 말을 했더니, 이보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려와 이보의 얼굴을 가렸다. 샤오잔이 손을 뻗어 이보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잡아 귀에 조심스럽게 꽂아주었다.

“여름이라 모기가 많다.”
“어? 아, 응.”
“아, 이거 봐!”
“응?...............................???”

 밤이지만 가로등 아래라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 잠옷을 벗고 급히 나오느라 침대에 걸쳐놓은 나시티를 입고 나온 이보가 자신의 팔을 샤오잔의 눈앞에 가져가 보여주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찰싹-.

“모기 잡았다, 형!”

 이미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은 모양인지 손바닥에 묻은 모기의 사체와 피를 샤오잔에게 보여주며 이보가 환하게 웃었고, 순간 샤오잔은 이보의 손바닥에서 장렬히 전사한 모기를 보고 꿈에 나왔던 모기 이보의 최후가 떠올라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샤오왕 이보텀 주먹비


code: [e2783]
목록 Gift

댓글

code: [10948] - 2020/11/12 23:18

아 이거 존나구ㅣ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시바류ㅠㅠㅠㅠㅠㅠㅠㅠ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4344f] - 2020/11/12 23:2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졸귀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0bd7b] - 2020/11/12 23:2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e7140] - 2020/11/12 23:36

졸귀닼ㅋㅋㅋㅋㅋㅋㅋㅋ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d835a] - 2020/11/13 15:00

센세왔구나ㅜㅜㅜㅜㅜㅜ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a180d] - 2020/11/20 17:55

ㅋㅋㅋㅋㅋㅋㅋ 몇 번을 봐도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
- perma_link - 삭제 - gift
code: [f43ae] - 2022/04/25 08:09

귀여워ㅋㅋㅋㅋ

-
- perma_link - 삭제 - gift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