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이보등륜, Cosmic Boy 01

https://sngall.com/articles/771
2020/11/12 21:38
조회수: 1094

지직거리는 무전기 소리에 귀가 아팠다. 여기는 아카르타 행성 외곽 B-32구역. 조난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선과 18세 가량으로 보이는 소년 발견. 다시 한번 알린다. 여기는 아카르타 행성 외곽 B-32구역 파괴된 비행선과 소년이 발견되었으니 긴급 출동 바란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무전에 라면을 먹던 형사 한 명이 급히 일어섰다. 비품실에서 복귀하던 이보는 때아닌 소란에 눈이 커졌다. 뭐 하고 있어, 출동 명령이야. 서류 정리한 거 갖다 놓으러 비품실 갔다가 이제 왔는데요. 눈을 가늘게 뜨고 말대꾸다. 팀장은 이 상황에서도 그럴 정신이 있는 막내 형사가 참으로 사랑스러워 괴성을 지른 후에야 진정했다. 
    그들이 우주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산산조각이 난 거대한 비행선과 투명관 속에 곤히 잠든 소년이 비행선에서 내리고 있었다. 우주선 구조대 대장은 팀장에게 습득한 증거물을 건넸다. 아마 비행 기록이 남겨져 있을 테니 검토해줘. 같은 학교를 나와 각별한 사이인 선배에게 팀장은 거수경례를 했다. 


   “저 애가….”
   “유일한 생존자로 추정하고 있어. 의식이 없어서 깨어나면 조사해봐야지. 부탁하네.”
   “네, 선배.”


   알 수 없는 액체로 흠뻑 젖은 작업복을 입은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팀장은 거수경례를 거두지 않았다. 증거물이 든 박스를 품에 안은 채 팀장을 보았다. 발령 초기보다 이마 주름이 더 움푹 패어있다.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나이를 먹는 건 변하지 않는다. 뭘 그리 봐. 퉁명스럽게 팀장이 톡 쏘자 이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제는 독심술도 하나 서로 복귀하면 돗자리라도 사드려야 할 것 같았다. 


   “왕이보, 집에 남는 방 있냐.”
   “왜요, 같이 사시게요?”
   “미쳤냐 내가 너랑 왜 같이 살아.”
   “그럼 다행이네요.”
   “저 생존자 네가 맡아야 될 것 같다.”
   “왜요.”
   “서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너뿐이거든.”


   방이 하나 남기는 하지만 이 무슨 통보란 말인가. 말대꾸 좀 했다고 이렇게 나오기 있느냐 이보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어린 놈이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다.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올라타서도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꼬우면 빨리 결혼해.”


   모태솔로인 것도 서러운데 결혼을 들먹이니 할 말이 없다. 잔뜩 심통이 난 이보는 아예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투덜거린다. 시끄러워. 팀장의 한마디에 금세 쭈굴해져서는 몸을 구긴다. 지금보다 더 일찍 결혼했다면 이보만한 아이가 있고도 남았다. 투덜거려도 제 몫은 하는 놈이라 그냥 귀엽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안전벨트나 매. 입술을 비죽 내민 채 이보는 단단히 안전벨트를 채웠다.
   우리의 세계는 멸망했다. 멸망한 지구를 피해 각국 정부는 국민을 운송할 비행선을 준비했다. 끝도 없이 광활한 우주를 헤맨 끝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정착했다. 이미 긴 항해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했기에 그들의 희생은 인류에게 값진 것이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하나의 정부를 세웠다. 동역과 서역으로 구분된 우리의 세계는 푸른 우주에서 다시 빛났다. 
   조난당한 비행선에서 습득한 블랙박스를 하루종일 돌려본 팀장은 부유하는 무인 행성을 들이박아 사고를 당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주에서 사고를 당하는 건 흔한 일이었기에 사건은 아무 소동 없이 금방 종결되었다. 문제는 이보에게 날벼락처럼 떨어진 이 소년이었다. 보호실에 앉아 눈만 깜빡이는 하얀 얼굴이 제가 서성이는 발끝마다 따라붙는다. 
    생존자인 소년은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누락자였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물건 중 출생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있어 팀장은 곧장 등록을 진행했다. 보호소 알아보고 있으니까 몇 주만 부탁할게. 정말 알아보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팀장의 말에 이보는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싶은 걸 참았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앞에서 깽판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제가 안 좋은 성격이라고 해도 그 정도 예의는 갖추고 있었다. 정말 몇 주면 되는 거죠? 구두상으로라도 계약은 계약인 겁니다. 이보는 단호하게 팀장에게 말한 후 보호실로 돌아와 소년 앞에 섰다. 


   “나는 왕이보야. 아르미나 구역 경찰청 소속 강력 1반 형사고 나이는 21살. 당분간 내 집에서 같이 지낼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보는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저기 형사님….”
   “말해도 돼.”
   “학교 보내주시면 안 돼요?”


   말끝을 늘이는 것이 퍽 답답했으나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상대했기에 이보는 그러려니 했다. 손가락을 꼼질거리는 게 전부였다. 더 이상 물어보지 말아 달라는 의사 표현인 것을 눈치채고 이보는 한숨을 쉬었다. 국가에서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자들을 누락자라고 칭한다. 누락자였으니 학교는 고사하고 국민이라면 누렸을 권리 또한 못 누렸을 터다. 이보는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학교는 갈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어차피 보호소는 이 근처로 배정될 것이니 학교는 팀장에게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왕이보는 지극히도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무관심한 제가 어떻게 형사가 됐는지도 신기할 정도였다. 제가 그은 선만 넘지 않으면 왕이보는 타인에게 최대한의 관심을 주었다. 무심한 성격은 험한 꼴을 많이 보는 형사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됐다, 고 저는 그리 생각했다. 팀장은 번번이 제 성격을 들먹이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아서라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 이 상태를 몇 년째 유지하고 있었다.
   무관심한 성격은 소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집으로 함께 들어와 대충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준 후 머물 방을 알려주었다. 학교는 모레부터 나가면 돼. 교복이랑 명찰은 내일 올 거고, 2학년으로 편입될 거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보는 소년에게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핏기 없이 하얀 얼굴이 곱게 끄덕여진다. 안녕히 주무세요. 소년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방으로 살아진다. 나같은 놈이 세상에 하나 더 있구나. 이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주전자에 담았다. 
   보호소를 알아보기까지 이틀이면 될 거라던 팀장의 말과 달리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사흘이 넘어가자 이보는 팀장에게 계약과 다르지 않냐고 다짜고짜 팀장실로 들어가서 따졌다. 그를 잘 모르는 타인이 보기에 매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평온하던 일상에 이질적인 존재 하나가 갑자기 끼어들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내년이면 성인인 애를 맡아준다는 보호소가 없어. 공문은 보내고 있으니까 곧 회신 올 거야.”
   “네, 기다릴게요.”


   차라리 사랑스러운 짐짝이라면 이리 반감이 덜 들 것 같았다. 소년은 이보가 출근하고 나면 등교 준비를 하는 듯했다. 머문 흔적조차 없이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집을 나갔으니 이보는 크게 별 말을 안 했다. 사실 소년이 무얼 하는지 식사는 하는지 그냥 맡아만 주고 생활은 전혀 몰랐다. 냉장고 음식이 거의 안 주는 걸로 봐서는 저녁이나 아침은 거르는 모양이었다. 원하면 제가 말하겠지 싶어 이보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고요하던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출동 전화인가 싶어 서류를 정리하던 이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아르미나 경찰청 왕이보 형사님 자리에 계십니까? 각이 잡힌 여자 목소리였다. 네, 제가 왕이보입니다. 허리를 곧추세운 이보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등륜 학생 담임 윤이랑이라고 해요. 보호자로 기재되어 계셔서요. 시간 되시면 잠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근무 중이라 자리 비우기가 힘들 것 같은데 무슨 일이시죠.”
   [등륜 학생이 폭행을 당해서 보호자가 오셔야 될 것 같아요.]
   “많이 다쳤나요?”
   [네, 좀 많이 다쳤어요….]


   곤란하다는 듯 이보는 머리를 긁적였다. 유리창 너머 눈이 마주친 팀장은 퍽 심각한 낯빛의 이보를 보고는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위쪽에 보고드리고 갈 수 있으면 갈게요. 무심하게 말한 이보가 전화기를 내려두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팀장은 책상 위에 캔커피를 놓았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이보가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말했다. 


   “오늘 반차 쓸게요. 등륜이 학교에서 일이 생겼다고 해서요.”
   “얼른 가봐.”


   결재도 없이 이렇게 쉽게? 이보가 눈을 깜빡였다. 네가 그렇게 인상 쓸 일이면 심각한 거잖아. 얼른 가. 내 표정이 그렇게 썩었나 이보는 얼굴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년과 같이 동거를 시작한 후 말을 나눈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무엇을 좋아하고, 학교생활은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본적인 것조차 나눠본 적이 없다. 어차피 금방 헤어질 사이라고 생각해서 이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무미건조한 관계에 이보는 왜 제가 보호자 자격으로 학교를 가고 있는지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안 돼서 지끈거렸다. 
   표정 변화 없이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이 마치 갓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 같았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곱게 휘어진 눈매.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는 옅은 갈색이었다.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는 가정통신문을 얼핏 본 기억이 나는데 챙겨달라는 일말의 말조차 없다. 그제야 이보는 알았다. 소년은 애초부터 제게 잘 대해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금방 헤어질 사이고, 자신을 짐짝처럼 떠맡은 이 관계에 저는 온전하게 갑이었으니까.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이보는 교무실 안에 딸린 상담실로 들어섰다. 단발머리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선생이 저를 맞이했다. 가해자 아이의 부모인 듯한 남자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소년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얼핏 보아도 상처가 가득한 얼굴의 소년. 대비되는 모습에 이보는 속에서 올라오는 욕을 꾹꾹 눌렀다.


   “저 애가 때린 건가요?”


   이보의 화난 음성에 등륜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소년의 표정에 이보의 눈이 커졌다. 잔뜩 터진 입가는 피가 엉겨 붙었고, 뺨과 눈가는 긁힌 탓에 부어 있다. 그 얼굴을 보니 더 화가 났다. 제가 그은 선을 넘은 순간이었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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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6cb81] - 2020/11/12 21:39

야 다비켜 내센세오심 ㅠㅠㅠㅠㅠㅠㅠ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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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9323] - 2020/11/12 21:40

끼요오오옷 내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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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df9bd] - 2020/11/12 21:40

레드카펫 깔아라 내센세 들어오신다 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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