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위룡이보, 반짝반짝 빛나는 03
너 때문에 살았다고
끝없이 미뤄둔 말들이 있었다고
/홀연, 이승희
3.
샹콩의 기억 속 소년은 조금 특이하게 남았다. 말수도 극히 적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기 싫은 건 끝까지 안 할 거라는 고집도 있었다. 제가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곤란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이기려 아등바등했다. 때론 그 결과가 씁쓸해도 소년은 납득했다.
한 팀을 이끌면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아야 했다. 두 소년보다 한살이 더 많다는 이유 덕에 샹콩은 리더가 됐다. 두 소년은 듬직한 샹콩을 잘 따랐다. 막내인 위룡과는 으르렁대는-물론 위룡 홀로 으르렁댔다- 관계였고, 이보와는 글쎄 좋지도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관계였다. 위룡 덕에 일종의 동반자 같은 관계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 난리통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것을 보면 소년의 멘탈도 보통 멘탈은 아니었다.
샹콩은 뻐근한 눈을 문질렀다. 슬럼프가 온 건지 예전의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잠깐 쉬면서 아이돌 생활이나 하다 올까요. 코치가 내민 담배를 입에 문 샹콩이 투덜거렸다. 머리가 복잡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며칠 전 위룡이 다시 꾸기 시작한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소년들을 잘 아는 만큼 숨겨야 하는 것도 많았다.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를 테지만 감출 수 있을 때까지는 홀로 버티고 싶었다.
“무슨 일 있어? 요즘 예전같지가 않네.”
“걸리는 일이 있어서요.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거든요.”
오랜만에 연기를 마시자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활동 내내 담배를 달고 살아서 이러다가 폐병으로 죽을 거라고 지나가듯 그 애가 말했었다.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즈음 호흡이 달려 춤을 출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샹콩은 그 애의 말을 따랐다. 리더지만 가끔은 멤버들 말도 들어, 형. 높낮이 없는 무덤덤한 말투 속에 가시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샹콩은 그 애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표정으로 안 드러나도 이 애가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슬픈지 모조리 알았다. 형은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위룡이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냥 지켜보면 다 보였다. 사랑스럽고 신경이 쓰이는 아이. 샹콩에게 그 애는 아픈 손가락과 같은 존재였다.
인연이란 참으로 독한 것이라서 억지로 끊어내려 해도 쉬이 되지 않는다.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끈 샹콩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낮은 숨을 쉬었다. 이대로 방에 들어가면 잠길 것 같아서 잠시 이러고 있기로 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을 무작정 잡을 바에는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애가 이래서 사라진 건가. 입가가 썼다.
“먼저 내려가볼게요, 코치님.”
“그래라.”
한 개비 더 불을 붙인 코치가 샹콩의 말에 손을 흔든다. 뿌연 연기 속을 가로질러 샹콩은 계단을 내려갔다.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침대에 몸을 묻고 깊은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나는 가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조그만 머리통 속에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서 말이 없는 건가. 넌 가끔 외계에서 온 생물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을 안 한다. 조금 더 친해지고서야 짧은 말은 점점 길어져 완벽한 문장이 됐다. 행동으로 모든 걸 말하던 소년은 성장해서 샹콩에게 둘도 없을 소중한 동생이었다. 그런 네가 사라진다고 했을 때 샹콩은 복잡했으나 이해했다. 네가 사라지는 것에는 이유가 존재했으니까. 위룡은 왜 말 안 해주냐고 방방 뛰었으나 웃고 말았다. 네가 그걸 알게되면 넌 분명 울게 될 것이란 걸. 그래서 언제나 그랬듯 저는 침묵하기로 했다.
내 세계는 그래. 온통 너와 위룡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디서부터 이어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소년기를 그들과 함께 했기에, 제 시절을 논하자면 그 아이들을 뺄 수 없었다. 오디션을 통해 처음 만나 마지막 무대를 서는 날까지 보낸 시간이 몇 년이었다. 그 후로도 인연은 이어져 지금도 위룡은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렸고-넌 참 안 변한다고 샹콩은 타박했으나 싫지는 않았다-, 그 애는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일은 과정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니 저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협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막 잠이 쏟아져 무의식으로 빠져들던 샹콩은 미간을 구긴 채 손을 뻗었다. 미끄러져 땅에 떨어뜨릴 뻔한 걸 겨우 잡아 액정을 확인했다. 저장도 안 되어 있는 번호다. 누구지. 택배인가. 샹콩은 목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오랜만이야, 형.
“잘 지냈어?”
- 나쁘지는 않아. 지금 어디야?
“숙소. 무슨 일 있어?”
샹콩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몇 년만에 걸려온 상대방의 목소리는 참으로 그대로다. 반가움도 잠시 샹콩은 제 물음에 대답이 없는 상대방을 기다렸다. 호흡이 간간히 끊기는 것이 불안했다. 몸을 구긴 채 샹콩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픈 걸까. 말은 안 해도 알았다. 그 애가 울고 있다는 걸. 샹콩은 서랍에 넣어둔 차키를 꺼내고 일어섰다.
“갈게. 이보야, 그러니까 울지말고 형 말 들어. 주소 보내.”
- 미안해.
무어가 그리 미안한 걸까. 이윽고 톡으로 짤막한 주소지가 들어왔다. 샹콩은 서둘러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오늘따라 문이 열리는 소리가 영 맑지가 않아서 마음 한 구석이 걸렸다. 머리 위로 흐르는 푸른 우주는 기분과 달리 청량하다. 이대로 울기에는 아쉬운 날이었다.
이보가 보낸 주소지 근처 주택가 골목에 차를 대고 샹콩은 달렸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작은 카페가 보였다. 문패가 CLOSE로 돌려져 있고, 안에 불도 꺼져있다. 샹콩은 그 번호를 다시 눌렀다. 신호음만 가고 전화를 안 받는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걱정이 돼서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에라이, 씨발. 샹콩은 이제 비릿한 철내음이 올라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다시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꽉 닫혀있던 문이 조금 열렸다. 마스크를 낀 하얀 얼굴이 조금 보인다.
“안녕.”
참으로 너다운 인사다. 샹콩이 응답하듯 손을 팔랑거리자 닫힌 문이 활짝 열린다. 물을 것도 없이 이보는 샹콩의 품에 안겨서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방황하던 손이 마른 등 위에 안착했다. 일정한 토닥거림과 함께 울음 소리가 공기 중으로 잠겨 들었다.
만나자마자 우냐. 샹콩은 제 앞에 놓인 따뜻한 커피가 담긴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퉁퉁 부은 얼굴로 머쓱하게 웃은 이보가 진열대에서 쿠키 몇 개를 꺼내어 트레이에 내왔다. 몇 년만에 건넨 인사치고 요란한 건 맞았으니 할 말이 없다. 콧잔등을 긁은 이보가 고개를 푹 숙이고 할 말을 못 찾았다. 안 미안해도 돼. 샹콩의 말에 하얀 얼굴이 고개를 든다.
하얀 얼굴에 동글동글한 코와 눈. 귀에는 귀걸이를 꼈던 자국이 아직 남아있다. 샹콩이 오기 전부터 얼마나 운 건지 눈가가 짓물러있어,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어 봉투에 담아 그의 얼굴에 대주었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으면 몇 년만에 전화를 걸었을까. 아무리 헤아려봐도 상상조차 안 됐다.
“형, 많이 놀랐지.”
“안 놀랐으면 그게 사람이겠니.”
“하긴 그건 그래.”
반달로 휘어지는 눈매가 반짝거린다. 얼음 떼지 말고 계속 대고 있어. 샹콩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를 다시 대주었다.
“그 애가 부른 노래 들었어.”
“그걸 듣고 울었다고?”
“형이 들어도 미친 거 같아?”
“대답 안 할게.”
게스트 대타로 위룡이 나온 날 부른 그 노래에 울었다는 게 신기하다. 하긴 가사가 구질구질하고 절절해서 그럴 만도 했으려나, 싶다. 위룡의 입장에서 부른 노래니 그 주인공은 이보가 맞을 것이다. 정나미 딱 떨어지기 좋은 가사가 너를 울린 거구나. 샹콩은 납득이 안 가도 두 사람 마음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야 조금 마음이 진정돼서 똑바로 이보를 마주할 수 있었다.
6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단정하다. 활동 시절 늘 색으로 차 있던 머리는 이제 온전히 제 색을 찾았다. 위룡도, 너도 아팠겠구나. 샹콩은 침묵을 택했으나 중간에서 모든 걸 보는 입장이기에 마음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넌 괜찮아?”
샹콩의 물음에 이보가 쓰게 웃는다. 괜찮은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다. 대답을 찾기도 전에 샹콩은 그랬구나, 대답을 한다. 형은 참 신기하다.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파악할까. 이보는 눈을 깜빡거렸다.
“아이는 잘 크고?”
“유치원 다녀. 이제 6살이야.”
“이름은 그대로 붙였어?”
“응, 시진으로 했어.”
“잘했어.”
샹콩이 이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었다. 예전이 떠올라서 그대로 손을 탄다. 자세히 보면 아직 어린 살이 남아 통통한 볼이 그대로다.
“용기내 줘서 고마워.”
수많은 말 중 하나를 골라 다정하게 꺼낸다. 샹콩이 사르르 웃자 이보도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웃을 때까지 돌아온 세월이 얼마더라. 이제 손가락 열 개를 아슬아슬하게 접기 전이었다. 홀로 힘들고, 외로웠을 시간을 견뎠을 이보가 대견해서 샹콩은 부들부들한 머리칼을 천천히 쓸었다.
해체 당하기 몇 주 전부터 이보의 상태가 이상한 걸 샹콩만 알았다. 어디 아픈 사람처럼 골골대기 시작하더니 체한 증상이 계속 되어 명치를 쓸어내리는 걸 본 게 여러 날이었다.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 제가 선을 넘을 수는 없어 지켜보다가 해체 통보가 내려진 후 이보는 쓰러졌다. 사라질 거라고 문자로 통보를 했으나 샹콩은 이대로 손을 놓는 것은 소년을 벼랑 끝으로 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계속 붙들었다.
“지금의 넌, 이보야 아니면 사윤이야?”
협탁 아래에서 꼬물거리던 손이 멈춘다. 도르르 굴러가는 눈알이 소리가 날 것처럼 방황한다. 샹콩은 협탁 아래 이보의 손을 살짝 잡아 올렸다. 잔뜩 긁은 손등에서 피가 난다. 활동할 때도 불안하거나 마음 졸이는 일이 있으면 피가 나도록 손등을 긁더니 여전하다.
“위룡이는 괜찮아?”
“아무것도 몰라. 너 찾고 싶다고 라디오에서 난리 치는 거 말리느라 죽을 거 같아.”
“미안해, 형.”
“기억 조각난 애한테 퍼즐 맞춰보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마.”
많이도 긁었네. 샹콩은 물티슈로 손등을 톡톡 닦았다. 깊이 파인 상처가 따끔거려 이보가 몸을 움츠린다. 아프다고 말을 안 하는 대신 행동으로 불안함을 말한다. 활동 중에도 손등에 감긴 붕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무어가 그리 무서운 걸까. 샹콩은 이보가 알려준 곳에서 연고와 붕대를 꺼내어 가져왔다. 손등을 소독하고 연고를 진득하게 짜내어 면봉으로 펴는 순간에도 소년은 말이 없다.
기억이 조각난 소년과 진짜 이름 대신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는 소년 그리고 모든 것에 침묵한 소년. 어찌 이리 기괴한 조합이 됐을지 신기했다. 기억이 조각나서 어린 날을 잊은 소년은 여전히 이름을 숨긴 소년을 찾고, 이름을 숨긴 소년은 그늘에 숨어 잠겨 들었다. 너희 둘을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 답을 구할 사람도 없으니 속이 쓰렸다.
“내 이름은 왕이보야, 형. 왕사윤이 아니라, 왕이보야.”
곱게 붕대가 감긴 손이 샹콩의 손을 빠져나간다. 겨우 멎은 눈물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내가 원해서 그 이름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서러운 과거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그래, 실컷 울어라. 샹콩은 이보의 곁으로 가 등을 토닥였다.
=
전화를 걸었으면 말이라도 해주면 안 될까. 샹콩은 문에 기대어 삐딱하게 말했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낀 이보가 머쓱하게 웃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형뿐이라서 그랬어. 조곤조곤 말하는 입술이 초조한지 자꾸 마른다. 배가 불러 아래가 보이지 않는데 슬리퍼를 어디다 놔둔 건지 안 보인다. 여기. 샹콩이 아래에 굴러다니는 슬리퍼를 들어 이보의 아래에 놓았다.
모든 걸 다 받아주었으나 샹콩이 답답해하는 건 딱 하나. 가끔 소년이 전화를 걸면 말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을까 모든 일정을 미루고 부랴부랴 달려온 게 여러 번이었다. 다행히 말간 얼굴로 웃어주니 망정이지 무슨 일이 있을까봐 내내 마음을 졸였다. 그래,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주니 넘어가는 것이었다. 겨우 18살이라는 나이에 아이를 가져 미혼모 보호소에 머물고 있었다. 샹콩이 제 집으로 오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서 보호자 격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이거라도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샹콩은 소년을 억지로 붙들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그 찬란하던 왕이보 아니 왕사윤이 이곳에 있을 거라곤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다. 소년의 진짜 이름을 아는 건 샹콩과 위룡 뿐이었다. 무대가 막을 내린 후 이보는 제 진짜 이름을 찾아 살고 있었다. 눈을 가리는 안경 너머 웃고 있어도 눈빛은 서글프다. 기억이 조각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아빠는 웃고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샹콩의 마음이 어떨지 이보는 잘 알았다.
아이가 생긴 걸 안 몇 주 뒤 활동은 강제로 끝이 났다. 마지막 밤 이후 위룡의 기억이 다시 조각나 병원에서 잠만 자고 있다고 들었다. 시한폭탄에 도화선이 존재하듯이, 위룡에게 제 존재는 도화선과 같았다. 꾸역꾸역 그 애가 좋아 머물고는 있으나 다시 기억이 조각난 것을 들었을 때 이보는 알았다. 트리거가 될 바에는 아무것도 모를 때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억지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싫었다. 모든 아픔은 저 혼자 감당하는 것이 맞았다.
시설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음인 전용 시설이었기에 이보는 죽은 듯 섞여들었다. 활동 내내 모은 돈은 제법 되었으나 아이가 태어난 후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배가 부를 때까지 저를 괴롭히는 입덧은 참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렀다. 손이 느린 소년은 오늘 아침 시설 사람들을 위한 제빵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항의로 더 이상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됐다. 아, 그래 그건 좀 마음이 아팠다.
“참는다고 그게 잊혀지진 않아.”
“그건 아는데 잘 안 되네, 형.”
말갛게 웃는 얼굴이 여전히 반짝거린다. 손이 느려서 수업 진도에 방해가 되니 빠져 달라는 게 그게 사람이 할 소린가. 차라리 끝나고 보충을 해주는 게 맞지. 열이 올라 당장 시설 원장에게 쳐들어가려는 샹콩을 뜯어말리느라 이보는 쩔쩔 맸다. 널 울리는 사람은 전부 내가 혼내줄 거야. 샹콩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한 놈만 걸리라는 서늘한 기세였다.
관계가 서툰 소년은 시설에서 늘 혼자였다. 나이가 어린 건 둘째치고, 적은 말수와 조용한 성격 덕에 늘 방에서 혼자 할 일을 했다. 그 애가 곁에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도화선이 되기 싫어 사라졌으면서 무얼 기대하는 거람. 이보는 샹콩에게 웃어주면서도 속이 쓰려 울고 싶은 걸 꾹꾹 눌렀다.
만삭이 되기 전 이보는 샹콩에게 연락도 없이 번호를 바꾸고 시설을 옮겼다. 연락이 온전히 끊긴 날 샹콩은 이보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고, 시기가 조금 늦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계절이 여전히 맴돌아서 참으로 끝이 쓰렸다. 우리의 소년기는 그랬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그리고 약 챙겨 먹어. 너 계절 바뀌면 아프잖아.”
샹콩이 협탁 위에 약이 담긴 봉투를 놓았다. 나는 그대로인데 형은 저만치 자라있다. 전화 한 통에 이 모든 걸 챙겨왔을 그에게 미안했다. 염치도 없지 이보는 눈알을 굴리며 할 말을 골랐다. 샹콩은 푸스스 웃으며 이보의 이마를 짚었다.
“거봐, 너 열 나. 오늘 약 먹고 일찍 자. 미안해하지 마.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
“응, 고마워. 연락 또 할게.”
짓눌린 눈가와 상처투성이 손등이 눈에 밟혔다. 몇 년이 흘러도 너는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소년이다. 샹콩은 이보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준 후 카페를 나왔다. 저리 말은 할 테지만 약은 안 챙겨 먹고 혼자 앓을 것이다. 샹콩은 쓰게 웃으며 길을 걸었다.
날이 좋아 집에 처박혀있기 지루했다. 위룡은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나와 모자만 눌러쓴 채 벤치에 누웠다. 오늘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한 네 시쯤 됐으려나. 눈을 살며시 뜨자 구름이 들어찬 하늘이 보인다. 시진이 선물로 준 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니 천국이 딱 여긴가 싶었다.
아저씨. 자그마한 머리통이 눈에 보인다. 초록 후드에 청바지를 입은 아이가 위룡의 배 위로 올라왔다. 코알라처럼 가슴팍에 딱 기대서는 눈을 감는다. 너 집에 안 가니. 위룡이 퉁명스럽게 말해도 그리 좋은지 달라 붙는다. 나 오늘 안 씻었어. 그래도 좋아요. 아이의 단호한 말에 위룡은 푸스스 웃었다. 마음대로 해라. 팔을 목 아래에 넣고 위룡은 눈을 감았다.
“아저씨가 준 꽃 엄마가 되게 좋아해요.”
“다행이네.”
“내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집에 꽃 못 놔두는데 아저씨가 준 꽃은 괜찮았어요.”
“나도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데. 똑같네.”
아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신기해요. 그게 그리도 좋은가 귀를 찌를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동물로 치면 돌고래 정도 되려나. 바람이 불어 엉망이 된 아이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주며 위룡은 웃었다.
“목마 태워줄까?”
“응, 탈래요.”
그래, 타자. 위룡이 몸을 일으키자 아이가 꾸물꾸물 어깨 위로 올라탔다. 위험한데, 괜찮아? 위룡이 물어도 모자를 꽉 잡은 채 발을 동동 구른다. 위룡이 아이의 몸을 꽉 잡고 일어났다. 엄마는 아파서 한 번도 태워준 적이 없어요. 아이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태워줄게. 위룡이 아이를 꽉 잡은 채 놀이터를 우다다 달렸다. 놀이터 가득 아이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아무것도 아닌 충분한 보통 날이었다.
댓글
센세가 와서 너무 행복해ㅠㅠ
나 센세 안올까봐 진짜 조마조마 했다ㅜㅜㅜㅜㅜㅜ
ㅠㅠㅠㅠㅠ하진짜 행복
센세ㅠㅠㅠㅠㅠㅠ
나 진짜 센세 안오면 찾으러 가려고 했어 ㅜㅜㅜ
내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안타깝고 슬픈데 반짝거리는 시진이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된다
헐 내센세 오셨다ㅠㅠㅠㅠ
센세 와줬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좋아 진짜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 우리 평생 함께해 센세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
센세 와줘서 고마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정말 센세 글 못볼수도 있단 생각에 우울했었는데 센세 고마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