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위룡이보, 반짝반짝 빛나는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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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 21:12
조회수: 291

내가 너무 오래 만지고 놀아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당신과의 시간들

- 성윤석, 시간들





 

   2.
 

   소파에 앉아 꽃다발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얼굴이 얄밉다. 샹콩은 제가 전화를 하고도 이게 맞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오늘 나오기로 했던 게스트가 급성 장염으로 부득이하게 일정을 빼는 바람에 공백이 생겼다. 장본인이 전화로 어찌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지 듣는 쪽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 덕에 공백을 메꿔줄 사람을 찾다가 결국 시간이 남아도는 위룡에게 연락을 했다. 
   피디는 기타를 든 채 유유히 부스 안으로 오는 그를 보고 샹콩을 흘겨보았다. 쟤가 왜 저기서 나오냐는 의문의 눈빛이었다. 샹콩은 피디에게 손을 모은 채 진심으로 양해를 구했다. 지인에게 전화를 다 돌렸으나 시간이 남아도는 게 쟤뿐이다, 오늘 사고치는 건 내가 책임질 테니 한 번만 넘어가달라. 위룡에게 단단히 열이 났던 피디는 왕년의 리더였던 샹콩의 절절한 책임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시작 전 자리에 유유히 착석하는 저 하얀 얼굴을 보며 피디는 오늘도 염주를 돌려야 될까, 생전 믿지도 않던 종교를 믿어야 하나 생각했다. 
   피디의 손가락과 함께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와 같이 유쾌하게 오프닝 멘트를 한 샹콩은 노래가 나갈 동안 기타를 꺼내는 위룡을 불렀다. 잠을 설친 건지 퉁퉁 부은 얼굴에 애써 얻어맞은 것처럼 뜨기도 힘든 눈을 감추려 쓴 안경이 안쓰럽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샹콩은 친절하게 말했다. 


   “어제 못 잤어?”
   “어, 기분 나쁜 꿈 꿨어.”
   “또 그 꿈 꿨구나.”
   “방송 중에 안 졸게 빌어줘.”
   “그건 네가 노력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거나 말거나 책상 위로 늘어진 위룡은 안경을 위로 대충 올려 눈을 비볐다. 꿈자리가 사나운 덕분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 어릴 때는 밤을 새도 멀쩡했는데 고새 몇 년 흘렀다고 죽을 맛이다. 오늘 보이는 라디오거든. 당장 일어나. 샹콩이 후드를 손으로 집어 올려도 꼼짝을 안 한다. 오늘 소고기 먹으러 가자. 귓가에 들린 그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는 짓이 아무리 탁구공 같아도 노래 하나는 참 잘 만들었다. 춤선도 좋아, 작곡도 잘해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노래를 못 한다는 거였다. 샹콩이나 그 애가 노래와 랩을 맡았기에 위룡은 프로듀싱 쪽을 맡았었다. 어쨌거나 무대는 올라야 했으니 그 애와 머리를 맞대고 몇 안 되는 랩 소절을 나눴다. 
   오늘 라이브가 있으니 기타를 챙겨오라고 이야기는 했으나 여전히 노래 실력은 꽝이라는 걸 기억한다. 하필 고음을 맡은 그 애가 없어 샹콩은 울며 겨자 먹기로 목을 쥐어짜 겨우 한 곡을 끝냈다. 이러다가 방송 끝나기 전에 목이 나갈 것 같아 피디에게 싸인을 보낸 후 청취자 신청곡을 틀었다. 


   “나 죽으라고 만든 노래냐.”
   “이보 형은 다 불렀어. 형 노래가 절망적인 거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위룡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이었다. 마이크를 쥐어주면 군말없이 부탁한 건 곧잘 했다. 아무리 벤 안에서 샹콩과 위룡이 투닥거려도 이어폰을 끼고는 제 할 일을 하는 무덤덤함도 있었다. 물과 기름처럼 안 섞이던 그 애가 사라지던 것도 참 그 애 답게 사라졌다. 그 애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위룡이 틈만 나면 이보를 찾자고 노래르 불러도 샹콩은 귀를 막았다. 말을 안 하는 성격이면 속이 얼마나 곪아있을지 타인은 모른다. 분명 정신없던 그 시기에 말을 안 해도 그 애는 지쳤을 거다. 그럼에도 샹콩이 굳이 그 애를 찾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 애는 어딜 가도 그 애답게 빛나고 있을 것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위룡은 튜닝을 했다. 형, 나 사람 찾아도 돼? 또 그 소리다. 이제는 아주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절대 안 된다고 샹콩이 손사래를 치니 마이크가 켜진 걸 확인하고는 멋대로 기타 연주를 한다. 샹콩이 하얗게 질려 막으려도 해도 하필 보이는 라디오라 무슨 기사가 터질 지도 모른다. 아, 한마디로 완전히 좆됐다. 


   “돌아와요, 우리 집에. 말도 없이 떠난 당신 언제든지 돌아와요. 나 여기 기다리고 있어요. 왜 떠난 건지 안 물을 게. 사실 묻고 싶어서 미칠 거 같은데, 네 마음이 궁금해서 돌아버릴 거 같은데, 그냥 너니까 안 물을 거야. 살아있다고 신호라고 보내줘. 나는 네 위성이라 언제든지 맴돌고 있어.”


   아하하하. 샹콩은 기계적으로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 미친 놈이 방송 끝나면 보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보는 눈이 많아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 아이돌로 활동할 때 벤 안에서 장난스레 부르던 노래가 기타를 만나니 제법 괜찮아서 샹콩은 그나마 짜증을 누를 수가 있었다. 그때는 가사 없이 허밍으로 부르던 노래였는데, 아주 그냥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구질구질하다 못해 헤어진 연인에 빙의해서 눈물이 난다는 청취자들의 문자가 가득이다. 


   “이제 여기서 콩DJ가 랩을 해주시면 됩니다.”


   괜찮다고 한 거 취소. 졸지에 노래를 듣다가 봉변을 당한 샹콩이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더 길어지면 방송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샹콩은 급하게 멘트를 했다. 오늘 완성곡은 홈페이지에 올리겠습니다. 임기응변이 제법이다. 밖에서 염주를 돌리던 피디가 겨우 숨을 돌렸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샹콩이 헤드폰을 마이크 위에 놓고 부스를 나왔다. 송위룡 저 새끼는 탁구공이 아니라 거대한 농구공이다. 소고기 사준다고 한 제 입이 방정이었다. 코너 끝나자마자 보낼 걸 후회를 하다가 차없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갈 것이 뻔해서 또 신경이 쓰인다. 소파에 앉아, 라디오 시작 전 샹콩이 준 꽃다발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팔자 한 번 좋네. 샹콩은 한숨을 쉬며 옆에 앉았다. 


   “향 좋다. 이 꽃 가져가도 돼?”
   “선물 받은 건데 나는 별로 꽃을 안 좋아해서. 위룡이 너, 꽃가루 알레르기 있잖아.”
   “괜찮아. 안 가질 거면 내가 가져갈게. 고마워, 형.”


   꽃다발에 코를 파묻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는 스튜디오가 떠나가라 재채기를 한다. 아서라, 말만 안 하면 참 잘생긴 얼굴이다. 이런 놈이 능력을 썩히고 있으니 샹콩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제가 원해서 저렇게 머물고 있는 걸 굳이 꺼낼 생각도 없었다. 가끔 라디오에 불러주면 우다다 달려오는 게 그리 좋다고만 한다. 속이 없는 건지 그냥 해맑은 건지. 아마 전자 쪽에 가까울 것이다. 네가 좋으면 된 거지, 뭐. 샹콩은 어깨를 으쓱이고 위룡의 어깨에 제 손을 둘렀다. 
   약속은 무를 수 없으니 샹콩은 방송국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고깃집에 들어섰다. 나 진짜 다 시킨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다시 한번 확인을 받은 위룡이 메뉴판을 받자마자 이것저것을 시킨다. 하는 짓은 꼴통 같아도 아주 이기적인 놈은 아니라서, 메뉴를 고르면서도 샹콩이 좋아하는 부위를 콕 집어 많이 시켰다. 이걸 애증이라고 해야할까. 이럴 때는 기특한데 다른 때에는 때리고 싶다. 널 몇 년째 보는 내가 대단한 거지. 턱을 괸 채 샹콩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입에 넣었다. 
   날이 추워진 탓인지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샹콩의 그릇 위에 올린 위룡은 기분이 좋은지 퉁퉁 부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다. 형 완전 사랑해. 뜬금없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는 다시 고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너는 여전히 변함없는 너라서 이상한 부분에서 위로를 받는다. 위룡이 준 고기를 크게 싸서 입에 넣은 샹콩이 콩나물을 휘저었다. 


   “이제 뭐 할 거냐.”
   “집 가야지. 할 거 많아. 게임도 하고, 노래 만들고, 영화 봐야 돼.”
   “대본은 좀 들어오고?”
   “어제도 하나 받기는 했어. 붕붕채널 편성 받았던데 형도 기억하지. 우리 첫 음방 데뷔 무대했던 그 피디님 신작하신다더라. 대본은 받았는데 안 한다고 했어.”
   “이유 물어봐도 돼?”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하기 싫어.”


   위룡이라면 거절한 이유가 납득간다. 어차피 저 생활이 좋다고 하는 애한테 바람 넣어봤자 말짱도루묵이다. 그리 찬란하게 빛났으니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나도 너처럼 살아볼 걸 그랬나. 제가 좋아하는 걸 택했으나 결국 제자리다. 샹콩은 쓰게 웃으며 타기 직전인 고기를 뒤집었다. 
   밥까지 챙겨 먹이고 집 근처 공원에 내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쯤 되니 제가 위룡을 키우는 기분이었다. 오늘 일찍 들어가. 백미러에 보이는 하얀 얼굴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아무리 말해도 바로 안 들어가고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들어갈 것이다. 스캔들만 내지 마라. 속으로 중얼거리며 샹콩은 시트에 몸을 묻었다. 





   =





   패스한 공을 받은 손이 곧잘 허공을 향한다. 골대를 향해 던진 공이 깔끔하게 들어간다. 3점이야. 손을 붕붕 흔들며 소년이 달려왔다. 한달음에 달려온 소년을 안은 위룡이 환하게 웃었다. 봐봐, 내가 말했지. 형은 할 수 있다니까? 응, 네 말대로 됐어. 역시 너야. 제 머리를 북북 쓸어주고 다시 농구 코트로 달려간다. 
   날이 더워 코트가 달궈져도 상관없다. 점심 내기가 걸린 소속사 직원과 키즈 리턴의 대결은 제법 치열했다. 쉽게 이길 것이란 샹콩의 각오와 달리 경기는 점점 길어졌다. 오늘 점심 먹기도 전에 지치겠다는 팀장의 농담 섞인 말에 공을 쥐고 있던 위룡이 농구 코트 끝을 서성이는 이보를 보았다. 


   “위룡아, 공 이쪽으로 던져줘.”


   앞을 마크하고 있는 인턴 형을 넘겨 위룡이 이보에게 패스했다. 공을 낚아챈 이보가 코트 끝에서 세차게 그것을 던졌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공을 보던 찰나 골대를 통과한 그것이 지면 위로 통통 튀어 올랐다. 과장의 호각 소리와 함께 승리를 알리는 버저비터였다. 
   1위 하신 소감 말씀해주시겠어요? MC가 내민 마이크를 받은 샹콩이 관객석을 향해 외쳤다. 항상 키즈 리턴을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 감사합니다. 소속사 식구들, 키즈 리턴 부모님 모두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인 샹콩이 앵콜 노래가 나오자 마이크를 이보에게 넘겼다. 표정 변화가 없어 무심한 얼굴이었으나 눈빛만큼은 솔직했다. 꽃다발을 들고 한껏 신이 난 위룡은 덜덜 떨리는 이보의 손에 깍지를 꼈다. 편해진 얼굴로 이보가 노래를 불렀다. 동료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던 샹콩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눈물 범벅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몰골이 웃겼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행복했다. 
   점심도 잘 먹었지 공중파 1위까지 달성하니 아주 축제였다. 회식을 하자는 스탭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위룡은 이보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분위기에 취한 샹콩은 다녀 오라며 등을 떠민 덕에 쉽게 나올 수 있었다. 성큼 성큼 길을 앞서가는 마른 등을 보며 위룡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뚝 걸음을 멈춘 이보를 못 보고 그대로 박을 뻔한 위룡은 저를 보는 하얀 얼굴을 보고 사르르 웃는다.


   “우리 도망갈까?”


   자못 심각한 얼굴이다. 위룡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묻고 싶은 게 잔뜩이었지만 고르고 골라 위룡은 대답했다. 


   “어디로?”
   “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너랑 나 둘만 있는 거야.”
   “샹콩 형 놔두고 우리 둘만?”
   “형도 같이 가야지.”


    위룡의 손을 잡아 깍지를 낀다. 무더운 공기 속에 눅눅한 여름내가 났다. 깍지낀 손을 이리저리 팔랑이던 이보가 위룡을 이끌어 거리를 달렸다. 귀를 스치는 여름 바람에 앞머리가 땀에 절어도 무엇이든 좋았다. 나는 당신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놀이터에서 나는 소란에 위룡의 걸음이 멈췄다. 또래 아이들이 편을 먹고 한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너 아빠 없으면서 거짓말하지 마. 저건 뭔 소리람. 요즘 애들도 참 별 소리를 다 한다, 싶었다. 아이들의 세계에 발을 딛을 생각은 없어 고이 집으로 가려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회색 후드를 입은 조그만 머리통이 익숙해서였다. 


   “아빠 없는 게 뭐. 너희 부모님은 평생 같이 계실 줄 아냐? 오늘 한 얘기 그대로 가서 전해드려. 엄청 혼날 걸.”
   “시, 시끄러워.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고 했어.”
   “그래, 놀지마. 언제 같이 놀아달라고 했어? 같이 놀자고 온 건 너네들이거든. 할 말 다 했으면 꺼져.”


   오, 세다. 이제는 방청객 모드로 근처 그네에 앉아 위룡은 아이들을 보았다. 기세등등한 아이의 외침에 씩씩거리던 대장격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네가 뭔데 나한테 꺼지라고 해. 그럼 사라지라고 해줄까? 세상에서 소멸하렴 뭐 이렇게? 와, 말도 잘해. 그럼 싸우자 덤벼. 조그만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시진이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누가 누굴 괴롭히는 건지. 너랑 안 놀 거야.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도망쳤다. 가정교육 대단해. 운동화 끝으로 모래를 툭툭 차던 시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네에 앉아 저를 보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위룡은 별말 없이 시진이 먹고 싶어 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아저씨는 뭐 안 물어봐요? 초코바를 고른 시진이 입가에 초코를 잔뜩 묻히고 물었다. 손에 진득한 걸 묻히기 싫어 쭈쭈바를 입에 문 위룡이 말했다. 


   “좋은 일도 아닌데 물어보면 또 상처 주는 거잖아.”
   “보기보다 생각 깊으시네요.”
   “그거 칭찬이니?”
   “음, 제 기준에서는요.”


   아이가 눈을 반달로 접으며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말이 없다. 겉으로 강한 척해도 속은 아이다. 위룡은 그네에서 내려와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물티슈로 아이의 손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웃었다. 


   “시진아, 아무도 없어. 마음껏 울어도 돼. 나도 멀리 가 있을까?”
   “아니요, 같이 있어요.”


   아이의 무릎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말을 듣고 멀쩡한 아이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혼자 서러웠을까. 위룡은 아이에게 조심스레 허락을 구한 후 품에 안았다. 반쯤 남은 아이스크림을 손에 꾹 쥔 채 아이는 위룡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울었다. 소리 내서 울기라도 하지 마음 아프게 소리를 죽여 꾹꾹 운다. 울 줄 아는 것도 용기였으니 위룡은 그저 제 감정을 조용히 털어놓은 아이가 대견했다. 
   아직 울음 끝이 남았으나 울고 나니 후련한지 아이는 개운하게 웃었다. 눈물 젖은 얼굴로 집에 가기 싫다며 근처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시원하게 씻고서야 아이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해가 조금 넘어가기 시작해 같이 걷는 길 뒤로 그림자가 길게 진다.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위룡의 손을 잡았다. 위룡은 조금 놀랐지만 티내지 않았다. 


   “그 애 말이 맞아요. 나는 아빠가 없어요. 아빠, 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음인이시거든요. 정확하게는 엄마죠. 나를 혼자 낳아서 키워주셨어요.”
   “멋진 사람이네. 밝게 자란 시진이 너는 더 멋지구.”
   “아저씨는 아무것도 안 물어봐서 좋아요.”


   시진이 배시시 웃으며 깍지낀 손에 제 고개를 기댔다. 따끈한 온도가 전해져서 위룡은 머리 끝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마냥 밝은 아이라서 위룡은 그대로 놔두었다.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한 손에는 시진의 손을 잡고 걷는 오후가 나른했다. 거렁뱅이처럼 공원에 늘어져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속으로 합리화했다. 


   “아이들이 또 뭐라 그러면 맞서 싸워. 힘껏 두들겨 패, 다신 그런 소리 못하게. 그래도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혼내줄게.”
   “아저씨가 내 아빠면 재밌을 거 같은데.”
   “내가 너 아빠였으면 속 터질 걸. 워낙 철이 없어서.”
   “그래도 좋아요. 오늘 고마워요.”


   아이가 꼬물꼬물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어 손에 쥐어준다. 사탕을 입에 달고 다니더니 제 보물처럼 여기는 걸 나눠준다. 기특해라. 위룡은 줄 게 없어 머뭇거리다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아이에게 주었다. 


   “영웅에게 주는 선물. 오늘 멋졌어.”


   환하게 핀 꽃을 보던 아이가 사르르 웃었다. 반달로 예쁘게 접힌 눈가가 참으로 싱그럽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오로지 시진 자신으로만 봐주는 것 같아 아이는 그저 행복했다. 아빠 이후로 이런 어른은 처음이었다. 
   저를 괴롭히는 세상에 맞서 싸우라는 것도, 영웅에게 주는 꽃다발도 시진에게는 전부 선물이었다. 
   아저씨 휴대폰 줘봐요. 아이가 조그만 손을 내밀자 위룡은 잠금을 풀어 휴대폰을 올렸다. 꼬물꼬물 무언가를 친 아이가 통화버튼을 눌러,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제 폰을 꺼낸다. 곰돌이 모양의 키즈폰이라 귀여워서 위룡은 웃음을 꾹꾹 눌렀다. 


   “내 전화번호에요. 아빠가 아무한테나 번호 알려주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특별하게 알려줄게요.”
   “멋진 선물이네. 잘 받을게.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해.”
   “응, 전화할게요.”


   돌고 돌아 다시 공원 입구였다. 놀이터를 씁쓸한 눈빛으로 보던 아이를 위룡은 세게 안았다. 따끈한 볼에 제 볼을 부비며 위룡은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너는 잘했어. 그러니까 주눅 안 들어도 돼. 아이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지면 위로 아이를 내려주자 환한 얼굴로 꽃다발을 안고 우다다 달려간다. 그 조그만 뒷모습이 참으로 거대해 보였다. 아저씨 안녕. 내일 또 봐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멀어진다. 
   곧장 집으로 달려온 아이는 집에서 제일 깨끗하고 예쁜 유리컵을 꺼내어 꽃다발을 풀어 꽃을 꽂았다.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둔 아이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팔랑였다. 아침에 읽던 책을 마저 꺼내어 읽었다. 열어둔 창으로 늦여름 바람이 불어와 앞머리를 휘젓는다. 멀리서 차가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시진은 현관으로 우다다 달려가 문을 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를 만날 시간이었다. 
   장을 본 건지 식재료를 한아름 품에 안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품에 안긴 짐을 보고 매달리려던 시진이 물러섰다. 종알종알 있었던 일을 쏟아내던 아이가 식재료를 내려둔 것을 보고는 손목을 잡아 협탁 앞으로 이끌었다. 엄마, 봐봐. 오늘 선물 받았어. 자랑스럽게 소리치며 꽃을 보여준다. 


   “예쁘네. 시진이 너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데 괜찮아? 재채기 안 했어?”
   “응, 해도 괜찮아. 영웅에게 주는 선물이거든.”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환하게 웃는 얼굴이 반짝인다. 피곤함에도 아이의 웃는 얼굴이 좋아 그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달큰한 우유내 같은 것이 나서 마음이 놓였다. 

   따스함을 담은 오후의 햇살이 아이의 작은 등으로 환하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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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15c41] - 2020/11/12 21:20
제목만 봐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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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9323] - 2020/11/12 21:26
센세가 왔으니 나 오늘 맘 놓고 잘수 있을듯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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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809f3] - 2020/11/12 21:58
센세때문에 어두웠던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는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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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56db4] - 2020/11/26 02:40
센세.... 나 운다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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