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이룬네로 싸늘한집안 삼나더

https://sngall.com/articles/284
2020/11/12 16:28
조회수: 143

3. 서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모터 스포츠는 그중에서도 유독 위험성이 높은 스포츠였다. 구장남이자 현 차남인 서오가 오토바이를 즐기게 된것에는 아마 말할 수 없던 고민을 엔진소리에 뭍혀 속도에 날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였을 것이였어.
매 랩타임마다 자신과의 싸움이였고, 코너링을 위해 체중을 옮기고 지면가 가까워지는 그 아찔한 순간은 언제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어.
그리고 현재 서오는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중이였지.

평소에 컨디션이 안좋았으면 안좋았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적은 없어서 다들 의아해하던중에 서오가 먼저 오늘은 여기까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더이상은 집중이 되지않는다고 말을 했어. 이런 적은 처음이여서 다들 걱정하는 와중에, 터덜터덜 개러지로 돌아가 오토바이를 주차해놓고
의자에 털썩 몸을 던진 서오는 한참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어.

저위가 집에 오기전까지 장남은 서오였어. 가족들중 가장 섬세하게 구성원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였지. 그러다가 큰형이 오고 장남의 역할을 바톤터치하면서 어느정도 후련함이 생긴 것은 사실이였어.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굉장히 만족스러웠지.
그렇다가 가족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였어. 
세한이랑 아루는 유독 서오의 손을 많이 탄 동생이였어. 연소랑 연한이가 일찍이 자기 삶을 찾아 떠나고, 서봉이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았으니까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지.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겨주고, 작은 유치원 가방을 꼬박꼬박 확인하고, 등하원 시간을 맞춰보고 했던 것은 전부 자신였어.
그랬던 아이들이 어느순간 벽을 쳤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였어.

어떻게 해야하지? 내가 잘못했나봐.

병실에서 본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았어.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고 거듭했는데 어느순간 세한이가 뭘하는지, 아루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예전만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졌어.
서킷에서 보내는 시간이 좀 더 늘었고, 혼자 느긋하게 술을 마시는 시간도 생겼고, 훈련이 끝난후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도 늘어났고,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를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어.
그런 시간들 사이에 아루랑 세한이는 없었어.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 갑자기 혼자가 되었고, 둘이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동생들이 뒤늦게야 눈에 밟혔어.
사람의 마음은 초시계로 나오는 기록도 아니고, 고장이 난다고 부품을 이것저것 갈아 끼울 수도 없는 것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울 것같은 얼굴로 캡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의자에 점점 파묻히는 서오를 본 코치가 말을 걸었어.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동생들을 너무 혼자 둔 것 같아요,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전후사정을 다 잘라먹은 말이였지만, 서오를 오랫동안 봐온 코치는 서오의 가족도 서오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였어.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 일이나 가족에 관한 일을 물어본다고 답을 해줄 사람이 아닌것도 알았어.
코치는 여상스레 답했어.

-우리가 프랙티스를 하고 퀄리파잉을 하면서 서킷을 외우고, 브레이킹 포인트를 잡잖니? 그건 모든 선수가 다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나가지.
그렇지만 최고의 루트는 같아. 본능적으로 어떤 것이 제일 좋은지 알게되는거야. 가족관계도 그렇단다.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나가지만 결국 어떠한 관계의 최고점은 같단다. 몸에 배인 습관은 시간이 지나도 드러난단다. 가족간의 애정도 그러해. 코너에 진입해서 브레이크를 누르는 그 순간, 가로수가 될 수도 있고 연석이 될 수도 있고 관중석이 될 수도 있고. 다들 사소하고 자기만의 방식이지. 관계를 돌리는 열쇠도 같단다.작은 계기,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이 빠져나갈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란다.


서오는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어. 평소에 단 것을 먹지는 않지만 오늘은 유달리 입이 써서 단 것이 먹고싶었어.
기분이 내키는대로 마트에 들려 과자를 담고 집에 돌아와서 부엌으로 향했어.
불이 켜진 방 하나와 불이 꺼진 방 하나를 확인하고 코코아를 타서 2층으로 향했어.
가만히 문을 열고 세한이 방을 한 번, 잠이 든 아루 방을 한번. 불이 꺼진 아루 방을 둘러보고 나오려던 서오는 뭔가 아루의 숨소리가 안 좋은 것을 알았어. 조심스레 다가가 이마를 짚어보자 이마가 뜨거웠어. 혀를 찬 서오는 세한이에게 말을 하려고 세한이 방에 갔다가 이내 둘이 붙어다니고, 주로 아루방에 세한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세한이 방에 갔어. 책상에 앉아있는 세한이가 서오가 다가가자 무슨일이 있냐며 물었어.
마주친 눈동자에 열기운이 있는 것을 바로 알아챈 서오는

-너 열난다. 아루랑 같이 감기구나.
-아루형 열나?
-같이 갈 생각 하지 말고, 너도 이만 정리하고 누워야지 세한아.

편한 실내복 차림으로 책상앞에 앉은 세한이를 번쩍 안아 침대에 눕힌 서오한테 어어, 하며 안긴 세한이는 익숙한 품에 침대로 옮겨졌어.

-약 가져올테니까, 누워있어.

세한이는 서오형의 저 눈빛을 알았어. 오늘 훈련이어서 피곤할텐데 그런 기색 하나없이 자신의 얼굴만 봐도 아픈지 아닌지 알아채는 형은 어릴때 자신을 돌보던 형과 똑같았어. 괜시리 드는 옛날 생각에 이불을 끌어올릴때쯤 쟁반에 약과 물, 쿨시트를 챙겨온 서오가 침대 머리맡에 앉았어.
애기때랑 똑같이 상체를 일으켜 약을 올려주고 입에 물컵을 대주는 형의 모습은 변한게 없었어.

서오도 가만히 제가 하는대로 따르는 세한이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어. 여전히 내 손을 타는 막내 그대로인데. 

-물 남기지 말고 다 마시고, 아-해.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래봤자 내 눈에는 여전히 막내야. 쓴 것 싫어하잖아.

벌린 입에 비타민을 까서 넣어준 서오는 세한이의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이마에 쿨시트를 붙여주었어.

-아루한테 다녀올게. 감기약 먹었으니까 금방 잠올거야.

쟁반을 챙겨 방을 나가는 서오의 뒷모습을 세한이가 빤히 바라보았어. 아마 아루형은 아프면 알약을 잘 못삼키니까 또 가루로 만들어서 품에 안고
한숟갈 한숟갈 먹여줄 형이였어. 

서오가 아루방으로 가자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어. 같은 감기여도 몸이 약한 아루는 열도 더 쉽게 오르고 어리광도 잘부렸어.
잠과 열에 취한 아루를 품에 안고 숟가락에 물에 갠 약을 한숟갈씩 떠먹이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쓴 약은 싫은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아루는 어릴때와 다를바가 없었어.
아루 역시 익숙한 품, 익숙한 체향이 다가오자 아픈 기운에 칭얼칭얼거렸어. 
형아, 나 아파 나 더워 하며 웅얼거리면 이것만 먹자, 한입만 먹자, 그래그래 우리 망고 아파
하는 낮은 목소리가 자신을 달래주었어.

세한이는 씹어먹는 비타민이고 아루는 발포비타민을 물에 타서 먹여준 서오는 아루의 이마에도 쿨시트를 붙여주고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새옷을 입혀주었어. 세한이는 부쩍 컸지만 아루는 여전히 형제 중에서 작았고 말랐어서 아파서 기력없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루기가 쉬웠어.

익숙하게 칭얼거리는 아루를 보다가, 어차피 세한이도 곁에서 봐줘야하는게 생각난 서오는 세한이를 안고 아루 옆에 뉘였어.
요사이 밤귀가 밝아진 세한이는 감기약에 취해 잠이 어중간하게 깼어.

-아루 옆에서 자자, 망고야 쉬이

익숙하게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몸을 맡겨버린 세한이는 아루 옆에 나란히 눕게되었어.
무드등을 제일 낮은 단계로 키고 서오는 밤새 아픈 동생 둘을 지켜보았어.
나름대로 훌쩍 커버린 동생들이었지만 변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조금 편안해졌어.

쿨시트를 갈아주고,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서오는 죽을 끓이러 갔어.
세한이는 야채참치죽, 아루는 계란죽. 세한이는 참기름을, 아루는 김가루를 얹어먹는 것을 좋아했어.
재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새벽같이 나가서 장을 봐온 서오는 죽과 약을 챙겨서 다시 아루 방안으로 들어갔어.

다시 열을 재니까 많이 내려있었어. 다행이 초기감기였던 모양이야.

-망고들아 일어나서 죽먹고 약먹자.

몽롱한 정신의 동생들을 살살 달래서 깨우고 등 뒤에 베개를 받쳐준 서오는 침대위에 상을 펴고 한숟갈씩 호호 불어 입에 넣어주었어.


미열로 몽롱한 정신에도 둘은 알 수 있었어. 형이 뭍히고 온 바깥냄새, 자신들을 어르고 달래는 차분한 목소리, 아플때만 끓여줬던 죽의 냄새과 살짝싱거운 간. 아마도 형은 밤을 꼴딱 샜을게 뻔했어. 서오형은 늘 그랬거든. 형이 중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바쁜 엄마아빠를 대신해서 병간호를 해줬지. 유독 과묵한 서오형이 자신들이 아프면 아픈대로 다 받아줘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었어.

-형은 그대로네.

죽그릇에 고개를 박고 들어간 채소를 확인한 세한이가 서오를 쳐다보았어.
유독 당근을 싫어하던 자기는 이제는 당근을 먹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죽에는 당근이 없었고, 안에 들어간 채소를 아주 곱게 다져져 있었어.

-너네도 그대로고 나도 그대로야. 달라진 거라곤 내 오토바이랑 너네 키겠지. 아예 안변했다고는 말은 못하겠지만 저위형이 와도 난 첫째같고 너네는 여전히 막내 둘이야. 

서오는 세한이가 말한 의미를 알아챘어. 형이 변하고 우리한테 신경을 덜 쓸줄 알았는데 그대로네. 
서오는 그제서야 세한이랑 아루가 부족하다고 느꼈던게 뭐였는지 제대로 눈치챘어. 아직 어린 아이들이였고,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 애들이였는데.
너무 빨리 자라야했던 동생들은 아직도 어린 면이 남아있었어. 그리고 그 점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형, 나

-잘 먹고 나면 코코아 타줄게.

뒤늦게 죽그릇에서 고개를 든 아루가 서오를 쳐다보았어. 서오는 그런 아루를 보고 씩 웃었어.

-응, 나 마쉬멜로우도 넣어줄거지?
-마쉬멜로우는 한 개만이야.


다 먹은 죽그릇을 챙겨나가는 서오가 아루와 세한이 눈에는 더 작아보였어.
우리 형, 큰 형, 서오 형아. 형은 언제나 같았고 우리도 같았다는 걸.
여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데 그저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졌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이보등륜 이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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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e8c1d] - 2020/11/12 16:45
ㅠㅠㅠㅠㅠㅠ존좋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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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1fcfb] - 2020/11/12 16:55
센세 이삿짐 푸는구나 ㅠㅠ 사랑해 ㅅㅂ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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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ac63c] - 2020/11/12 16:55
센세 이사짐이라니 사랑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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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c1f9] - 2020/11/12 17:06
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도 오셨다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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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e62e4] - 2020/11/12 17:09
이삿짐은 사랑입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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