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이룬네로 싸늘한집안 어나더
1. 저위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막내동생 둘을 보며 누구보다 가장 속상했던 사람은 저위였어.
가장 나중에 들어와서 누구보다 외로움을 알면서 결국 외로움을 줘버리고 만 자신이 너무 미웠어.
자기가 외로움에서 벗어난게 아니라 그걸 동생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만 행복해진 기분이였지.
아루가 수술을 한 그날부터 저위는 매일매일 아루의 병실에 들렀어.
창백한 얼굴로 자고 있는 아루와 그 곁을 지키며 공부하다가 잠이 들어버린 부쩍 큰 막내를 병실 문가에 기대서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어.
뒤늦게 자신의 삶을 찾은 저위 아직도 감정에 서툴렀어.
다양한 역할을 맡아가며 연기를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얼마만큼 다가가야지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였어.
그런 저위가 선뜻 입을 열기가 어려워 몇날며칠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간다는걸 두 동생들도 알고있었어.
오랜 시간을 홀로 버티다가 뒤늦게서야 가족이 된 큰형을 자신들도 모르진 않았어.
이제와 돌이켜보면 얼마나 나름대로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폭풍같은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을까를 이제서야 어렴풋이 느낀거야.
그렇게 여느날과 같이 저위는 새벽에 아루의 병실에 도착했어.
문가에 기대서서 바라만 보던 날과는 다르게 아루의 침대 가가이로 다가간 저위는 머뭇머뭇거리다가 아루의 손을 잡았어.
잠을 자고있지 않던 아루는 묘하게 섞인 알콜냄새와 유옥 체온이 높은 큰형의 손을 알았어.
아루를 돌보면서 잠귀가 밝아진 세한이도 깨있었어.
-연기를 하다보면 그런 생각을 해.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한 번 체험해 본다는 그런 기분.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자리가 있다는게 처음에는 얼마나 어색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 낯선 기분이 나의 것이고 좋다는 것을 알기까지가 한참의 시간이 걸렸어. 시간이 꽤 흐르고서야 이제서는 나의 삶을 산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어.
근데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였는지 이번에 알게 된 것 같아.
그 어느 세상에도 혼자만 있는 자신의 삶은 없다는걸. 나는....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는건지 저위는 나직한 목소리로 마른 아루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했어.
큰형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바로 느끼는 아루와, 점점 젖어들어가면서 작아지는 목소리를 세한이도 알았어.
-나는 너무 미안해서, 결국 내 외로움을 너희한테 떠넘기고 나는 행복해진 것 같아서...누구보다 외로웠으면서 그걸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사실 후회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나는 후회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근데 이제는 그게 너무 잘 느껴져서 속상해.
-아루랑 세한이랑 혼자 외로웠을 시간을 나는 어떻게 더 채워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근데 아루랑 세한아, 나는 이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너네 둘이였어.
그래서 더 미안하고...형이 잘못했어..그러니까 그런 눈을 하지마...
적막이 가라앉은 병실 안에서 저위의 고해성사같은 속마음이 내려앉았어.
저위형은 원래 이렇게 취할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였고, 가족중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였어.
아루랑 세한이는 각각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낯선 표정으로, 안기는 자신들을 얼러주는 그 품은 너무 익숙하고 따뜻해서 더 떨어지기 싫었어.
문고리가 닿지 않는 자신들을 위해 늘 반뼘정도의 틈이 열려있는 방에 들어가면, 큰 형은 무얼 하고 있던지 자신들을 안아주었어.
생각해보면 지금 자신들이 성인이 된 시점에도 저위의 방문은 늘 반뼘이 열려있다는 것을.
차마 아루의 손을 꼭 잡지도 못하고 아루의 손에 걸친 저위의 손을 아루가 깍지껴서 꽉 잡았어.
그걸 기점으로 저위는 결국 아루의 침대에 얼굴을 묻은채 울고말았어.
바닥에 떨어져 도시의 불빛이 어룽어룽 비치는 저위의 눈물을, 간이침대에 누운 세한이가 모른척 눈을 감고 등을 돌렸어.
결국 병실에서 잠이 들어버려 이른 새벽에 깬 저위는 퉁퉁 부어 잘 떠지지 않는 눈과 어질어질한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어나려 했어.
그러다가 자신의 손에 깍지가 껴진 하얗고 마른 손을 보고 다시 울컥했어.
잠에서 깨지않게 손을 살살 풀어내고 아루의 머리를 한번, 웅크려 자고 있는 세한이의 담요를 끌어올려준 채로 병실 문을 나서려던 저위는
-나 퇴원하면 망고바 사줘.
-나는 초코.
등뒤로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고 또 울지 않기위해 애를 써야 했어.
2. 연한
아루가 수술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연한이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내는 천재적인 작가면 뭐해, 그동안 동생들 마음 하나 못봐준 멍청한 누나인데.
결국 편집자에게 조금만 쉬겠다며 2주일정도의 정식휴가를 받아낸 연한이는 그새 마음고생을 해 눈에 띄게 마른 모습으로
서점을 가려고 집을 나섰어.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되지만 그냥 더이상 집에 앉아있기 싫었어, 그것도 특히 자신의 방에는.
결국 집을 나서서 양손가득 종이봉투에 책을 사가지고 온 연한이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어.
세한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때 소파위에 몸을 말고 앉아 책을 읽는 누나를 보고 잠시 놀랐어. 말없이 스윽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녀왔어? 냉장고안에 초코케이크랑 피나콜라타 케이크있어. 아루랑 나눠먹어.
책에서 눈도 안떼고 말하는 작은 누나의 말에 응, 하고 얼떨결에 대답을 했어.
이틀동안 거실에서 책을 읽던 연한이는 다음날은 저위방, 그 다음날은 서오방, 그 다음날은 서봉이방, 그 다음날은 연소방 그 다음에는 아루방
그 다음에는 세한이방에 가서 책을 읽었어.
아루 침대 끝에 걸터앉아 들고 온 자신의 쿠션을 조물조물 안고 책을 읽는 누나를 아루는 한참을 바라보았어.
부드럽게 풀어지는 얼굴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도, 크게 소리내서 웃는 누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어.
그건 세한이도 마찬가지였어.
연한이 누나는 감정표현이 딱히 굴곡이 없는 사람이였어. 연소누나랑 있을때는 틱틱거리는 편이었고 서오형이랑 서봉이형이랑도
험하다면 험한말을 주고받았지만 딱히 희로애락이 크게 드러나는 사람은 아니였고, 방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였지.
그런 누나의 다양한 표정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크게 신경을 안쓰다가도 흘깃흘깃 누나를 보게 되었어.
물론 누나는 그런 동생들의 시선따위 개의치않고 책을 읽었지만.
그렇게 일주일은 온전히 책을 읽은 연한이는 곧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
그리고 방에 틀어박히는 대신 식탁, 소파, 거실바닥, 아루책상, 세한이 책상, 아루 침대등 온 장소를 굴러다니며 글을 쓰는 연한이는
괴로워보였어. 한껏 예민해진 얼굴로 노트북을 두들기는 누나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본 세한이랑 아루는 신기했어.
그러다가 얼마 안가서 왜 연한이가 글을 쓸때 방안에 들어가는지 알것 같았어.
미친듯이 씹어놓은 손톱은 너덜너덜했고, 가끔은 죽은것처럼 노트북을 껴안은채로 몸을 말고있기도 했고
자판을 두들기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어.
그제서야 아루랑 세한이는 왜 누나가 방 밖에 나와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깨달았어.
저위형처럼 속마음을 직접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기를 선택한 누나였던거지.
작가란 직업이 어떠한 직업인지 몰라도, 2주간의 연한이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어.
더없이 귀찮아보이기도 했고,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주변 공기가 갈날같기도 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아주 날 것의 감정이였어.
그건 아마도 누나가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한 모습이였을거지.
결국 누나는 동생들을 위해 어떻게 보면 가장 자신다움을 보여주고 싶지 않던 한 구석을 보여주기로 택한거였어.
일주일간 거의 매일매일을 밤을 샌 연한이는 결국 단편소설 한 권을 써냈어.
책이 발간되고 두 권의 책을 예쁜 리본으로 묶은 연한이는 한 권은 세한이 책상위에, 한권은 아루의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어.
누나가 가족에게 신간을 선물하는 일이 없었던지라 의아한 얼굴을 하던 세한이랑 아루는
곱게 포장된 리본을 풀어내리고 빳빳한 첫 표지를 넘겼어. 물속에 잠긴채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려진 표지를 한참 바라보았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하얀 봉투였어.
세한이에게
아루에게
자필로 써진 편지였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까.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업인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또 나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는 글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
아루 수술하던 그 날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어디서부터 풀어야할까?
책을 써서 내면 작가인 나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의견들이 보이곤 해. 내가 보지 못했던 인물의 다른 면을 발견한 사람들이지.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너희들을 너무 내 시각에서만 바라보았던거겠지. 그걸 뒤늦게야 깨달은 나를 너희가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너희를 덜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았던건 아니냐. 그것만큼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그렇지만 감정을 전달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부분에서 내가 많이 서툴렀던거겠지. 이제와서 뭘 더 어떻게 해보려는 것은 너희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그렇지만 내가 다른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어. 이번에는 누나가 다른 방법으로 노력해볼게.
우리 가족은, 세한이는 아루는, 나 왕연한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고 가장 의지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야.
하얀 편지지에 담담하게 쓰인 말들은 간결하게 연한이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였어.
그동안 연한이가 보여줬던 행동은, 자신을 더 드러내고 새로운 시점을 알아가는 과정이였던거야.
세한이랑 아루는 누나가 선물해준 책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어.
'이 책은 늦어버린 사람들을 기다려준 말없는 이들을 위해 바칩니다.'
연한이의 신간은 대박이 났어. 감동적인 이야기였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제의를 받으며
다시한번 연한이가 스타작가, 부모님의 후광으로 큰게 아닌 본인 실력으로 오른 작가라는 사실을 공고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
주인공인 홀로 태어난 아이가 모든 감정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가서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얘기였어.
주인공이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고나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감정을 여러사람에게 배워가는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이야기였지.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그런 주인공이 감정을 배우고
하나의 감정을 여러갈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때까지 곁을 지켜준 주인공의 친구들도 큰 인상을 남겼어.
아루랑 세한이는 누나의 책을 읽으며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주인공의 친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어.
누나의 새 책은 누나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였고, 그 동안 누나가 생각하고 느낀 그동안의 미안했던 점을 써놓은 책이였거든.
책과 편지를 읽은 아루랑 세한이는 각자 방안에서 생각을 잠겼어.
저위형이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간, 유독 그 길고 따뜻했던 새벽처럼.
평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던 누나가 담담하게 적어낸 진심을 생각했어.
그리고 그때 깨달았지. 누나는 일부러 피한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 다는 점에서 안으로 파고든 것이였고
괜히 예민해진 자신때문에 가족들이 걱정하는게 싫었던거야.
항상 밖으로 나가서 일하던 누나가 돌아오면 냉장고에는 항상 간식이 들어있었어.
그리고 그게 누나 나름대로의 마음이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어.
누나가 작업하러 가는 곳과 자신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파는 가게는 더 멀리 떨어져있었다는 걸.
연한이는 책을 내고 며칠동안은 기자들과 각종 매체에 불려다녔어.
좀 잠잠해지고 난 뒤에 아루방을 벌컥 열어재낀 연한이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어.
-나가자! 애기들아, 누나 고료들어왔다!
그 말에 아루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세한이랑 아루는 두말않고 옷을 주워입고 나갔어.
아주 오랜만에 작은 누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내 밖을 나간 세 사람은 다같이 망고빙수가 맛있는 카페에 들어갔어.
보들보들한 담요를 덮은채 통유리창에 비치는 조용한 숲을 바라보며 먹는 새콤하고 달콤한 빙수는 정말 맛있었어.
-연한이랑 아루랑 세한이랑 제일 좋아하는 간식은 망고빙수
-연한이가 아루세한이 데려간 카페는 연한이가 원고를 하러다니다가 찾은 카페
-아루세한이는 망고빙수를 먹은 카페가 누나의 일터라는 것을 카페주인이 말해줘서 알았다. 둘이 좋아하는 케이크집은
그 카페랑 적어도 1시간은 넘는 곳에 있었고, 매진이 잦은 가게였다.
-연한이의 신작을 읽은 저위는 연한이가 어떤 식으로 사과했는지를 알게되었다.
-저위랑 연한이는 둘이서 술을 마시러갔다.
-저위랑 연한이가 아루세한이랑 친해진 것을 보게 된 나머지 가족들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루랑 세한이는 누나가 자필로 편지를 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연한이는 이후로도 작업할때 거실에 널부러지거나 아루방에 처들어간다.
이보등륜 이룬비
댓글
다시봐도 띵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센세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존나행복하다
마이센세오심 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ㅜㅜㅜㅠㅠㅠ최고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