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행 호도는 마지막까지 낙언을 짝사랑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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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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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호도낙언 커플을 너무 응원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기가 마음이 아픈데...ㅋㅋㅋ 나는 적어도 이 작품 내에 나온 시점까지는, 심지어 결혼 후에조차도 호도 혼자 일방적으로 낙언을 짝사랑했다고 생각함 

내가 보기에 낙언은 호도를 좋아한 게 아님. 그냥 어릴 때부터 자기 인생이 이렇게 낭만적인 동화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 하는 역할극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써놨는데, 그 대본에 맞춰서 남편 역할을 해줄 남자를 애타게 찾다가 위숙옥은 거절하고 호도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호도와 결혼한 거라고 생각함. 즉 자기가 생각하는 완벽한 로맨스와 결혼이라는 그 역할놀이를 해줄 남자면 누구든지 상관 없었던 것뿐, 호도라는 남자, 딱 바로 그 사람을 좋아하고 끌린 게 아닌 것 같음 

호도가 마침내 낙언한테 마음을 고백하고 낙언이 승낙하던 장면을 보면, 낙언한테서 제일 극명히 보이는 것은 호도라는 사람 자체한테 느끼는 끌림이 아님. 늘 자신이 꿈꿔왔던, 언젠가 남자가 자기한테 해주길 너무나 바라왔던 바로 그 한 마디를 지금 호도가 해줄 것인가 하는 열망임. 즉 '내 인생에서 남자한테 이 말을 듣는 순간을 너무나 기다려왔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가? 내 앞에 있는 이 남자가 마침내 그 꿈을 이뤄줄 것인가!' 하는 게 그 순간 낙언의 초유의 관심사로 보였음. 그리고 마침내 호도가 그 갈망을 실현시켜주자 낙언은 그때서야 호도를 향한 자신의 인상이 바뀌어온 과정을 애써 설명하기 시작함.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마저 그 인상의 변화가 끌림과 좋아함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등장하지 않음. 그냥 '알고보니 네가 그렇게 냉혹한 사람은 아니었고, 나는 방금 네가 죽을까 두려웠다' 이 정도가 언급된 감정의 최대치임. 이 부분에서 나는 낙언이 타협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음. 즉 자신의 취향과 선호는 상관 없이, 그냥 자신을 그렇게 동화처럼 사랑해줄 남자면 됐다고 생각한 것 같았음. 낙언은 애정결핍의 성향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받고 싶어한 애정을 줄 남자면 그 어떤 남자라도 상관이 없는 것 같음. 다시 말해 호도가 아니라 어떤 남자가 저렇게 했어도 무조건 받아줬을 것 같다는 거임 

이 직후 낙언은 이장가에게 자기 결심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더 이 생각을 굳히게 됐음. 낙언은 그 시점으로부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위숙옥과 결혼하고 싶어 했음. 그런데 나는 낙언이 위숙옥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동안 호도를 좋아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사람은 충분히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낙언이 '나는 위숙옥을 좋아해왔지만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호도도 점차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됐을 거임. 그런데 낙언은 그렇게 말하지 않음. 별안간 자기가 그간 위숙옥을 좋아한 마음은 사실 그저 동경심이었다며 습관처럼 좋아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함.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는 위숙옥의 거절 밖에 없는데, 거절 전에는 결혼까지 하고 싶어했던 남자건만 거절당하자마자 아예 그 한참 전부터 남자로서 좋아한 게 아니라고 하는 거임. 차라리 위숙옥을 정말 좋아했지만 그 사람이 거절하는 걸 보고 '이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 마음을 접었다고 하면 납득이 될 텐데, 갑자기 위숙옥을 좋아한 마음과 시간을 다 부인하는 걸 보고 나는 낙언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느꼈음. 스스로에게 완전히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위숙옥을 좋아한 마음을 부인해야만 호도를 선택한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호도를 좋아하는 마음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역시나 이때 낙언이 호도를 선택한 이유라고 얘기한 건 딱 두 개임. 내 곁에 있어서, 옆에 있으면 편안하고 자유로워서.

이런 의미에서 나는 호도가 의부한테 효도한다고 혼례를 간소히 앞당겨 치른 것이 참 안타까움. 나는 이 때가 두 사람의 관계를 동화처럼 짜여진 피상적 역할놀이에서 이낙언이라는 바로 이 여자와 호도라는 바로 이 남자 개인의 실질적 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호도가 그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함. 저 관계의 전환을 위해서는 낙언에게서 자율적인 선택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음. 그래야 낙언이 역할놀이에서 깨어나서 스스로 관계의 키를 쥐고 진정 자기 자신으로서 호도와의 관계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임. 그런데 호도가 의부를 위해 혼례를 간소히 치르자고 한 요청은 가장 관습적이고 미덕에 근거한 요청으로, 틀에 박힌 현모양처 놀이를 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자기 의견을 숙고할 것도 없이 당연히 승낙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음. 안타깝게도 나는 저때 낙언이 그 요청을 승낙한 게 호도를 사랑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음. 호도는 그 순간 고전 화본 속 남편이나 함직한 요청을 했고, 낙언은 그에 맞게 자기 인생의 궁극의 꿈인 화본 속 현모양처 역할을 다 하며 승낙한 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이로써 낙언은 전에는 '공주님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헤매던 끝에 마침내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아 청혼을 승낙했답니다'라는 결말의 대본을 연기하고 있었다면, 이제 '공주는 더 신분이 낮은 남자에게 하가했음에도 남편을 위해 보통 아내처럼 희생하며 시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삶을 살았답니다'라는 줄거리의 다음편을 연기하기 시작한 거임. 이 시점에서 호도는 낙언과 진정한 부부 관계를 맺을 절호의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음. 낙언의 저 결혼 놀이, 현모양처 놀이에 맞춰 인생을 자율성 없이 살고자 하는 열망은 상당히 증세가 심각해서, 그걸 부채질하는 행동을 하면 더 도취 상태가 심화됨. 그래서 저 국면을 전환하려면 호도가 낙언이라는 개인의 의견과 자율성을 끌어내려고 무던히 노력하면서, '우리가 비록 처음 관계는 틀에 박힌 동화처럼 맺었을지라도 그 이후의 결혼 생활은 결코 그렇지 않을 거고, 나는 아무 공주 전하가 아니라 이낙언이라는 바로 당신이라는 여자한테 온 관심을 쏟고 있으며 당신이라는 여자를 뜨겁게 사랑하니 나라는 남자를 봐 달라'라는 메세지를 피력했어야 함. 그리고 혼례를 주관하는 데에 있어 낙언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그에 따르는 것은 저 모든 메세지를 가장 분명하게 피력할 수 있는 상징적인 시작이 됐을 텐데, 호도가 그만 그 정반대로 행동해 버린 거임. 결혼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관계를 뻔한 동화 제2부로 확립해 버린 거지

설상가상인 것은 결혼 직후에 호도가 오랫동안 타지로 떠나 있으면서 다 죽어가는 의부를 낙언한테 수발시켰다는 거임. 여기서 두 사람의 관계는 또 한 번 현모양처 놀이 바이러스의 직격타를 맞음. 관계가 한 번 이렇게 형성되어서야 다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듦 

이렇게 살다가는 두 사람이 결혼생활 20년차가 돼도 피상적인 역할놀이만 하고 있을 뿐 상대방 개인에 대해서는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듦. 호도는 첫날밤에 아직도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꿈결에 젖어 황홀해 했지만 내 눈에는 낙언이 그냥 역할놀이 AI처럼 반응하고 있다고 보였음. 그걸 못 느끼고 그렇게 행복해하는 호도가 참... 너무 슬퍼서 더 말을 못하겠음 ㅋㅋㅋㅋ 사실 만약 호도가 평생 저렇게 행복하게 속은 채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음. 좋은 게 좋은 거고, 사실 그 시절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게 살았을 테니 굳이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지 않아도 평생 사이 좋고 행복하면 그걸로 된 걸 수도 있지.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호도가 평생 속은 채로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음. 호도는 안타깝게도 참 예리한 사람임. 그래서 오래 지나지 않아 자기가 결혼한 여자가 사실 인형극 꼭두각시 수준의 텅빈 껍데기였다는 걸 깨닫게 될 것 같음. 그때가 오면 낙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호도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그런데 심지어 그 시점이 늦으면 늦을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저렇게 확립돼 버려서 방향을 틀기가 힘들 거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엔딩 시점 이후에 호도가 깨달음을 얻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믿음. 그리고 꼭 그렇게 됐기를 바람 ㅋㅋㅋ 호도를 위해서... 그리고 낙언의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서... 단 하루라도 호도가 자기 자신으로서, 한 남자로서 낙언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봤기를 바람

 

조로사 류위닝류우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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