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위룡 왕초연 마녀의 오두막 上🎃🛖🍂

 

늦가을의 산은 스산했다. 안개와 먹구름이 짙게 내리깔린 숲 속은 어두침침하였고, 빛 바랜 낙엽만이 수북이 쌓인 채 습하고 묵직한 바람에 이따금씩 몸을 떨고 있었다. 저벅저벅. 나는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 위를 하염없이 걸었다. 예전이라면 쉬이 올라갔을 산길이지만 몇 년 전 다리를 다친 후로는 절름발이가 되어 지팡이를 짚어야 했으므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몸을 에는 듯한 찬 바람에 나는 멈춰 선 채 단추가 뜯어진 겉옷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한 손이 없었으므로 지팡이를 짚고 걷기 위해서는 이 손을 놓아야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지팡이를 짚다가 실수로 낙엽 아래에 있던 돌을 짚는 바람에 그만 균형을 잃고 비탈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나는 내가 어느덧 작게 흐르는 시내 앞으로 굴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몸에 묻은 낙엽을 털고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 그리고 물에 비친 내 몰골을 바라보았다.

화상 자국에 뒤덮인 목덜미, 하나뿐인 손. 지팡이. 정말 가관이었다. 법력만 쓸 수 있었어도 이 지경으로 처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마녀의 숲에서는 법력을 쓸 수 없었다. 뭐, 연습이라 쳐야지. 살다 보면 언젠가는 법력이 바닥나는 순간도 오지 않겠는가? 특히 나처럼 세상에서 제일 운 나쁜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런 날이 닥칠 것은 자명한 일이니, 미리 익숙해져 두는 것도 좋았다.

나는 마녀의 오두막을 찾고 있다. 그 마녀는 나의 사고(師姑)로, 어머니의 사매이자 아버지의 사저이다. 약 400년 전, 사조인 고오는 계알락 문파를 세우고 그 아래 세 제자를 두었는데, 대사저인 나의 어머니와 둘째인 나의 사고, 그리고 막내인 나의 아버지가 그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사조가 거의 전무했던지라 사조는 그 재능을 시기한 수많은 선문세가의 시기를 받았고, 결국 어느 밤 이재민을 가장해 문파에 잠입한 살수들에게 붙잡혀 화형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세 제자는 모두 무사히 도망쳤으나, 사고께서는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내 부모님의 곁을 떠나셨고, 혼자 심산으로 숨어 들어 법술이 아닌 마술을 연마하기 시작하셨다. 내 부모는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후, 나를 낳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침내 사부의 복수를 하셨고, 그 대가로 적의 잔당에게 계속 쫓기다가 내가 다섯 살 때 습격을 당하여 사망하셨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나를 두고 차마 눈이 감기지 않으셨던지, 내게 보호 마법을 걸며 수정 구슬을 남겨주셨다. 그 수정 구슬은 본래 사조의 법기로 두 가지 능력이 있었는데, 첫째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조언을 구하면 어머니가 하였음직한 답을 내주는 것이고, 둘째는 누군가가 거짓을 말할 때 붉은 색으로 변하여 기만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숨이 끊기는 그 순간, 내 팔목을 굳게 부여잡고 법력으로 안쪽에 글자를 새기셨다.

사고 왕초연을 찾아라. 가장 큰 위기에서 너를 구하리라.

졸지에 고아가 된 나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사고를 찾아 헤맸으나 사고는 이미 300년 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후였고, 얼마 전 대마녀가 되었다는 소문만 간간히 들릴 뿐 그 어디에서도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나는 홀로 떠돌며 수정 구슬의 조언대로 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없어 막막하고 서러울 때마다, 구슬을 붙들고 어찌할지 물으면 구슬은 나에게 길을 일러주었다. 마치 어머니처럼. 내가 열네 살이 되자 구슬은 내게 문파를 택해 입문하라고 조언하였고, 나는 그에 따라 새안파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사부와 사형제들과 함께하며 봄날처럼 따뜻하고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 내 생에서 부모님을 잃은 후로 유일하게 행복하다고 느낀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열일곱이 되던 해에 우리 문파는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사소한 원한으로 처절한 멸문의 화를 겪고 말았다. 나의 부모가 그랬듯.

사형의 피가 고인 웅덩이에 얼굴을 박고 익사를 할 뻔했다 겨우 눈을 뜬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홀로 사문을 나섰다. 고통과 죄책감을 견디다 못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하였으나, 그 순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어머니의 조언을 구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여 나는 구슬에게 마지막 답을 구했다. 그리고 구슬은 말하였다. 복수심은 버리고, 희망을 품으라고. 창생을 끝까지 믿고 희생하다 보면 그것이 언젠가 반드시 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니,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그 글귀를 본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였다. 아직 세상에 나를 위하는 어머니의 혼백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설움이 북받쳤기에. 그리고... 인정할 수 없지만 아직은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기에.

그리고 다음날,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길을 떠나 중생을 돕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길은 쉽지 않았다. 구슬에 쓰인 대로 사람들을 믿고 베풀었다가 배신을 당하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내가 그 언제고 배신감에 절규하며 어머니의 조언을 구할 때마다, 구슬은 말했다. 세상에는 정의로운 이들이 있으나 먼저 베풀기 전에는 그들을 가려낼 수 없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나는 결국 그에 따랐다. 그리고 그 결과 지난 100년간의 삶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의형제를 죽을 고비에서 구해주었다가 영약의 재료로 손을 잘리기도 했고, 마귀들을 무찌르느라 정신을 잃은 사이 내가 구해준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흑마법사라는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 중생들을 도왔다. 몸과 마음의 흉터는 나날이 더해졌으나 그럼에도 나는 계속 부모님의 뜻을 따랐다. 부모님이 내게 해가 되는 조언을 했을 리 없었기에, 그들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지 않으면 나는 갈 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었다. 부모님의 이상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았으나 만신창이가 된 나는 더는 견뎌낼 힘이 없었다. 너무 지쳐서 다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던 바로 그 때, 기적처럼 이 모든 고생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2년 전, 페알레 산맥 인근에서 대마녀가 목격된 것이다. 나는 사방을 수소문한 끝에 대마녀가 피의 절벽 위에 오두막을 지어두고 그곳에서 매년 가을을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녀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이따금씩 그 절벽 꼭대기의 암석 제단에서 환락의 춤을 추고는 하는데, 그 모습이 실로 섬뜩하여 그것을 정면으로 목격한 이는 모두 심장이 멎어 죽었다 한다. 그리고 마녀의 오두막은 바로 그 공포의 제단의 뒷편에 있는데, 먼저 제단에 들어가 마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길을 찾을 수 없다 하였다.

쓰러진 나무를 넘어서자 거석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내 도착하였다! 마녀의 제단이었다. 그 공간을 본 나는 즉시 음산하고 어두운 기운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잎을 다 떨군 검은 고목들이 기둥처럼 우뚝 에워싼 공터에, 사람 크기의 비석 같은 바위들이 죽은 풀밭을 둘러싼 채 진을 이루고 있었다. 강력한 사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제단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바와는 달리 가운데에 단이 있지는 않았으니, 아무래도 이 제단은 일반적인 흑마술 제단이라기 보다는 접근하는 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열석 진인 듯하였다. 그 생각에 용기를 얻은 나는 바위와 바위 사이 입구의 우거진 죽은 풀을 지긋이 밟으며 제단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갑자기 차디찬 바람이 휘몰아치며 눈을 따갑게 찔렀다. 나는 팔로 얼굴을 막고 몸을 돌려 바람을 피했다. 바람을 타고 귓가에 여인의 한숨과도 같은 속삭임이 들렸다. 아, 이것은 분명 정상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마녀의 숨소리.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런데 그 순간, 바람이 일순간에 사그라들었다. 눈을 떠보니 바위로 빼곡히 막혀 있었던 제단의 반대편에 어느덧 바위가 사라지고 길이 트여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지팡이를 짚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가시나무 사이로 좁은 길 하나가 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 가시나무 길이 끝나는 곳에 내가 찾아 헤매던 오두막이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녀의 오두막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작은 2층 오두막이었던 것이다.

나는 문 앞에 반듯하게 선 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곧장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나는 흠칫 놀랐다가 생각보다 평범한 음성에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천천히 문을 열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오두막 내부의 모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그곳은 흡사 안락한 거실과도 같았는데,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나무 가구들에, 벽에는 약병과 책들이 빼곡히 놓인 선반이 있었다. 가운데의 탁자 위에는 주황색의 양초가 켜져 있고, 그 옆에는 형형색색의 유리병과 말린 꽃, 호박, 작은 절구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약재를 만들던 중인 듯하였다. 꼭 대마녀가 아닌 꽃을 따서 소박하게 생계를 유지하는 소녀의 집 같았다. 내가 당황해서 멀뚱하게 서있는데, 그때 오른쪽에 있는 계단이 삐걱대며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긴 흑발에 흑의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달처럼 눈부신 얼굴에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의 너머에는 이지와 통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대마녀 왕초연이었다.

마녀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흥미롭다는 듯 나를 뜯어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붉은 입술을 열어 반갑게 말했다.

“어서 와, 송위룡.”

나는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 여인이 나의 사고라는 것을 떠올리고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사질, 사고께 인사 올립니다.”

사고는 웃더니 허리를 굽혀 한 손으로 내 팔꿈치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문파가 망한지 삼백 년인데 무슨 큰절이니?”

나는 일어나서 목례를 올렸다. 왕초연은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는 책장과 탁자 사이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게 건너편의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

“앉으렴.”

나는 긴장한 채 의자를 빼어 앉은 뒤, 지팡이를 탁자에 기대어 놓았다. 왕초연은 마치 매일 보는 조카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언젠가 너를 보게 될 날을 고대했는데 그게 오늘일 줄이야. 그래, 무슨 일이 있어서 나를 찾아왔니?”

나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단도직입적인 그녀의 태도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사람은 이렇게 소탈하고 여유로워지는 것일까? 대마녀가, 그런 일을 겪고 헤어진 사형제의 처음 보는 아들을 이렇게 편하게, 보통 이모처럼 맞아주다니. 그녀는 마치 언제나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잠시 넋을 놓았던 나는 소매를 걷고 그녀를 향해 내 팔목에 새겨진 글자를 공손히 보여주었다.

사고 왕초연을 찾아라. 가장 큰 위기에서 너를 구하리라.

왕초연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친근함과 여유가 담긴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그 말은 네가 지금 가장 큰 위기에 처해있다는 거니?”

“사실 위급한 일은 아닙니다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간 내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 그녀가 알지 못하는 내 부모님의 말로와 그 후의 나의 역경을.

왕초연은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유심히 나의 모든 말을 들었다. 흡사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분석해 답을 내어 주기라도 할 것 같은 태도였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차분한 눈동자로 나를 꿰뚫어 보며 말했다.

“정말 힘들었겠구나. 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멸문의 화를 당하고, 창생을 구하려 했으나 배신당하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세상을 떠돌았으니...”

나는 말문이 막혔다. 무려 100년의 세월동안 그 누구에게서도 이해를 받지 못했던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대마녀에게 이와 같은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대마녀였지만 또한 나의 사고였다. 역시 누가 뭐래도 부모님의 사형제는 생판 남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왕초연은 빛나는 눈빛에 나긋한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그 눈동자를 마주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잠시 눈을 내리깐 채 숨을 고르고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사고께서 저를 위해 무엇을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고께서 허락하신다면... 사고의 곁에서 끊긴 사문의 연을 다시 맺어 사질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고에게 가족이 되어달라 부탁하다니 이 얼마나 외롭고 처량한 인간의 모습인가?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럴 수 없다면 더는 살아갈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직 어머니의 유언대로 언젠가 다시 사고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그 오랜 세월을 버텨왔는데, 그마저도 일련의 사태를 겪은 후로는 이제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지금 사고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도무지 힘을 내어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저는 그 긴 세월동안 창생을 위해 방랑하며 만신창이가 되었고, 너무 외롭고 지쳤습니다. 사실 그동안에도 몇 번이나 무너질 뻔했지만 언젠가 사고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만으로 하루하루 버텨왔어요. 언젠가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저에게도 다시 가족 같은 존재가 생길 것이라는 그 믿음으로요.”  

왕초연은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긴장에 침을 삼키며 그녀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하기야,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질이 갑자기 나타나서 평생 함께하게 해달라고 청하다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낙담하여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을 물리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왕초연이 별일 아니라는 듯 생긋 웃고는 말했다.

“난 또 무슨 대단한 복수라도 사주하려는 줄 알았더니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래. 앞으로 내가 언제나 너를 지켜볼 테니, 너도 내 곁에서 살아가렴. 결국 네게 가장 부모와 가까운 사람은 나 아니니.”

나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대마녀 왕초연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사는 데다 무자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하여 어머니가 찾아가라 한 사고이니 믿을 만할 것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늘 약간은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만나고 보니 실제의 사고는 소문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감격에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절을 올리려 했다. 왕초연은 내게 말했다.

“됐어, 다리도 불편한데 또 무슨 절이야. 앉아.”

나는 엉거주춤 다시 의자에 앉아서 감사의 목례를 했다. 왕초연은 흐뭇하게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탁자 너머로 내 무릎을 향하더니, 그녀가 말했다.

“일단 그건 그렇고, 약부터 만들어야겠다.”

그녀는 일어나서 벽의 선반으로 가더니 사람 상체 만한 검은 냄비를 가지고 와서 탁상용 화로 위에 올리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것저것 약재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퍼붓기 시작했다. 정말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는데, 사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참 신기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배신 당하는데 이골이 난 내 마음 속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이렇게까지 소문과 다른 사고가... 정말 내 사고가 맞는 것일까? 혹시 아니라면...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사고.”

“응?”

왕초연은 앉은 채로 국자에 손짓을 해서 염력으로 약을 저으며 명철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난처해하며 말했다.

“저는... 부모님과 사고께서 헤어지신 후에 태어났기에 사고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그저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지요. 하여... 사고께서 허락하신다면... 사조의 수정 구슬로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왕초연의 얼굴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송구스럽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 왕초연이 흔쾌히 말했다.

“그래, 꺼내 봐. 나도 사조의 법기를 다시 보고 싶구나.”

나는 기쁨에 예를 올렸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봇짐에서 수정 구슬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수정 구슬은 투명하였다.

나는 대마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제 어머니의 사매이자 아버지의 사저인 계알락 파의 2선생 왕초연이 맞습니까?”

왕초연은 나의 진지한 심문에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소꿉놀이에 장단을 맞춰 주듯 말했다.

“그래... 그게 나야.”

수정 구슬은 투명했다. 나는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왕초연은 나를 귀여워하듯 웃고는 아이를 다루듯 물었다.

“이제 더 확인할 거 없어?”

나는 멋쩍게 말했다.

“예... 이제 없습니다.”

“궁금한 것도? 있으면 이 기회에 다 물어봐. 어차피 앞으로 다 물어볼 것들이잖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 혹시... 저희 부모님은 사문 시절 어떤 분들이셨습니까? 그때도 대종사의 풍모를 갖추고 계셨습니까?”

왕초연은 여유롭고 소탈하게 말했다.

“사제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사저는 화합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둘이 아주 사이가 좋았지. 거의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어. 아무튼 너는 둘 중에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어. 사실 거의 똑같이 생겼지. 방금 너를 보는데 꼭 사제가 살아 돌아온 것 같더라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이제는 희미해진 아버지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두 분이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이 자리에 그 두 분도 함께하였다면 지금쯤 우리 넷은 이곳에서 따뜻한 재회를 했을 텐데. 나는 안타까움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계알락 파는 대체 어떻게 멸문한 겁니까? 그 이재민들은 누구고 어떻게 문파에 들어왔던 거지요?”

왕초연은 냄비 안을 휘젓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건 말하자면 긴데. 차 한 잔 할래?”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맥이 풀려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급히 덧붙였다.

“아, 사실 제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참! 그렇겠다.”

왕초연은 흔쾌히 말하고는 잠시 문 뒤의 공간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돌아와 나와 그녀의 앞에 항아리 모양의 상아색 잔을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두 개의 주전자를 들고 와서 내 잔에는 호박즙을, 그녀의 잔에는 붉은 꽃 차를 붓고는 과자가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호박즙을 들이켠 나는 깜짝 놀라며 입에서 잔을 떼고 들여다보았다. 이런 천상의 맛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급히 과자를 먹어 보았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 천상의 맛이군요.”

왕초연은 나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도 직접 구운 과자인 듯하였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걷히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멸문의 일을 이야기하려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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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322f] - 2024/11/01 08:33

두사람이 마주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너무 눈부셨을듯! 천상계의 미모 경쟁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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