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망기, 불야천에서 떨어진 후 다른 세계로 간 위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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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3 17:24
조회수: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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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흐름ㅈㅇ 

 

 

 

 

깊은 잠을 잔 듯 개운하게 눈을 뜨니 자기가 황제래.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되어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나. 자기가 어쩌다 다른 세계, 다른 몸에 들어오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황제로 살아야 하니 기억을 잃었다며 어떤 사람인지 물었어. 종합해보면 냉혹하지만 검소하고 일 잘하는 성군임. 검소하다니...여기부터 위무선과 거리가 멀어. 무서운 황제였단 건 아주 좋아. 다른 것도 뭐 다 좋은데 이 인간은 왜 자시(23시~1시)에 자서 묘시(5시~7시)에 일어났던 건지... 가끔은 축시(1시~3시)에 잤다고? 운심부지처에 있을 때 외엔 사시(9시~11시) 전에 일어나서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위무선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 그래서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며 평소 하던대로 했음. 

일을 무조건 오래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게으름 피우기도 쉽지 않았음. 어차피 진짜 황제도 아닌데 때려치울까 몇 번을 고민했지만 천성이 그게 안 돼서 진짜 황제 위무선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함. 영민한 위무선답게 일을 금방 파악하고 정말 잘함. 올라오는 자료 보면 열 뻗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황제들의 수명이 왜 짧은지 알겠고, 성격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함.

다른 건 그렇다 치는데 곤란한 게 비빈들과 잠자리하는 거였음. 위무선 입장에선 자식이 이미 다섯이나 있는데 뭘 더 낳으라는 건지 하지만 황실은 대대로 자손을 많이 봐야 한다는 주의라서 지금 위무선의 다섯 자녀는 부족한 것임. 후궁 수도 여덟명으로 역대 황제들 중 가장 적은 거였지. 돌아가며 잠자리를 해야 하는데, 일단 가긴 가도 위무선은 피곤하다며 정말 잠만 잤음. 미인들이 자신에게 총애를 받으려고 잘하는 거 보면 좋긴 한데 안쓰럽고, 위무선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으니 이들을 안는 게 용납되지 않음. 다른 세계에 온 거라지만 어쨌든 영혼은 나고, 내 마음속엔 남잠 뿐인데 다른 세계에 왔다고 다른 이를 품는다? 안되는 것임. 아무것도 안 하면 또 잔소리 폭격일 테니 입단속 시키며 뺑뺑이 돌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어. 위무선이 기억하는 후궁 수와 방문한 곳이 안 맞아. 한 명이 비어. 신하에게 한 명이 더 있지 않냐고 묻자 매우 곤란해하며 기억나지 않는 거냐고 물었음. 위무선이 이 몸으로 있다 보니 조금씩 원래 이 몸에 있던 기억이 나기 시작했음. 중요하다 싶은 기억들만 나는 거 같았지만 아무튼 기억나는 게 있긴 있으니까 신하가 확인차 물어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머뭇거리며 남 미인은 사내라고 함.

"아...혹시 그가 거동하기 어려운가?"

"그건 아니 옵니다"

"한데 왜 지난번에 후궁들을 다 불러 모았을 때 없었지?"

"그건..."

"내가 그를 싫어하나?"

"... 그러하옵니다"

그가 남 미인을 보는 것도 싫어했던 것인가? 그게 아니고서야 거동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황제의 부름에도 오지 않을 리가. 그러고 보니 후궁 명부에 이름 없이 남 미인이라고만 되어 있었어. 사연인 즉슨 남 미인의 누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중상모략으로 죽게 해서 개인적인 복수심과 교활한 남국을 처리할 목적으로 전쟁을 했고, 볼모로 남 미인을 데려와 후궁을 삼았다 함. 존귀한 왕자에서 가장 밑에 있는 후궁이 되어 황제의 미움을 받으니 황실에서 따돌림받는 신세인 거지. 남 미인이 잘못한 건 없지만 어떤 마음인진 알겠으니 알았다 하고 넘어감.

본디 위무선은 자유로운 영혼인데 황궁에 갇혀서 일만 하니 갑갑해 죽을 노릇이야. 일 끝나고 좋은 술 몇 잔 마시고 자는 게 낙이라면 낙임. 이 인간은 예전에 일하는데 방해되니 술도 안 마셨다 해서 나도 보통 놈은 아니지만 이놈은 더 독한 놈인 거 같단 평을 내림. 개인 생활이라곤 하나도 없던 놈. 쯧쯧, 세상에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을 안 하고 살다니 불쌍하다, 불쌍해.

위무선은 버티고 버티다 정말 미쳐버릴 거 같아서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 하고, 혼자 술 한 병 들고 황궁 깊숙이 들어갔음. 이 넓은 황궁을 전부 관리할 순 없으니 사용 안 하는 곳은 잡초가 무성하고 삭막한데, 조용하니 나쁘지 않아 석양을 바라보며 술을 기울였음.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 할지, 돌아가도 되는지, 그냥 계속 이대로 살까 여러 생각을 했어. 눈을 감으면 아직도 죽은 사저와 애증 섞인 강징의 눈빛, 다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저의 손목을 잡았던 남잠의 얼굴이 선명해. 감상에 젖어있던 중 뒤에서 기척이 느껴져 날카롭게 누구냐하고 물었어. 그러자 그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짝 조아린 채 떨며 말했어.

"송구합니다, 폐하. 계신 줄 몰랐습니다"

수수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흰옷에 비녀 하나 꽂아놓은 머리가 마치 상을 당한 과부 같은 모습이라 저잣거리도 아니고 이 황궁에선 너무 이질적임. 말단 궁녀도 이렇게 수수하지 않아. 궁에서 이런 모습이라면 죄를 지어 유폐된 자인데 위무선이 알기론 그런 사람은 없음. 일단 사람은 확실하고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위무선이 몇 발 가까이 다가갔어.

"누구냐고 물었다"

"...남 미인입니다"

그가 고개를 들고 눈을 내리깐 채 대답했어. 그 순간 위무선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자세를 낮추고 그의 어깨를 잡았어.

"남잠!"

"예?"

많이 창백하고 초췌하지만 이 얼굴은 남잠이야. 본인이 원래 이곳의 위무선이 아니듯 그도 그 남잠이 아닌 걸 알지만 그와 같은 얼굴을 보니 속에서 울컥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랐어.

"이름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남 잠, 자는 망기옵니다"

위무선이 그의 몸에서 손을 떼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복잡한 표정을 지었어. 남망기가 그의 눈치를 보다 인사를 하고 물러서려 할 때 위무선이 손목을 잡아끌어 앉혔어. 같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같은 얼굴에 같은 체취가 느껴져 위로가 되는 기분이라 잠시만 같이 있자고 했어. 남망기는 황제가 오래 앓다 깨어난 후에 기억을 잃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단 소식을 듣긴 했어. 남망기가 황제와 마주했던 건 몇번 안 되지만 그때마다 느껴졌던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있긴 하지만 숨이 막힐 듯 무겁진 않고, 뭔가 슬픈 느낌이 나서 그의 곁에 있는 게 아주 불편하진 않았어.

"술 마실 줄 아나?"

"예..."

"마실 줄 안다고?"

"조금 마실 줄 압니다"

위무선이 술병을 내미니까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가져가 조금 마시고 돌려줬어. 그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고, 같이 황궁에 들어왔던 유모가 떠난 후 누군가와 이렇게 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좋긴 했어.

며칠 후 위무선이 남망기의 거처를 찾았어. 정말 곤궁한 것이 이릉에 있을 때가 떠올랐어. 누구도 이곳이 황제의 후궁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하지 못할 거야. 책을 읽고 있던 남망기는 갑작스러운 황제의 방문에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어. 그때 내가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걸까? 그렇다면 직접 오실 게 아니라 사람을 시키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마중 나가 그 앞에 바짝 엎드렸음. "앞으로 이렇게까지 엎드리지 말거라" 위무선이 직접 남망기를 일으키고 방으로 들어갔음.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는데 불을 때지 않아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가 없어. 남망기가 위무선에게 손난로를 주고 차를 내왔어. 위무선이 남망기에게 도로 손난로를 쥐여주고 겉옷을 둘러주었어. 위무선의 행동에 남망기가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떨기만 함.

"보고 있자니 나까지 추워 그렇다"

"송구합니다, 폐하. 소인은 괜찮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손끝이 빨게진 채 몸을 살짝 웅크리고 있는 꼴을 보고 어떻게 마음을 안 쓰겠어. 남망기가 옷을 다시 돌려주려 하자 됐다고 손짓을 하고 차를 마심. 몇 번을 우린 건지 밍밍하니 그냥 물과 다름없음. 그의 형편에 차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겠지하고 생각하니 입맛이 씁쓸해짐.

"폐하께서 오셨는데 대접이 미흡해 송구합니다"

"기별도 없이 찾아온 내 탓이다"

여기 위무선의 사정이 어떻든 자신과 상관없으니까 제 앞에 있는 남망기가 그저 안쓰러울 뿐임. 남국 왕실 사람들은 교활하다 하는데 그에게선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 기가 꺾여 그럴지도 모르지만 몇 년을 이렇게 살면서도 맑은 눈을 한 사람이면 괜찮은 사람이 아닌가 싶어.

위무선이 가고 며칠 후 남망기의 궁에 일할 사람과 따뜻한 옷, 침구류, 땔감들이 들어왔어. 녹봉까지 계급에 맞게 올랐지. 극단적인 변화에 남망기 뿐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 했지만 황제가 아프고 난 후에 영혼이 바뀐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눈치껏 행동했지. 한편으론 남국 왕실 사람들은 술법을 잘 쓴다는데 그걸로 황상을 홀린 것 아닐까 하는 얘기도 돌았음. 위무선이 황후는 의무적으로 찾아도 다른 후궁들은 찾지 않으면서 남망기를 자주 찾고, 같이 있을 때 꿀이 뚝뚝 떨어진다 하니 질투가 안 날 수 없지. 그나마 남망기가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음.

위무선은 시간이 날 때면 남망기를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검을 맞대기도 했어. 남망기는 오래 쉬었던 터라 근육이 다 빠지고 동작이 무뎌졌지만 본래 실력이 좋았던지라 위무선이 몇 번 봐주니 감을 찾았어. 이곳 남망기는 제법 술을 할 줄 알고 잘 웃는 편임. 생활이 나아지니 삐쩍 말랐던 몸에 살이 조금 오르고 혈색이 좋아져 이제 제 나이로 보였어. 그러니까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확 느껴졌어. 자신은 여기서 이립이고 남망기는 아직 열아홉살로 약관도 되지 않아선가 아주 귀엽게 보였지. 위무선은 남망기가 좋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라 연정은 아니고, 귀여운 동생을 보는 정도였음. 남망기도 그것을 느꼈고, 그저 모든 순간이 다 소중했어. 지금의 위무선이 다른 사람임을 알지만 어찌됐든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 그가 자기에게 "망기야"라고 할 때면 가슴이 간질거리고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어. 

위무선은 혹시 황제 어머니 죽음에 대해 오해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사건을 알아보던 중 남망기의 거처에서 오수에 들었을 때 꿈에 그날 일이 나왔음. 조금 늦게 어머니의 사망 원인을 알게 되고, 증거를 모으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남비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느꼈을 때 미리 독을 먹었음. 자기를 찾아온 위무선을 보면서 웃으며 조롱을 하고 죽어가는 남비의 모습은 흡사 악귀와 같았음. 위무선이 헉하고 숨을 거칠게 내쉬었어. 머리가 터질듯한 분노는 그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어. 남망기가 등을 쓸어주고 물을 따라주며 괜찮냐고 물었어. 위무선이 사납게 쳐다보자 남망기가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빌었음. 남비와 남망기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해도 오누이라 외모가 상당히 닮아서 이곳의 위무선은 남망기를 볼 때면 분노가 치밀었을 거임. 위무선이 물을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남망기를 일으켰어.

"네 잘못이 아니다"

"폐하...폐하의 분이 풀리실 때까지 저를 벌하셔도 괜찮습니다. 제 누이를 대신하여 다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황궁에 들어왔으니...저는 괜찮습니다"

"네 누이는 어떤 사람이었지?"

"누님은 잔인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누이가 그런 짓을 벌인 걸 알았을 때 놀라진 않았나?"

"그렇게 큰 일을 벌인 것은 놀라웠으나 누님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믿기 어렵진 않았습니다"

위무선이 얕게 한숨을 쉬고 남망기의 어깨를 두드리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주고 자리를 떴음. 남망기가 잘못이 없는 걸 알아. 이 기억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도 하지. 그럼에도 마음이 많이 어지러워 한참을 걷다가 집무실로 가서 밤새도록 일을 했음. 한동안 위무선이 남망기를 찾지 않아서 황제가 그간 총애를 준 이유가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옴. 그 말이 위무선 귀에 안 들어올리 없지. 위무선은 곧장 다시 남망기에게 가다가 만약 내가 돌아가고 나면 남망기는 다시 냉대를 받을 텐데 그러면 정말 더 괴로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음. 그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고민 하다가 아른거리는 남망기의 얼굴에 결국 만나러 감.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세상이 멈춘듯 했어. 그래서 이 눈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 휴식을 갖기로 함. 위무선은 누가 뭐래도 휴식을 남망기와 함께 했어. 남망기가 올해는 많은 눈이 내릴 것 같다고 해서 그 말을 듣고 대비를 단단히 하길 잘했어. 남망기는 늘 인시가 되면 기도를 올렸음. 이번엔 폭설로 백성들의 피해가 덜하길 빌었어. 남망기는 원래 신관이 되어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황궁에 들어와 하는 일이 없으니 기도하고 명상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었어. 열여섯살에 황궁에 들어와 3년 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위무선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가 간 후가 조금 두렵긴 했지만 주어진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함. 며칠동안 내린 눈이 이제 끝을 맺으려는지 잦아들기 시작했어. 창을 열고 말없이 눈을 보던 중 남망기가 먼저 침묵을 깼어.

"폐하,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가시기 전에 한번만 안아주실 수 있습니까?"

"어?"

위무선이 잠시 멍하게 있을 때 남망기가 다가와 살포시 허리를 끌어안았어. 위무선도 망기를 안고 토닥여주다 서로 몸을 떼어내고 바라보았어.

"이 이상은 안되는 거 알지?"

"압니다. 제 주제에 이것만으로도 과분합니다. 폐하께선 연모하는 이가 있으시죠?"

"그렇다"

"그곳의 남잠은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겠지요"

"그게 무슨..."

"폐하, 돌아가서도 절 기억해주시겠습니까?"

"망기야..."

"아니, 아닙니다.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위무선이 그를 꼭 끌어안고 잊지 않겠다고 속삭였어. 남망기가 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어. 황궁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을 땐 거의 몰래 우는 일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말라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오지 않았어. 유모가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더니 지금은 쌓여있던 게 한번에 터지듯 멈추지 않고 흘러 위무선의 어깨가 젖어들고 있음. 위무선은 남망기가 우는 것을 알고 편하게 울 수 있게끔 모르는 척 하며 등을 쓸어주었음.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처절하게 이릉노조를 부르는 소리가 울렸어. [이릉노조,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부름에 응해주시오. 이릉노조! 제발!]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몸이 이상해짐을 느꼈어.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지만 본능적으로 영혼이 분리되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이렇게? 이렇게 떠난다고? 위무선이 허망하게 남망기를 바라보자 남망기가 눈물을 닦고 웃으며 잘가라고 인사를 했음. 위무선은 모현우의 몸에서 깨어나서 다시 남망기를 만나고, 쌓여있던 오해와 한을 풀고 남망기와 운심부지처에서 함께하게 되었지만 이따금 다른 세계에 있는 남망기가 생각 났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됐지.

위무선이 떠난 후 위국 황제 위무선은 다시 정신을 잃고 며칠이 지나서야 깨어났어. 1년간의 일을 까맣게 잊은 위무선에게 일부 신하들이 남망기가 술수를 부린 것 같다고 모함을 함. 처음에 독에 중독되어 쓰러진 것, 후에 기억을 잃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남망기만 총애한 것, 그리고 또 다시 쓰러진 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모든 게 너무 이상하고 의심스럽다는 거지.

남망기는 그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초연했음. 위무선은 남망기를 처벌해야 한다고 간언하는 자들의 입을 막고 증거부터 찾으라고 했어. 아무리 남망기를 싫어해도 증거 없이 처벌하는 건 모략질로 제 어머니를 죽게 한 남비와 다를 바 없으니까. 남망기는 다시 예전처럼 차갑고 쓸쓸하게 지냈어. 그렇게 1년이 지나 다시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 됐을 때 위무선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때처럼 창문을 열고 눈이 시리도록 새하얗게 변한 세상을 바라봤어.

위무선이 1년 동안 황제로써 일을 했지만 진짜 황제도 아니고 이곳의 위무선처럼 부지런히 했던 게 아니라 일이 꽤 쌓이긴 했어. 황제 위무선이 다시 돌아온 후 쌓인 일을 처리 하느라 더 쉼없이 일을 하니 피로가 쌓일 수 밖에 없어 집무 중 깜빡 잠이 들었음. 퍼뜩 정신 차린 위무선은 자신이 기억 못하는 지난 일들이 전부 떠올라 혼란스러워. 꿈이라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진짜라 하기엔 너무 생경해. 얼마나 잔 건지 시간을 확인하니 묘시가 가까워 몸을 일으켰음. 위무선은 시위만 데리고 남망기를 찾아갔음. 궁인들이 일어나 일을 할 시간이지만 남망기의 거처는 남망기밖에 없어 상당히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움. 희미하지만 불빛이 있는 것을 보니 일어나 있는 거 같은데 시위가 불러도 반응이 없어.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보다 더 추운 듯한 방에서 남망기가 창가에 앉아 머리를 괴고 눈을 감고 있음.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 남망기의 몸과 주변에 눈이 쌓여가고 있음. 그 자태가 마치 신선 같이 고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짐.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지만 그의 생명은 지금 이 방에서 겨우 빛을 내고 있는 등불처럼 곧 꺼질 거임. 위무선이 가까이 다가가 아직 앳된 얼굴에 손끝을 갖다 대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 듯함. 손바닥으로 파리한 얼굴을 다 감싼 순간 등에 남아있던 불씨가 완전히 꺼지고 어둠 속에서 눈보라 소리만 울림.

 

 

 

 

무선망기 진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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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code: [a79dc] - 2023/09/13 20:22

아...다른세계 망기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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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95411] - 2023/09/13 20:48

🥹 감동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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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30ede] - 2023/09/13 22:14

신고하고싶다. 나랑 혼인신고 ㅠㅠ 하 진짜 먹먹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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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28a23] - 2023/09/14 13:08

남미인은 자살일까 그저 생이 저 정도만 주어진걸까…전자던 후자던 평생 불행하고 외롭고 슬프기만 했던 망기의 삶에 무선이가 찾아와 단 1년만이라도 외롭지 않고 온기를 느끼고 행복해서 다행이다ㅠㅠㅠ왠지 그 다정한 온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 본래의 위황제가 돌아왔을때 쓸쓸하게 자살했다는 생각이 들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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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7d9e1] - 2023/09/24 01:35

아ㅠ 아프고 아름다우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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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7d9e1] - 2023/09/24 01:36

감사해오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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